저는 당신에게 정보만 얻고 싶어요

대놓고 무료상담을 원하는 사람들

by 구행


"안녕하세요. 나라장터 입찰공고에서 참가자격으로 요구하는 업종을 나라장터에 등록하려는데, 물품분류번호 설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조달청 주무관이 사진을 찍어 보내줬는데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보통은 처음에 전화가 오면 인사를 건네며 '000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을까요?'로 시작하는데, 이 분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 그럼 저희 카카오톡 채널로 관련 공고문과 주무관이 보낸 사진, 말씀하신 자료들을 보내주세요. 확인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행정사님, 그런데 등록 자체를 저희 기업에서 할 수 있으면 직접 하려고 해요. 조달청 주무관과도 연락했지만 모르겠어서 행정사님 블로그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아, 그러니까 본인이 직접 할 건데 모르는 부분만 물어보겠다는 뜻이었다. 대놓고 '정보만 얻어가겠다'고 선언하셨다. 당황스럽고 무례하다고도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전화를 받아 대화를 나눴고, 심지어 내가 확인 후에 말씀드린다 했으니 무작정 끊을 수도 없었다.


카카오톡 채널로 받은 자료들을 검토한 후에 1) 물품분류번호에 혼란이 생긴 이유, 2) 물품분류번호 등록 방법에 대해 카톡으로 간단히 안내했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저희는 상담사항에 대해서 상담비용을 받고 있습니다. 이후 추가 문의 또는 상담의 경우, 상담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안내드립니다. 안내드린 사항이 담당자님 업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의뢰인의 "감사합니다"라는 답변으로 대화는 종결됐다. 계약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없었다.




대면 상담의 경우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비영리임의단체 설립에 대해 대면 상담을 요청한 분이 계셨다. 동네에 거주하고 계신 분이라 사무실 대신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사실 이 분은 그전부터 상담을 요청하여 일정을 잡았었는데, 당일날 상담시간이 되어서야 아직 출발을 못해서 1시간 늦을 것 같다고 연락을 주셨다. 당시 일도 밀렸고 장례식 가는 일정이 있어서 상담을 취소하고 다시 일정을 잡은 것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만나 준비한 자료들을 가지고 1시간 넘게 비영리 임의단체와 비영리 법인의 차이점, 설립 절차, 필요서류, 주의사항까지 꼼꼼하게 설명드렸다. 물론 상담비용 없이 말이다. 의뢰인은 기부금 영수증 발행을 하는 단체로 성장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의뢰인은 비영리 법인을 설립하고 싶어 했으나 당장의 조건과 비용적인 부분이 어려워서 임의단체 설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 "단체 회원들과 상의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시에 현장에서 계약까지 이끌어내지 못했던 상황을 복기하며 계약이 안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약 한 달이 지난 뒤 한 통의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행정사님, 지난번에 상담했던 000 봉사단 대표입니다. 저희가 오늘 전체 회원 소집하는 날이라 회원 명부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만들면 될까요? 단체 이름은 이렇게 정하면 될까요?" 라며 카톡으로 단체 명부와 서류를 사진으로 보냈다. 마치 숙제를 검사받는 학생처럼.


보내주신 사항에 대해서 간략하게 안내드렸다. 그리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비영리임의단체 설립을 대행하여 진행을 원하시면 계약서 및 주요 사항 안내드리고 착수드리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대화는 드디어 끝이 났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금입니다


모든 사람의 시간은 금과 같다. 그리고 행정사를 포함한 모든 전문 자격사 또는 지식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시간은 밥줄이다. 시간이 곧 노동력이다. 그래서 많은 전문 자격사들이 일정 비용을 받으며 상담을 제공한다. 행정사만 하더라도 보통 30분에 5만 원, 1시간에 10만 원의 상담비용을 안내하고 계약을 진행하면 그 상담비용을 제외하고 비용을 받는다.


나 역시도 그래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의뢰인들에게 아직까지 상담비용을 제대로 고지하지 못하고 있다. 전화가 울리면, 카톡 문의가 오면 바로 대응하고 있다. 이 점이 문제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아직 스스로 성장기라는 생각이 강해서인 것 같다. 실제로 고객의 문의를 통해 업무 영역을 확장해나가기도 하고 고객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면서 수임까지 이어진 적도 있다. 상담비용을 처음부터 고지하는 게 좋은 건지, 아니면 간단한 상담은 지금처럼 해주는 게 좋은 건지 늘 고민된다.


그리고 이 고민은 의뢰인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의뢰인에게는 그렇게 상담만 해줘도 뿌듯하고 기분 나쁘지 않다. 때로는 '나중에 돌아오겠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의뢰인은 괘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처음부터 '정보만 얻어가겠다'라고 대놓고 선전포고하거나, 상담 후에 본인이 직접 처리한 결과물을 가져와서 확인해 달라고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들을 겪으며 하나씩 나만의 기준을 정립해 나갔다.

첫째, 내 시간과 지식에 대한 가치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료로 제공하는 것과 유료로 제공하는 것의 경계선을 그어야 한다.


둘째, 상담 초기에 의뢰인의 의도를 파악해 보자. 의뢰인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근본적인 것부터 정말 수임을 고려해서 하는 문의인지, 정보만을 얻어가려는 것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정중한 거절도 상담의 과정이다. 의뢰인이 상세한 정보를 원할 경우 "죄송하지만 세부적인 상담은 상담비용을 받고 진행하고 있고, 이후 계약 진행 시 상담비용을 받지 않습니다"라고 안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고민이다. 아직은 성장하는 시기니까 배운다는 차원에서 관대해도 괜찮나? 아니면 상담비용 기준을 처음부터 뚜렷하게 내세워야 하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런 사례들이 나의 기준을 뚜렷하게 다듬어주고 있다. 상담만 남긴 채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는 못했지만 오늘도 성장을 찍었다.


이런 와중에도 휴대폰이 울린다. 카카오톡 채널 문의가 들어온다.

이번에는 의뢰인이 어떤 문의를 할까?


keyword
이전 04화계약보다 떨렸던 첫 대면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