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니 Oct 28. 2022

한 달 같은 1박 2일

단체관광으로 제주도 서커스만 기억하는 아빠의 여행

바람이 지나간 곳에 흐트러진 노을
짙게 드리워진 그늘에서도 유난히 맑았던
아버지 표정을 따라가다 또 한 번 정적을 깨고 들리는 소리
"좋다" 

- 김지훈 시집, 아버지도 나를 슬퍼했다 -





"비가 오고 바람이 세게 불었지. 그리고 서커스가 참 화려했어" 


내가 제주도로 내려가기 전에 아빠한테 물었던 제주도에 대한 기억이다. 조리사로 35년 넘게 일해오신 아빠에게 제주도 여행은 계모임 패키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빠는 남들 쉴 때 쉬지 못하는 공휴일이 더 바쁘신 분이었다. 이틀, 삼일 연이어 쉬는 것이 어려워서 늘 가족여행은 큰 마음먹고 떠나야 했고, 어렸을 적 사진에는 엄마와 함께하는 여행이 많았다. 우스갯소리로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사람과는 결혼 못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랑 10일 가까이 되는 여행을 계획하는 동안 아빠가 신경 쓰였다. 열심히 일해서 쉼이 필요하다는 그럴싸한 이유와 함께 바다 앞에서 멍 때리고 엄마와 맛있는 것을 먹으며 즐기는 그 시간, 과격하게 말하면 아빠는 불 앞에서 가족의 생계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테니 말이다.

 

엄마와는 반대로 아빠는 딸이 제주도에 있는 김에 엄마랑 중간에 같이 여행 오라는 말에 한사코 거절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후 일생 회복 단계로 가게가 이제 슬슬 활개를 필 시점이었다. 그래서 휴가철과 공휴일은 아빠한테는 쉬면 안 되는 날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2가지 마음이 아빠를 제주도로 보내주지 못하고 있었다. 한 가지는 불안함의 습관이었다. 아빠는 더 젊을 때, 일할 수 있을 때 온 힘을 다해 벌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셔서 번듯한 직장이 있어도 지금까지 투잡을 할 정도로 매일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 믿음과 몸에 밴 습관은 코로나19로 생계에 위협을 느끼며 더 굳어졌다. 


다른 한 가지는 아빠 본인은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신다. 50대에는 엄마와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산에 다니던 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쉬는 날이면 집에 계시는 날이 더 많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을 분산시키는 것이 힘들다 느끼셨을 것이다. 어쩌면 본인이 즐기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으셨으리라. 마음을 알기 때문에 평일 이틀을 무조건 조정해서 엄마와 제주도에 내려오라고 강력히 말하며 마음대로 표를 끊었다. 취소하면 표를 위약금으로 날린다는 반강제적 협박으로 아빠의 제주도 여행은 시작되었다.


초반에 엄마와의 여행보다 아빠와 함께하는 단 1박 2일의 일정에 더 에너지를 쏟았다. 가고 싶었던 곳과 먹고 싶었던 것을 모두 넣었다. 이동시간이 길더라도 해안가 도로를 통해 차 안에 있는 시간조차 여행의 추억 한 조각으로 기억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었다.


첫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국수를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시내에서 고기국수 한 그릇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보고 싶다던 만장굴과 오르고 싶다던 성산일출봉을 모시고 갔다. 성산일출봉에 갔을 때 비는 안 왔지만 금방이라도 올 것 같은 우중충한 바람이 많이 불었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성산일출봉 아래를 산책하다 근처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그 시각 아빠는 혼자 성산일출봉 정상에 올라갔다. 50분 정도 지났을까. 저기 멀리서 해맑게 양손을 흔들며 내려오는 아빠를 발견했다. 순간 저 미소 속에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던 아빠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아빠는 한껏 흥분된 목소리로 정상에 올라서서 온몸으로 바람을 쐬던 순간을 소풍 다녀온 신난 어린아이처럼 나와 엄마한테 자랑했다. 위에서 만난 젊은 부부가 각종 포즈를 알려주고 사진도 찍어주었다며 연신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활기찬 멜로디 같은 말들 속에서 한마디, "너무 좋다". 그 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은 가족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가 아닌, 누구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깨닫고 즐기고 온 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올라가 보지 않았지만 나는 어느새 그 시원한 바람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각종 회와 크고 긴 갈치구이 한 상에 술 한잔하고 싶다." 


아빠는 이전에 제주도 여행 이야기를 할 적에 항상 마무리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패키지여행이다 보니 식당과 음식 주문에 제약이 있었다고 한다. 같이 가신 분들과도 맞춰야 했기 때문에 제주도에서 결국 좋아하는 회를 못 드셨다고 했다. 그런 아빠에게 첫날이자 마지막 밤에 바라던 한 상을 대접하고 싶었다. 여행에 있어 첫날 저녁은 벌써 하루가 지났다는 아쉬움과 내일은 또 어떤 여행이 시작될까 하는 기대감이 묘하게 섞여있다. 아빠에게는 이 두 감정을 느낄 겨를도 없이 첫날이 마지막 밤이었다. 함덕에 바다가 보이는 가게 자리 잡아 한상차림을 주문하니, 상에 빈틈없이 음식이 가득했다. 검푸르게 지는 저녁 바다를 가까이에 두고 고등어회에 술 한잔, 통 갈치구이에 술 한잔. 기분 좋음과 아쉬움을 술잔에 가득 채워 홀짝홀짝 넘기는 소리에 흘러나오는 한마디, "너무 좋다". 이 순간에도 온전히 한상차림을 즐기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바다를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정방폭포, 용머리 해안, 신창풍차해안도 순으로 남서쪽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해안도로를 달리는 차 안, 음악과 자동차 내부 소음이 얽힌 가운데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 

"너무 좋다". 

"아빠 좋은 거 맞아? 여행 좋아한다며?" 

"음... 이번엔 좋아. 한 달 여행한 기분이야"


아빠의 "좋아"를 오랜만에 많이 들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보다 늘 해야 하는 것을 이야기하셨다. 즐기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셨다. 이런 아빠를 성인이 되고 내가 일을 하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번아웃이 올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성격도, 반면에 쉴 때는 한없이 쉬며 한량같이 보내는 성향도 솔직히 아빠의 젊은 날을 닮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참 많이 닮았다. 그래서인지 아빠의 "좋아"가 참 반갑고 좋으면서도 마음 한켠이 아렸다. 아빠가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기 전까지의 시간 속에는 엄마와 동생, 나의 일상이 녹아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하는 내내 "멀면 안 가도 된다", "굳이 그 음식 안 먹어도 된다."라고 이야기하는 아빠의 말을 뿌리치고, 제일 처음 하고 싶다 했던 그 모든 것들을 해드리고 싶었다. 한 달 여행한 기분이야라는 표현에는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었던 딸에게 고맙다고 말하기는 쑥스러운 아빠가 선보인 최대의 말이었다.     


"쉬고 싶을 때까지 구애받지 말고 쉬다와" 


서울에 도착하고 그다음 날 불 앞에서 하루를 보내고 건낸 아빠의 한마디이다. 본인은 그럴 수 없으면서도 여전히 딸의 시간을 이해하고 여유롭게 채워주신다. 우리가 휴가를 다녀오고 그 휴가의 추억으로 몇 달의 회사생활을 버티는 것처럼, 아빠도 다음 여행 때까지 1박 2일의 시간을 되뇌며 하루를 또 해내시겠지. 나에게는 그런 아빠의 말과 행동을 조금은 이해한 1박 2일이었다.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이후에도 하루만 더 쉬어서 같이 가을 단풍을 보러 가자고 해도 여전히 "나는 못 가니 다녀와"라고 먼저 이야기하신다. 그렇지만 나는 반강제적으로 협박하여 일정을 잡는다. 이전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설득인지 협박인지 모를 나의 말에 빠르게 넘어오신다는 것이다.

 






<제주를 보다> 60대 중반 부모님과 1박 2일 코스 


1일 차 

제주공항 → 제주시내 고기국수(효퇴국수국밥) → 만장굴 → 성산일출봉 → 계절밥상 함덕점


2일 차

서귀포 시내 순대국(옛날 순대) → 정방폭포 → 용머리 해안 → 싱계물 공원(신창풍차해안도로) → 도두동무지개해안도로(저녁) → 제주공항

 



이전 03화 맥심을 내려놓고 카페를 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