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느덧 카페를 즐겼다
엄마의 의미, 역할, 의무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보다
엄마의 취향, 욕망, 이상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 정여울, 마음의 서재 -
엄마와 10박 11일 제주여행을 하면서 아침에 늘 하는 루틴이 있다. 바로 아침에 숙소를 나서기 전에 보온병에 따뜻한 물 담기. 밥 먹고 카페를 가듯 엄마는 밥 먹기 전후로 늘 맥심을 한잔 드셨다. 내가 커피를 마시고 정신이 깨듯 엄마는 맥심을 마셔야만 정신이 깬다고 했다. 그래서 차 안에는 늘 컵과 맥심 몇 봉지가 놓여있다.
늘 그랬기 때문에 나도 어느덧 엄마는 맥심만 마셔야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맥심 한 잔이 습관이듯 나에게 엄마의 커피는 맥심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맥심 외에는 관심 없고 잘 못 드신다고만 생각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뒤돌아보니 제주에 있는 동안 엄마와 매일 같이 카페를 다녔다. 맥심을 이미 차에서 마셨으니 카페를 가면 유자차만 시키던 엄마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와 함께 바닐라 라떼를 시켰다. 문득 깨달았다. 엄마가 카페와 커피에 대해 경험을 많이 안 해보셔서 그런 거였다는 것을. 달달한 맥심을 좋아하는 것이면 달달한 커피를 즐기는 나와 입맛이 같기에 엄마도 바닐라 라떼를 좋아했을 텐데 말이다. 카페에 가면 맥심이 없으니 안 마셔도 된다 혹은 그냥 차 마실래 라고 말한 엄마의 말은 어쩌면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경험해보면 잘할 수 있다는 표현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어쩌면 엄마의 취향 찾기를 방해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엄마 시대의 익숙함과 습관을 엄마의 취향으로만 여겼다. 그런데 경험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나 스스로는 늘 경험으로 알아가면서도 엄마는 으레 당연 모를 거라고만 생각했다. 이와 같은 깨달음을 느끼고 나서부터는 카페에 가서 메뉴판을 함께 보았다. 엄마에게도 내가 좋아하는 달콤한 커피 종류들을 소개하며 오늘은 이거, 그다음 날은 다른 것을 권유해보고 맛보았다. 그러면서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카페 가는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다.
엄마는 처음에 카페에서 수다도 떨고, 책도 보고, 잠시 멍 때리며 생각도 정리하고 쉬는 공간인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음료를 쭈욱~ 한잔 들이켜고, 또 한잔 들이켜고, 음료를 다 마시면 쉴 만큼 쉬었으니 나오는 공간이었다. 말 그대로 정말 한 숨 돌리는 시간 정도였다. 사람을 구경 하지도, 그렇다고 편히 쉬지도 않고, 카페 안의 예쁜 공간이 주는 긍정도 느낄 새가 없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달랐다. 엄마만의 카페 취향이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제주도에 왜 이리 카페만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 엄마였다. 그런데 여행 끝무렵엔 왜 사람들이 여행을 와서 밥 먹고 카페에 가서 즐기는지를 알겠다고 하셨다. 엄마도 나처럼 경험이 필요한 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일만 하느라 때로는 우리를 키우느라 어느덧 변화하는 세상 속에 따라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늘 하던 습관대로 지내는 것이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엄마에게도 경험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만큼 갈구했을 거라 생각이 든다. 엄마는 제주도 카페에 들어가면 여기는 이래서 예쁘고, 어떤 풍경과 감성 때문에 카페가 인기 있는지를 찾기 시작했다. 같은 바닐라 라떼여도 여기는 어떤 맛이 다른지를 조금씩 찾았다. 그리고 카페들마다 달콤한 디저트를 맛보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엄마와 드디어 진정한 카페 메이트가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예전에 지나가는 길에 아파트 입구로 마중 나온 고3 수험생 딸을 보자마자 인사하며 자연스럽게 딸의 가방을 들어 자기 어깨에 메는 부모님의 모습을 봤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처럼 보였다. 나와 엄마의 지난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의 감정이나 취향이 엄마에게는 우선이어서 그것을 챙겨주는 것이 자연스럽고 한편으로 당연한 일이었다.
제주도 여행 첫날 카페에 가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엄마였다. 내가 운전하느라 피곤할까 봐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쉬었다 가라고 그런 것이었다. 나를 위해 쉬는 여정으로 카페에 가기 시작했으나, 점차 엄마의 즐기는 여정이 되었으니 딸로서 더 뿌듯하다. 그간 엄마의 여행은 늘 관광지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여행 중에서 무언가 즐길거리를 찾고 취향을 살펴본다. 자식을 다 키우고 난 후, 60대 중반에야 비로소 엄마도 엄마를 다시 알아가는 시간이리라.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앞으로는 엄마가 본인의 취향을 더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이제는 내가 엄마의 가방을 한쪽에 메고 옆에서 지켜봐 줘야겠다.
여행 마지막 날, "오늘은 마지막으로 어디 카페 갈까?"라고 말하는 엄마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난다. 이제는 날 위한 건지 본인을 위한 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시동을 켜고 네이버 앱으로 새로운 카페 위치를 찾는다.
01. 원앤온리
산방산 근처 카페 하면 아마 다들 원앤온리부터 생각할 것이다. 그 정도로 평일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넘쳐났다. 자리가 없어서 겨우 끝자락에 자리 잡고 앉았다. 카페 안에도 있지만 밖이 명소이다. 뒤로는 산방산 전경이 배경이 되고, 앞은 바다가 펼쳐있기 때문에. 우리가 간 날은 날씨가 다 한 하루였다. 산방산이 선명하게 보였고 바다 앞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은 잠시 쉬었다 가기 좋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엄마가 여기서부터 첫 바닐라 라떼를 나눠마시고(그전에 감귤주스를 마셔서 음료는 한잔으로) 맛있다면서 이런 커피는 먹을만하다고 했다. 이렇게 엄마의 카페 탐방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는 눈앞에 바다가 너무 예쁘다며 한참을 쉬었다. 그리고는 우리도 산방산을 전경으로 사진을 찍고 카페를 나왔다.
02. 카페뷰
이번에는 우도에 갔을 때 찾은 카페뷰. 돌아가는 배 시간상 원래 가려고 찾아놨던 곳은 왔던 길을 돌아가야 해서 애매했기 때문에 가던 길 근처로 찾아보다 우연하게 들어간 곳이다. 하고수동해수욕장과 가깝기 때문에 해수욕장 들렸다가 가거나 가는 길에 들려도 좋은 곳이다. 기억을 더듬어 카페는 1, 2층으로 되어 있고, 사람들은 대부분 바람이 불어 시원한 1층과 외부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예쁜 바다를 즐기기에 충분한 카페였다. 제주도에 왔으면 우도 땅콩 아이스크림이지! 정말 우도땅콩 가루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조합은 최고. 이후 다른 곳에서도 먹어봤는데 엄마는 여기서 먹은 땅콩 아이스크림이 제일 맛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너무 맛있어서 결국 2개나 해치웠다. 우도 해안도로 앞에 있기 때문에 드라이브하다 들려보기를 추천한다.
03. 꼬스뗀뇨
이름이 특이한 구좌읍에 있는 꼬스뗀뇨. 네이버 지도에 여러 카페와 음식점 명소를 표시해두었는데, 때마침 드라이브하는 길과 가까워서 방문했다. 이날은 여행 5일 차로 엄마와 나 모두 여행 피로도가 쌓여서 그런지 서로 유독 예민한 날이었다. 섭지코지를 다녀와서 투닥투닥 계속 싸워서 이럴 바에는 카페에 들렀다가 숙소에 일찍 들어가서 쉬자고 결론을 내고 간 카페이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둘 다 카페에 들어서며 스르르르 각자 풀리는 게 느껴졌다. 등장부터 야자수가 인상적이었다. 카페 안에 들어가면 높이도 높고 공간도 어마하게 컸다. 공간만큼이나 좌석도 널찍하게 놓여있어서 좋았다. 한쪽 벽면에는 돌담과 나무가 보이도록 창문을 낸 곳이 예뻤고 인테리어가 감각적이었다.
카페브륄레가 내 입맛에는 정말 맛있었다. 크림과 커피의 적절한 조화. 엄마도 달달 쌉싸름하면서 맛있다고 했는데, 초반에는 좀 많이 달다고 했다. 소금빵은 맛있어서 우걱우걱. 어느 순간부터 디저트 카페 가면 소금빵이 많이 보이길래 보일 때마다 맛을 보았다. 우리는 야자수가 보이는 곳 중에서도 그늘 진 곳을 찾아서 쉬었다. 야자수가 놓인 선베드가 있는 곳은 낮에 가니 해가 바로 비춰서 더워 보였다. 그래서인지 외부에는 사람이 없고, 그나마 안쪽으로 그늘진 몇 곳에만 사람이 있었다. 야자수와 바다, 제주와 동남아 느낌을 한 껏 느끼고 싶은 곳을 찾는다면 추천한다.
04. 카페 청굴물
이날은 북동쪽을 즐기는 날이었는데, 볼거리와 카페의 여유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바로 청굴물이었다. 청굴물은 제주 용천수로, 용암대지 하부에서 용천수가 솟아나는 곳이다. 아직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닌데 얼마 전에 TV 여행 프로그램에 나온 뒤로 인기가 많아졌다고 한다. 카페는 주차할 곳이 적고(4곳 정도) 이 근처 공터 또는 가기 전에 김녕 무료 공영 주차장이 있는데 거기에 주차하고 2~3분 걸어가면 편하다.
청굴물은 밀물 썰물 때를 잘 맞춰가야 한다. 너무 밀물일 때면 바다에 거의 잠겨 보기가 어렵고, 또 너무 썰물이면 바닷물 없이 휑한 상태로 보인다고 한다. 우리는 우연히 찾아갔는데 적당한 때를 잘 찾아간 듯했다. 카페는 청굴물 이름을 따서 카페 청굴물인데, 크기는 크지 않고 카페 내부에 좌석은 3~4개 정도, 외부 돌담 탁자로 해서 청굴물을 바로 볼 수 있는 자리 4~5곳이 있다. 다행히 창가 자리가 생겨서 청굴물을 배경 삼아 달달함을 충전했다. 청굴물 주변에는 사진 찍는 사람이 가득해서 카페에서 쉬면서 사람들이 조금 줄어들 때까지 기다렸다.
날이 조금 흐렸지만 예뻤던 청굴물. 맑은 용천수를 보며 자연이 주는 신비로움까지 느꼈다. 양쪽에 나뉜 용천수까지 감상하고 청굴물 타임을 마무리했다. 김녕이나 북동쪽 코스로 갈 일이 있다면 꼭 카페를 가지 않더라도 들렀다 가기 충분한 장소이다.
05. 호텔샌드
이곳은 협재해수욕장 카페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곳 중 하나이다. 앞에는 제주의 비양도 뷰가 펼쳐지는데 카페 전경은 파라솔 덕분에 동남아 분위기도 난다. 제일 치열한 자리는 아무래도 파라솔 자리와 선베드 자리. 자리가 없어서 맴돌다 그냥 내부에 자리를 잡았는데, 주문하는 사이 엄마가 후다닥 매의 눈으로 파라솔 자리를 선점했다. 역시 자리 찾는 것은 나보다 빠른 엄마가 최고.
저녁까지 운영해서 그런지 맥주와 와인도 판매한다. 바다를 보며 와인 한 잔, 상상만 해도 감성적이다. 날도 너무 좋아서 비양도가 선명히 보이고 에메랄드 바다색까지, 분위기가 그림이었다. 낮이어서 그런지 파라솔 피고 수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주 협재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고 청량감을 느꼈다. 시간적 여유도 많았지만 바다 가까이여서 그런지, 해외 느낌도 물씬 나서 그런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호텔샌드에서 꽤 오래 있었다. 바다에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제주 바다의 에매랄드 색을 가까이서 즐기고 싶다면 호텔샌드에서 머무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