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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쿠키 Oct 28. 2022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엄마의 6월이 수국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어 


편히 떠나보는 게  어려운 일이 돼버린 사람
동네 담벼락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아직도 걸음 멈추는 사람
엄마의 사진엔 꽃밭이 있어
꽃밭 한가운데 엄마가 있어

- 김진호,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






나의 제주 한 달 살기의 시작은 엄마와 함께였다. 엄마는 15년 전에 제주여행을 오시고 그 뒤로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퇴직하는 딸을 반길 만큼 이번 여행날을 손꼽아 기다리셨다. 그리고는 이번 여행에 무엇을 입을지, 선글라스를 낄지 말지, 모자를 쓸지 말지, 액세서리를 할지 말지 몹시 분주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고 흐뭇하게 보았다. 꼭 내가 초등학교 때 소풍 준비를, 중고등학교 때는 수학여행을 준비를, 대학교 때는 해외여행을 준비를 하던 모습과도 같았다. 출처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림 하나가 생각났다. 어렸을 때 자식을 키우고 보살피던 부모님 모습에서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자식이 커가며 부모님을 보살피는 한 생애주기 그림이었다. 자식과 부모님의 생애주기가 점점 반대로 되는 모습, 엄마와 나는 그 중간에서 후반으로 달려가는 시기라 생각된다. 


들뜬 엄마의 모습을 보며, 제주도 초반의 생활을 엄마의 활동 패턴과 성향에 맞춰서 준비하는 나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여행 갈 때는 엄마가 나를 케어하고 내 중심으로 준비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반대로 내가 엄마를 케어하고 여행을 리드하는 그런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엄마, 제주도에서 하고 싶은 거 있어?"

"활짝 핀 꽃들을 보고 싶어"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10박 11일 제주 가이드가 된 나는 각종 꽃을 볼 수 있는 곳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날씨와 이동 코스에 맞춰 일명 꽃 코스를 넣었다. 15년 만의 엄마의 제주여행을 축하해주고 응원해주는 듯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특히 꽃 코스를 넣은 날은 해가 엄마의 사진발을 만들어주려는 듯 쨍하게 빛났다. 


꽃이 좋다던 엄마는 꽃을 보면서도, 돌아다닐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가질 때도 15년 전과 많이 달라진 제주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그때의 여행 일화도 함께 이야기했다. 아마 그 시기를  회상하며, 친구분들과 오셨던 그때의 추억과 젊음을 계속 곱씹는 듯했다. 15년 전 그 여행 시점의 나와 동생의 모습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소재였다. 그때 나는 갓 대학생이 되었고, 동생은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엄마한테는 그 시절의 여행만큼이나 우리의 모습이 생생했다. 그리고 이야기에서 풍기는 묘한 그 시절의 그리움이 담겨있었다. 


여러 꽃 코스를 돌아다니며 엄마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너무 좋다, 정말 예쁘다" 그리고는 바로 "언제 또 오겠니". 두 문장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자식인 나로서는 많은 감정이 들게 했다. 미안함과 고마움, 좋음과 슬픔이 계속 뒤섞였다. 그리고 '언제 또 오겠니'라는 말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가 스스로 본인의 건강을 장담하지 못하는 것만 같아서 더 아프게 와닿았다. "나중에 동생네랑 아빠랑 또 오면 되지"라고 말하며 다른 말로 돌렸지만, 나와 엄마는 알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우리 둘이 큰마음먹고 왔다는 것을. 


여행 내내 엄마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쉴틈이 없었다. 매일 돌아다녔던 곳과 예쁜 꽃 사진들이 올라갔다. 우리에게 인스타그램이 있다면, 인스타그램을 잘할 줄 모르는 엄마와 엄마 친구분들의 SNS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도 같다. 그중에서도 꽤 오래 배경화면에서 프로필 사진을 번갈아가며 하고 있는 것은 수국 사진. 6월의 제주도는 수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국을 보며 좋아하는 엄마를 그 옆에서 나는 바라보며, 엄마의 이번 여름이 이번 6월이 수국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수국처럼 만개한 그런 나날들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15년이 지나 엄마가 이번처럼 누군가에게 15년 전의 제주 이야기를 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 활짝 핀 꽃들과 함께 했고 나의 시간도 활짝 피었다고 말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제주를 보다> 6월~7월의 제주도 꽃 코스


01. 답다니수국밭


제주도의 6월은 수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특정 장소를 가지 않아도 드라이브하면서 종종 수국 길을 볼 수가 있다. 다만, 차도 옆이 대부분이어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꽃을 보고 싶다던 엄마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수국이었다. 휴애리자연생활공원, 보름왓, 종달리 수국길 등 여러 수국 장소가 있는데,  답다니수국밭을 선택한 이유는 서귀포 쪽이어서 숙소와 가까이 있고 가려던 장소 전에 거쳐 갈 수 있어서였다. 그리고 1000원을 더 내면 수국 한 다발을 준다고 해서 선택하기도 했다. 


입장료를 지불하면 수국을 선택할 수 있는 구역이 있는데 거기서 가져가고 싶은 수국을 선택하면 아저씨가 잘라서 물이 담긴 작은 병에 담아 주신다. 선택할 수 있는 구역의 수국은 밝은 색은 없고 대부분 파란색과 보라색이 전부였다. 수국은 엄마와 함께 사진 찍을 때는 용이한 소품이 되어줬다. TMI지만 숙소에 와서 매일 물을 갈아주며 키우니 일주일은 계속 지켜볼 수 있었다. 나도 몰랐는데 수국은 너무 더우면 꽃잎이 지친거마냥 풀이 죽었다가 바람이 부는 시원한 장소에 두면 반나절 만에 다시 살아난다. 


답다니수국밭은 6월만 운영되는 곳이다. 우리는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돌아보는데 대략 1시간 정도 걸렸다. 이동경로가 길거나 장소가 넓은 것은 아니나 곳곳에 사진 스팟이 많다. 수국이 활짝 핀 곳에 의자도 놓여 있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삼각대로 놓여있다. 갔던 날이 완전 해가 쨍쨍한 날이어서 그늘이 없어 더웠지만 그래도 사진 하나는 많이 건졌다. 6월의 수국은 진리!





02. 오셜록


오셜록은 쨍한 햇살과 함께 6월의 파릇파릇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엄마가 희한하게 제주도에 와서 오셜록은 못가보셨다해서 돌아다니다가 차 마시며 휴식도 취하고 녹차밭도 볼 겸 겸사겸사 둘러보았다. 


더위도 식힐 겸 카페에서 우도 땅콩 오프레도와 녹차아이스크림 바움쿠헨을 시켰다. 바로 밥을 먹으러 갈 거여서 세트는 생략. 달달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우도 땅콩 오프레도가 정말 맛있었다. 반면 단 것을 잘 안 드시는 엄마는 녹차아이스크림이 담백해서 맛있었다고 하셨다. 역시나 오셜록은 사람이 많아서 자리 겨우 잡아 후다닥 먹고, 오셜록에 온 주된 이유를 실천하러 갔다. 


푸르디푸른 녹차밭에서 사진 찍으러 갔는데, 엄마는 오 셜록에서 나와 주차장 가는 길에 핀 꽃들이 더 좋으셨나 보다. 연신 꽃 옆에서 사진을 찍으셨다. 본인 핸드폰으로도 꽃을 가까이서 멀리서 여러 각도로 애지중지하며 찍으셨다. 엄마에게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은 예쁜 사진 배경이라 반가웠고 보고 싶은 꽃 그 자체여서 더 반가움이었으리라. 





03. 북촌에 가면


카페 청굴물(김녕) 갔다가 저녁은 함덕에서 먹을 예정이라 잠시 거칠 곳이 필요했다. 우연히 그 근처를 검색하던 중 북촌에 가면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청굴물 카페에서 음료를 마신 터라 입장료만 지불하고 들어갔다. 그리고 4시 이후에 방문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적어서 사진도 사람 없이 원하는 곳에서 마음껏 찍을 수 있었다 


기대를 안 하고 갔는데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수국과 길거리 이름 모를 꽃들만 보다가 각종 장미가 활짝 피어있는 길을 보니 기분이 다 쨍했다. 꽃 마당이 크게 넓지는 않은데 색색의 꽃들이 피어 있다 보니 웨딩 촬영하는 커플도 보였다. 우리는 그 반대 장소에서 삼각대를 놓고 엄마와 연신 사진을 찍었다. 활짝 핀 꽃 마냥 엄마의 활짝 핀 미소를 볼 수 있었다.  




04. 한림공원

         

한림공원은 사실 계획에 없던 장소였다. 그런데 동쪽 위주로 다녔던 일정을 서쪽으로 옮기니 마땅히 해변 말고는 볼 곳이 크게 없었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협재해수욕장 카페에서 쉬다가 바로 가까운 한림공원을 가기로 급 결정했다. 입장료를 내며 '다른 관광지들 대비 비싸네..'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지였다. 점심과 카페 디저트 등 잔뜩 먹었던 우리는 소화를 시키기 위해 산책이 필요했는데 산책하는 코스로 딱이었고, 알고 선택한 것은 아니나 6월의 꽃 페스티벌을 하고 있었다.


야자수 나무와 삼나무들에 쌓여 쉬엄쉬엄 걷기 좋다. 대부분 평지고 숲길과 그늘도 많아 쉴 곳도 종종 있어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산책하면서 구경하기에 좋다. 전반적으로 쉬면서 사진 찍고 하다 보니 1시간 10분 정도 전체를 관람했다. 


입구에서 한 20분쯤 걸으면 넓은 공원이 보인다. 그리고 걷다 보면 동굴들이 나온다. 처음에 한림공원에 웬 동굴? 이런 생각을 했는데, 3개의 동굴이 이어져 있어서 쭉 걸으면서 관람했다. 당일 조금 흐려서 선선한 날씨였기에, 무더운 여름에 들리면 엄청 시원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코스라 생각했다.


우리도 알지 못했던 보물 같은 곳. 한림 공원을 걷다 보면 "부겐빌레아 축제"라고 써진 현수막과 안내문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대체 이게 뭔가 하고 걷다가 부겐빌레아 꽃밭을 발견했다. 붉은색, 분홍색, 보라색 등 형형색색의 부겐빌레아 꽃을 보고 엄마는 연신 사진을 찍으셨다. 그리고는 여기 오길 잘했다고 말하셨다. 온실로 꾸며진 부겐빌레아 꽃밭은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곳곳에 사진 스팟을 만들어두었다. 6월 말까지 부겐빌레아 축제를 한다고 안내가 되어 있다. 아마 계절별 혹은 월별로 시기에 맞는 꽃 축제를 여는 것 같다. 엄마는 제주도의 6월은 수국이랑 부겐빌레아라고 정정하여 말하였다.


온실을 나와 한 바퀴 돌면서 입구로 돌아간다. 가다 보면 타조 등 새와 동물이 있는 작은 동물원도 있었다. 작은 민속촌도 있었고 연못도 구성되어 있었다. 멋 모르고 근처에 공원이 있어서 산책 겸 들어갔는데 이렇게 큰 공원인 줄은 생각도 못했다. 덕분에 여러 꽃을 볼 수 있었던 여행이다. 여행하는 시기에 협재 근처를 방문할 계획이라면 한번 어떤 꽃 축제를 하는지 살펴보고 가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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