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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트쿠키 Oct 28. 2022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프롤로그

모든 선택에는 정답과 오답이 공존합니다.
그러니 어떤 것이 옳은지 고민하지 말고 선택을 해봤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뭐냐,
바로 돌아보지 않는 자세입니다.

- 박웅현, 여덟단어 中 -




네 번째 퇴직, 정확하게 말하면 이번에는 폐업으로 인한 비자발적 실직이나 이는 형식적이다. 실질적인 마음은 진실로 폐업일만을 손꼽아 기다렸기에 퇴직이라 말한다. 회사 특성상 존속기간이 5년 전부터 정해진 곳으로, 나는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자발적으로 들어갔다.


바쁠 때는 바빴지만 업무강도는 그 전 회사보다는 나았고 팀장님도 좋았는데, 유독 나는 이 회사에서 힘들었다. '왜, 무엇이 그리도 힘들게 했나'라고 묻는다면 아직까지 정확하게 답을 하지는 못하겠다. 남들이 보면 그럴싸한 환경과 먹고살만한 연봉이었으나 이곳에 있으면서 나는 병들어가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술도 안 먹었는데 잦은 구토 증상을 보여 살이 빠져갔고, 염증 수치는 높아갔다. 사무실에 앉아서 내 사업에 대한 이야기와 내 이름이 불릴 때면 숨이 가빠지는 날이 많았다. 일하면서 내 이름이 불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거고 자연스러운 건데 그 자연스러움이 점점 불편하고 힘들었다.


상황과 환경의 문제도, 사람의 문제도, 나한테도 문제가 있었다. 무슨 일이든 복합적인 거니까. 하지만 나는 어느덧 내 성격이 이래서, 내 성향 때문이라며 문제의 화살표를 스스로에게만 몰아붙였다. 이런 화살표는 회사 내의 문제 만이 아닌 내 삶에서도 점점 영향력을 펼쳐갔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커리어를 높인다는 그럴싸한 표현으로 이직사유를 말해왔지만, 항상 회사에 대한 어려움과 힘듦을 품고 퇴사를 선택했다. 이런저런 일들을 마다하지 않은 덕에 감사하게도 결과적으로 커리어를 높여오기는 했지만 이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당시 상황을 버틸 힘이 부족해서 박차고 나와 다른 선택을 한 결과물이다. 남들은 10년, 20년 한 회사를 다니며 나와 같은 상황들을 현명하게 극복하거나 때로는 잘 버티며 살아가는데 나는 왜 매번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는 것일까. 늘 퇴사 후 하는 생각이고 이번에도 여전하다.


그래서 이번에도 퇴직 후 무모하게 쉼을 선택했다. 감사하게도 폐업 전부터 팀장님과 다른 운영팀이 경력 지원 제안과 조언을 주셨다. 하지만, 그 감사한 기회를 용기와 응원으로 생각하며 나는 내가 생각한대로 선택했다. 그리고 제주도에 갔다.


사실 제주도 행을 선택한 이유는 엄마의 잔소리 회피용이었다. 퇴직 후 제일 걱정되었던 것은 이직, 미래 준비 등 보다 당장 현실적인 엄마의 잔소리였다. 30대, 미혼녀, 여기에 백수라는 타이틀까지 장착하는 날부터 엄마의 잔소리는 더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 생각한 묘수가 '엄마와의 제주도 여행'이었다. 제주도를 관광상품으로만 다닌 엄마는 구석구석 다니지 못한 곳과 먹어보지 못한 음식에 대한 아쉬움을 늘 가지고 계셨다. 나는 이걸 이용해서 나의 퇴직 날은 엄마의 제주도 여행 준비의 시작인 것으로 교묘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엄마에게 나의 퇴직은 썩 반갑지 않지만 묘하게 설레고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원래 숙소를 29박 30일 딱 한 달 살기로 예약했는데, 제주도에 엄마와 도착한 당일 바로 2주일 더 연장했다. 엄마와의 10일 여행 후 그다음 주 아빠까지 1박 2일 함께하게 되어, 나의 한 달 살기가 아닌 나의 가족여행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래서 혼자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족 여행을 마무리하고 제주도 6주 살기(나혼자 4주) 하면서 해보고 싶은 것들은 단순하다.


1. 매일 한 시간 이상 산책하기 -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걷기

2. 일출과 일몰 감상하기

3. 공천포(숙소 동네)를 알아가기 


제주에서의 생활이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4번의 퇴사 과정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이와 비례해서 불안함은 배가 되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으로 터득한 나의 길은 쉬면서 기회를 찾았고 그렇게 기회가 왔고, 결국엔 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 나의 경험을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는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한사람 한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 가는 길이다.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찾는 시도이고 오솔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누구도 완벽하게 자기 자신이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이는 조용히, 어떤 이는 분명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이 되려고 최선을 다한다." 


스스로를 찾아가는 삶,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이 되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제주도를 선택했고 이제 내가 할 일은 선택하지 못한 것에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 생활을 더 옳게 더 풍성하게 최선을 다해 만드는 것임을 다짐해본다.


나의 제주일기, 이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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