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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MA Mar 29. 2023

이 삶이 지긋하여

죽기로 결심한 원 안에 그려진 인생

지긋하다 :

1-1. 형용사, 진저리가 나도록 싫고 지겹다. 

1-1. 형용사, 몸에 소름이 끼치도록 잔인하다. 

2-1. 형용사, 참을성 있게 끈지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통틀어 원형 그래프를 그린다. 어떤 기준으로 그릴 것인가. 음, 오늘은 감정이나 기분을 기준으로 삼는다. 정말 행복하거나 설레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내일이 온다는 사실이 기대되거나 아, 인생 참 재밌군! 하는 생각으로 잠들었던 밤을 세어 본다면 얼마나 될까. 예각의 기준안에서도 아주 작아 찔리면 피가 방울방울 떨어질 것만 같은 삼각형이 그려질 것이다. 물론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순간들도 있겠고 당시엔 그랬고 지금은 아닌 경우들도 있겠으니 딱히 정확하진 않겠지. 그렇다고 그 모든 반박을 반영할 여유가 없으니 지금 내 기준을 그대로 따르도록 하겠다. 그렇다. 지금 나는 아주 삐뚤고 모든 게 밉다. 반항하고 싶다. 


지루하고 지긋지긋한 삶의 연속. 때때로 이 삶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곤 한다. 그 답이 죽음이었다. 서른, 서른이 되면 죽는 것이 목표였다. 청소년 때부터 꿈꾼 단명. '죽기밖에 더하겠어?'가 말버릇이었다. 죽음은 도피처였고 희망이었고 역설적이게도 사는 이유였다. 서른이라는 시한부가 있으니 후회가 없으려면 이것저것 다 해봐야 했으니까. 그러면서도 만약 살고 싶어 진다면 어디 한 번 살아보자는 심산이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10년 후 서른이면 10년 정도 살아보다가 성에 안 차면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 후, 딱히 달라질 것도 없는 이 삶에 미련이 남지도 않는데 지금도 기꺼이 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몇 년 후, 어쩌면 살아봐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30대가 된 내 모습이 기대가 되는 어떤 날도 있었다. 사실 이런 날도 없이 어찌 사나. 하지만 동시에 살면 어쩔 건데? 살아낼 자신은 있고? 하는 걱정과 불안이 찾아오면 또다시 돌아간다. 어머 미쳤나 봐 살겠다니!


오랜만에 기차를 탔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봄풍경에 넋을 놓고 보는 것도 10분, 나중엔 지루해서 딴짓을 했다. 따뜻하고 눈부신 햇살은 어느새 방해꾼이 되었고 블라인드를 내리는 것으로 끝났다. 기차는 목적지가 있다. 아무리 지겹고 좀이 쑤셔 미칠 것 같은 시간이라도 버티면 결국 끝은 있다. 그 시간도 결국엔 도착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견딜만하다. 드라마 몇 편, 영화 한 두 편 보면 된다. 아니면 자든가. 근데 내 삶은 아니다. 오롯이 모든 걸 겪는다. 지루한 시간이 끝없다. 목적지가 없다. 그냥 냅다 달리기만 한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 지도 모른다. 언젠가 찾을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에 자격증도 따고 취직도 하고 공부도 했다. 꿈같은 직장에서 일도 해보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행복하기도 했다. 그뿐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잠깐의 행복과 만족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라는 말이겠지만, 나머지 하루하루가 숨을 조인다. 의미가 없다. 너무 지루해서 하품이 나온다. 입이 찢어질 것만 같다. 눈물이 흐른다.


서른까지 3년이 남았다. 사실 무섭다. 죽기도 살기도 무섭다. 딱히 달라질 것도 없는 내 삶에서 돈걱정이나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느니 죽어버리고 싶다. 그럼에도 단 한순간 바뀌기 직전에 모든 걸 놓아버리는 것일까 봐 두렵다. 그렇다. 기대. 아직 기대는 있다. 당장 살고 싶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서 감당해 낼 자신은 없다. 원형그래프를 다시 그려보자. 사느냐, 죽느냐를 기준으로 그린다면 원을 가로지르는 선을 그어 조금씩 움직인다. 살고 싶었다가도 죽고 싶은 나날들이 일으킨 진동이다. 죽기로 결심한 원 안에 그려진 인생. 과연 나는 이 지긋한 삶을 마침내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은 아무래도 죽는 쪽으로 기울어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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