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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한 것과 재즈피아노

드디어 시작

by 소하 Jan 12. 2023

無用

겨울엔 빠르게 해가 지기 마련이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했던 여행에서 금새 어두워지는 풍경에 일찍 숙소로 돌아오다 보니 저녁시간이 널널했다. 같이 영화라도 볼까싶어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던 중 친구가 아직 미스터 선샤인을 보지 못했다는 말에 꼭 봐야 한다며 바로 플레이를 눌렀다. 스포츠 경기도, 영화도, 드라마도 마음 졸이며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에게 인물과 스토리를 설명하다 보니 문득 생각나는 대사가 있었다. 


내 원체 이리 아름답고 무용(無用) 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볕, 꽃, 바람, 웃음, 농담 뭐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김희성의 말


희성의 말처럼 나도 무용한 것들을 좋아한다. 언젠가 글쓰기 수업 때 썼던 떠올리면 좋은 것들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보니 노을 지는 하늘과 바다, 햇볕이 따뜻하게 쏟아지는 조용한 카페, 음악을 들으며 좋은 가사를 발견하기, 겨울 간식, 나무냄새 등등 전부 다 나열하기에 너무 많은 것들이 나의 좋아하는 것들의 리스트에 빼곡히 쌓여있다. 퇴사 후 만으로 3개월 정도가 지나다 보니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작은 압박감이 찾아온다. 요즘은 내가 모르는 다른 이의 일상도 쉽게 살펴볼 수 있는 세상이다 보니 취준생이나 이직자들이 각종 자격증과 요즘 핫하다는 ㅇㅇ 캠프, 언어 관련 공부(나랑 비슷한 시기에 휴직한 내 친구도 영어공부를 한다)를 하며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증명할 거리에 에너지를 쏟는 와중에 무용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책을 읽고 문장을 끄적거리고 산책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일하면서도 여러 번 배우고 싶었던 재즈피아노 레슨을 위해 피아노 학원에 가서 등록을 했다. 


이런 나를 보면 누군가는 나이를 그렇게 먹고 대책이 없다고 생각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고, 누군가는 뭐라도 배우면 좋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희성이 글쓰기는 힘이 없다고 했지만 결국엔 독립활동의 일환으로 기사를 썼던 그를 생각해 보면, 세상에 무용한 게 어디 있겠나 싶기도 하다. 

클래식 피아노를 배운 사람은 악보에 있는 것을 그대로 치는 것에 익숙하다.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데 익숙하다보니 악보에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을 치는 것은 어렵다.(당연한 말인데..?!) 하지만 재즈에서는 악보에 없어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느껴졌었고 실제로 재즈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만 봐도 내가 괜히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팍팍한 직장생활에서 자유를 찾고 싶었던 마음 구석의 본심이었는지는 모르나, 어찌 되었든 나는 재즈피아노를 배우기로 했다.


우리 각자가, 살아서,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기까지,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에 대해 나는 경이를 느낀다.

                                  샤샤세이건의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중에서


고작 재즈피아노를 배우기로 시작하는 글이 너무 거창한 듯 하지만, 올해 어느 매 즈음에 돈을 벌거나 취업을 위한 자격증이 아닌 재즈피아노를 배우기로 한 나에 대해 경이를 느끼는 순간도 올 수 있지 않을까. 올해 나의 태도로 삼은 '할 수 있는 것을 지금 해보자'와 '무엇이든 계속 기록하자'가 만나 그냥 시작해 보는 재즈피아노 배우기 글을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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