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사람의 정체성을 깨달았다, 이래서 기록과 회고는 중요하다
책 <질문 있는 사람> 이 있어서일까. 왠지 질문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이미 마케터 숭님이 가지고 있어 따라하는 것 같지만, 숭님과 나는 질문의 주체 자체가 다른 것 같다.
숭님은 타인에게 혹은 상황적으로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냥 어렵지 않게 질문한다고 했다. 나는 숭님처럼 타인에게 질문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성향상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았을 때의 난감함을 타인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궁금한 마음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인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가벼운 것보다는 무겁고 깊은 것들이 많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시도하지 못했는지, 그 구간에 어떤 일들로 인해 변화가 찾아왔는지 등등의 것들처럼 상대의 역사가 묻어나고 사건에 대해 소개받고 싶다. 그 사람만의 경험에 대해 궁금하기에 가볍게 만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할 수 있는 질문도 하고 싶은 질문도 많지 않다.
다만, 점점 상대를 알아가고 자주 부딪히거나 흥미로운 상대에 대해서는 이리저리 검색도 하고 그 사람이 쓴 책도 읽어보며 사람 자체에 대해 탐구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탐구하면서 좋아보이는 것들을 가져오기를 즐겨한다.
타인의 것을 나의 것으로 가져오기를 즐겨하다보니 타인에 대한 특징을 잘 잡아서 흉내내기도 잘 하는 편이라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 깨알 웃음을 나누기도 했다. 나에게 없지만, 내 눈에 좋아보이는 타인의 좋은 점은 기억해두고 가져오려 애쓴다.
어렸을 때는 따라하고 싶은 사람, 알아가고 싶은 사람, 무언가 가르쳐달라고 하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 나이가 들고 나도 조금씩 성장하면서 내가 그 사람들의 단면만 보고 좋아하고 무언가 따라하고 싶고 배우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연히 알게된 사실은, 내가 좋게 생각했던 이러이러할 것 같은 사람이 나의 이미지와 상반된 행동을 하거나 내 기준에서 깨는 행동을 하면서 내가 동경하거나 따라하고 싶었던 좋게 보았던 그 사람의 이미지와 바람을 깨주는 경험을 통해서다. 나는 갓 20대에 접어든 어른이라 하기엔 너무 어렸기에, 나보다 5-6살 많은 언니오빠들도 꽤나 멋있고 성숙한 어른이라 생각했었기에 기대가 큰만큼 실망도 컸다.
이런 실망은 회사생활에서도 이어졌다. 배우고 따르고 싶었던 어른은 없었지만, 그 자리에서 이렇게 해줘야하는 것 아닌가 싶은 이상향에 부합하지 않은 상사와 어른들에 화가나고 실망하기 일수였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덜 할텐데 늘 나는 최상에 있는 이상적인 상황에 대한 바람을 잘 버리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내 안에 질문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답도 내가 내야만 했다. 아무도 답해주지 않으니까.
왜 이럴 수밖에 없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내가 무엇을 해야 바꿀 수 있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자연스럽게 문제를 분석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부터 바꾸어갔다. 보다 일적인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어려보이는 말투도 '습니다' 체로 바꾸고 편안한 분위기를 갖되 장난치는 모습은 줄여갔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갔다. 좋은 상사가 없으니 나에게 질문하고 내가 대답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좋은 대답인지 나쁜 대답인지 적절한지 아닌지는 대략의 감을 잡아가며. 그래서 헤메고 넘어지는 시간을 숱하게 겪었다.
경력이 늘어가면서 조금씩 성장하면서 내 안의 질문이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런게 어려울까? 다른 사람도 어려울까? 나만 힘든걸까? 다른 사람도 힘든걸까?
질문이 내 안에 쌓여가지만 일처럼 바로 분석하고 답이 나올 수 있는 범위도 아니었고, 진득하게 나에 대해 탐구하고 분석할 시간도 부족했다. 아니다. 나름 분석을 했지만 그 분석은 틀릴 수밖에 없는 분석이었다.
‘나’에 대한 분석이 아닌 ‘일하는 나’에 대한 분석이었기 때문이다. ‘일하는 나’에 대해서만 분석을 하니 답도 ‘일하는 환경’과 ‘일하는 나의 역할’ 혹은 ‘일’과 관련해서만 답을 찾으려했다. 진짜 원인은 진짜 내 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번아웃을 크게 맞으며 여러 질문이 쏟아져 내렸다. 11년 간 비슷한 일을 꾸준히 해왔는데 왜 이제서야 번아웃이 온걸까? 왜 이 시점일까? 내가 어떻게 했어야 번아웃이 오지 않을까? 앞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번아웃을 맞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또 번아웃을 맞는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번아웃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에게 어떤 기준이 필요하고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답을 찾았다.
그렇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간 과정을 워크숍으로 만들었고 '퇴사 전, 나를 찾는 셀프 인터뷰'가 큰 주제가 되었다. 워크숍은 나 스스로를 알아가는 셀프 인터뷰 형식으로 질문이 구성되어 있고, 워크숍의 일부분은 해당 주차에 맞는 나의 고민과 경험의 이야기를 나누고 워크숍 멤버들이 작성한 셀프 인터뷰의 내용을 나눈다.
기억에 남는 멤버들의 말들은 이런 것이다.
“질문에 답을 곰곰히 생각하면서 글로 쓰니 정리가 되는 기분이라 좋아요.”
“퇴사 전에 이런 것을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질문에 답을 하다보니 저에겐 꼭 퇴사가 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해당 주차마다 답을 하다보니 일의 환경이나 직무의 문제가 아니라 ‘저’ 자체에 대해서 정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일의 환경이나 직무는 이렇게 정리해보니 꽤 저에게 좋은 편인 것 같은데 계속 힘든 이유는 저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무척 다행이고 감사했다. 나도 나에게 질문을 하며 나만의 답을 정리한 뒤로 조금씩 도전하고 느리지만 움직이고 있으니까. 방향은 대단한 커리어 쌓기도 아니고 유명해지기도 아닌 나를 해치지 않고 안전하고 지속가능하게 나를 운영하는 법과 일하는 법을 쌓아가는 중이다.
나는 또 계속 질문한다.
나의 불안과 마음에 대해. 왜 불안할까? 불안하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