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건 몸 밖에 없는 프리랜서는
나의 프리랜서 일의 시작은 예상치 못했던 퇴사로부터 시작되었다. 평생 재미있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생각했던 일이 재미 없어지고 힘들어서 하기 싫고 다 그만두고 쉬고 싶다는 생각, 차라리 크게 아파서 출근을 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휴직이 아닌 퇴사로 나를 쉬게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1년의 휴식기를 가지면 몸도 마음도 어느정도 회복이 되어 다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거라고 하루도 예측이 안 되던 때에 앞날이 깜깜했지만 내년은 지금보다 나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퇴사를 선택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사실 퇴사를 결정할 땐 긍정적인 생각은 거의 없었던 듯 하다.
'다시 취직 못하면 어떻게 해야하지?', '1년이 지나도 몸도 마음도 회복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야하지?' 그저 막역한 두려움과 불안감만 안고 퇴사한 뒤 몇 개월을 쉬면서 자연스럽게 몸도 마음도 회복이 되었었다. 퇴사한 김에 회사 밖에 재미난 것들이 꽤 많아보여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소속된 조직 없이 강의도 해보고, 전시 기획도 해보고, 인터뷰 연재, 워크숍, 개인 프로그램 컨설팅도 하고 돈을 얼마나 버느냐와 상관없이 재미를 쫓아 여기저기 일을 벌이고 해내는 기쁨으로 살았다.
작년 말 독감으로 고생하며 간신히 전시를 마치고 나서는 몸이 아프니 할 수 있게 없다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회사는 팀으로 굴러가기에 내가 일을 못하면 대신 일해줄 누군가가 있지만, 프리랜서는 내 몫의 일은 그저 기한 내에 해내야만 하고 대신 일해줄 사람이 없다. 한 명이 한 팀이자 하나의 회사 같은 거다. 프리랜서는 출퇴근 없이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임과 동시에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야하는 사람이었던거다. 프리랜서 2년차, 프리랜서나 개인 사업자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프리랜서는 팔아야할 물건이 노동 서비스일 뿐이다.
퇴사 후 크게 배우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몸만큼 마음도 잘 돌보고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아침마다 모닝페이지를 쓰고 책을 읽고 필사하며 내 생각을 정리하고 저녁에도 일기를 쓰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어떤 마음과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지 잘 살피며 지내고 있으니 또다시 힘든 순간이 와도 번아웃 비슷한 것이 와도 괜찮을거라 생각했다. 아니 괜찮을 줄 알았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올해 초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이 찾아왔고 무기력은 몸도 지치게 만들었다. 직전 프로젝트였던 전시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부어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줄 알았지만 무기력은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여전했다. 3개월쯔음 되었을 때 조금씩 회복이 되는 느낌을 받고 천천히 다시 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리며 조금씩 움직였다.
살기 위해 운동을 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운동을 시작하려 마음을 먹으면 꼭 생리를 시작하게 되거나 그날부터 감기 증상이 심해지거나 불면이 찾아오거나 이명이 심해졌다. 운동하기 싫은 신체화 증상일 수도 있지만 그랬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한 번 크게 몸이 아팠던 경험이 있으니 조금만 몸이 아파도 몸을 많이 사린다. 약속을 줄이고 바깥 활동을 줄이고 집에서 잠을 많이 자거나 누워있는다. 너무 조용한 것이 싫어 뭐라도 틀어두지만 그걸 열심히 시청하거나 듣지도 않는다. 뭔가 무리하지 않기 위한 시간을 긴장감 없는 상태의 몸을 만들어 쉬게 해준다.
저런 핑계로 제대로 된 운동을 해보지도 못하고 산책과 홈트의 어중간한 활동을 하다말다를 반복하던 어느 날 평소와 다른 찌르는 듯한 편두통이 계속 지속되더니 세수하는 데 얼굴 피부에 통증이 느껴졌다. 몸살이 이렇게 오는건가, 요즘 잠을 잘 못 잤는데 피곤해서 그런가 생각하다 챗GPT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대상포진 초기 증상으로 보인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덜컥였다.
'대상포진은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사람에게 나타나는거 아닌가? 난 요새 많이 무리하지 않고 지냈는데 왜? 나름 산책도 하고 요리도 해먹으면서 지낸 거 같은데 왜? 대상포진이라는 단어가 왜 나에게 나타났지?'
괜히 쪼그라든 마음에 집 근처보다는 후기가 좋은 병원을 검색해 다른 동네 병원을 찾아갔다. 질문을 한참 하던 의사 선생님은 대상포진 초기가 맞고 눈 가에 포진이 올라오면 실명될 위기가 있으니 오늘보다 조금 더 통증이 느껴지거나 수포가 올라오면 바로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한다고 의뢰서를 써주었다.
대상포진보다 실명이라는 단어에 꽂혀 멍하니 병원비를 내고 약국서 약을 받아 집에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눈물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약을 먹는다고 괜찮아질지는 모른다는 말도 무서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누가 볼 새라 모자를 더욱 푹 눌러쓴 채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계속 닦으며 엉엉 울지 않으려 애썼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철푸덕 주저 앉아 엉엉 큰 소리를 내며 한껏 울고난 후에 약을 챙겨먹고 한참을 이것저것 검색을 시작했다.
대상포진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서 자연스레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왜 인스턴트 간편식만 그렇게 챙겨 먹었을까, 운동을 조금 더 애써서 하지 않았을까, 마음만 돌보지 말고 몸도 잘 돌봤어야 했는데 또 오만하게 살았구나 등등 나를 탓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바이러스 약을 꼬박 잘 챙겨먹어야한다는 이야기에 약을 먹기 위해 꾸역꾸역 단백질과 비타민이 많은 끼니를 입에 넣었다. 먹었다는 표현보단 입맛도 없어 정말 꾸역꾸역 체할까 싶어 천천히 오래 씹으며 끼니를 챙겼다.
다행히 일이 빡빡한 일정은 아니었으나 이미 섭외된 인터뷰 일정은 바꿀 수가 없어서 재택근무를 최대한 빠른 시간으로 쳐내고 인터뷰 일정 외에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초반에는 통증이 꽤 있어서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어서 피로함에 낮잠도 계속 자기도 했다. 약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회복이 되나 싶을 때 오히려 긴장이 풀렸었던 것 같다. 아픈데 쉬지 못했던 것도 영향이 있었겠지.
대신 일해줄 사람이 없어서 꾸역꾸역 일을 하다보니 오히려 대상포진 약을 다 먹어갈 때쯤 몸에 기력이 없어지고 피로감이 상당했다. 대상포진 약을 끝까지 다 먹을 때까지 더 심해지지 않으려 신경을 많이 쓰고 노력하다 약이 종료됨과 동시에 안도감이 몰려왔던 것인지 냉방병 증상과 불면의 증상이 더 심해졌다. 컨디션은 약을 먹을 때보다 더 안 좋아지고 미룰 수 없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 챙기며 시간을 보냈다.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프리랜서는 마음데로, 마음 놓고 아플 수 없다. 회사는 병가라도 길게 낼 수 있지만 (물론 그마저도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프리랜서는 내가 아닌 이상 일을 할 사람이 없는 최전선에 서 있기에 대응책이 전혀 없다. 지금도 회복중이지만, 유일한 재산인 내 몸을 더 아껴보고 싶은 다짐으로 글을 쓴다.
마음의 아픔은 몸으로 나타나고 몸이 힘들 땐 마음이 다치기도 하니까. 유일한 재산을 잘 지키고 가꿔야겠다는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회사를 나오고 싶은 직장인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프리랜서로 사는 삶의 불안과 책임을. 시간의 자유로움만큼 일의 무게와 책임은 더해지는 프리랜서의 삶에서 유일하고 가장 소중한 재산은 나의 몸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