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문장, 문장 21. 진심 하 盡心 下. 14. 38
맹자가 말했다.
“요순(堯舜) 임금으로부터 상나라 탕왕(湯王)에 이르기까지가 500여 년 세월이다. 요순 임금의 후임이었던 우임금이나, 순임금 때의 훌륭한 신하였던 고요 같은 이들은 그들의 도를 직접 보아 알았고, 탕왕과 같은 이는 단지 들어서 알게 되었다.
탕왕으로부터 주나라 문왕에 이르기까지가 또 500여 년인데, 이윤과 내주 같은 탕왕의 현신(賢臣)들은 직접 보아서 그 도를 알았고, 문왕과 같은 이는 단지 들어서 알게 되었다.
문왕으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가 또 500여 년인데, 흔히 태공망이라 불리는 강상과 문왕 시절의 현신인 산의생 같은 이들은 직접 보아서 그 도를 알았고, 공자 같은 이는 단지 들어서 알게 되었다.
공자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가 100여 년으로, 공자라는 성인이 살아가던 시대에서 이처럼 멀지 않고, 성인이 거주한 곡부와 거리가 이처럼 아주 가깝다. 시대도 가깝고 거리도 가까운데 유가를 계승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렇다면 결국 계승할 사람이 없겠구나.”
맹자가 말했다. “요순(堯舜) 임금으로부터 탕왕(湯王)에 이르기까지가 500여 년인데, 우임금(요순 임금의 후임 임금)과 고요(순임금 때의 현신(賢臣)) 같은 이들은 그들의 도를 직접 보아 알았고, 탕왕과 같은 이는 단지 들어서 알게 되었다.
孟子曰: “由堯舜至於湯五百有餘歲, 若禹皐陶則見而知之, 若湯則聞而知之. 맹자왈: 유요순지어탕오백유여세, 양우고요즉견이지지, 약탕즉문이지지.
탕왕으로부터 문왕에 이르기까지가 또 500여 년인데, 이윤과 내주 같은 이들(탕왕의 현신들)은 직접 보아서 그 도를 알았고, 문왕과 같은 이는 단지 들어서 알게 되었다.
由湯至於文王五百有餘歲, 若伊尹萊朱則見而知之, 若文王則聞而知之. 유탕지어문왕오백유여세, 약이윤내주즉견이지지, 약문왕즉문이지지.
문왕으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가 또 500여 년인데, 태공망(강상(태공))과 산의생(강태공과 같은 문왕 시절의 현신) 같은 이들은 직접 보아서 그 도를 알았고, 공자 같은 이는 단지 들어서 알게 되었다.
由文王至於孔子五百有餘歲, 若太公望散宜生則見而知之, 若孔子則聞而知之. 유문왕지어공자오백유여세, 약태공망산의생즉견이지지, 약공자즉문이지지.
공자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가 100여 년으로, 성인의 시대에서 이처럼 멀지 않고, 성인이 거주한 곳과의 거리가 이처럼 아주 가까운데, 그러함에도 계승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렇다면 결국 계승할 사람이 없겠구나.”
由孔子而來至於今百有餘歲, 去聖人之世若此其未遠也, 近聖人之居若此其甚也, 然而無有乎爾, 則亦無有乎爾” 유공자이래지어금백유여세, 거성인지세약차기미원야, 근성인지거약차기심야, 연이무유호이, 즉역무유호이.
맹자가 보기에 유가의 도, 인의의 정신은 이렇게 이어진다.
요순(堯舜) - 우탕(禹湯) - 문왕(文王), 공자(孔子)
그 뒤를 누가 이어갈 것인가? 그것이 마땅치 않아 노력했던 것이 맹자이다. 결국 그 계보는 자신에게로 이어지게 된다. 맹자는 아성(亞聖)으로서 공자의 적자가 되고 유가의 흐름을 면면히 후대에 전하게 되었다. 한 나라 때 ≪맹자≫를 정리한 조기(趙岐)가 그를 공자의 핵심을 전한 사람이라고 평하고 아성(亞聖)이라고 높게 평가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문장이 <맹자>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이 애써 이어온 유가의 계보를 누군가 이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지 않을까? 지금 우리는 비록 맹자로부터 2천 년이 넘게 시간이 떨어져 있고, 맹자의 고향인 중국 추현으로부터 천 킬로미터가 넘게 멀리 있지만, 그 정신은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보통 사람의 맹자] 연재를 시작하면서, 왜 이 시대에 맹자를 읽어야 하는지 나름의 관점을 이야기해보았다. 사랑을 나누고 정의를 지키는 나라와 사회를 위해 유가의 장점을 살려가는 시대이길 바란다. 그래서 맹자가 유가의 인의(仁義)를 지켜가는 사람들이 있구나, 무릎을 치게 되기 바란다. 동아시아의 전통이 남긴 장점을 잘 계승해 나가는 우리 사회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맹자> 속 21개의 명문장을 살펴보는 연재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