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와 호랑이, 소나무가 지닌 원래 의미에 대해
케이팜 데몬 헌터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더불어 영화에 나오는 귀여운 캐릭터 더피도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더피가 우리 민화 [작호도 鵲虎圖]를 바탕으로 한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작호도]의 의미는 다소 모호한 듯하다. 대개 호랑이가 양반이고, 까치가 민중이며, 까치가 호랑이를 꾸짖는 그림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보다 본질적인 뜻이 있다. [작호도]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1989년에 미술사학자 조용진 교수가 [동양화 읽는 법]에서 상세히 설명한 바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하려고 한다.
동아시아 전통화의 작법 중 흔한 것이 한자의 동음이의어를 활용하는 것이다. 조선 시대 문양을 보면 박쥐가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여성 노리개의 매듭으로도 쓰이고, 가구 반닫이의 경첩으로도 쓰이고, 어르신 베개의 무늬로도 쓰였다. 지금 관점으로 보면 끔찍해 보이는 박쥐를 왜 문양으로 썼을까? 박쥐를 한자로 쓰면 복(蝠)이고, 그 발음이 복 들어온다고 할 때 그 복(福)과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박쥐를 터부시 한 것은 서양 문화의 영향이라고 봐야 하겠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보자. 어르신들 장수를 비는 잔치에서 쓰인 병풍을 보면 갈대와 기러기가 그려진 노안도(蘆雁圖)가 쓰인다. 갈대 노에 기러기 안을 써서 노안도이다. 그런데 음을 따르자면 이 글자는 노인 노(老)에 편안할 안(安)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니 그 그림은 나이 들어 편안하시라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노인잔치 단골 그림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옛 그림들은 한자의 동음이의를 활용하여, 글자의 의미를 도상으로 바꾸어 놓는 경우가 많았다. 까치 호랑이 그림도 이 경우의 하나였는데, 그 진의가 서서히 바뀌고 잊혀 간 경우다. 조용진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변질된 까치와 호랑이
독화의 원리를 잘 몰라서 우리나라에서 달라진 그림이 요즈음 유명한 소위 "까치와 호랑이 그림(鵲虎圖)"이다.
민화의 주요한 소재인 이 주제가 민간에 유행한 이유는 이것이 특정한 때에 따라 거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새해를 맞아 정월에 붙이는 그림[歲畵]이기 때문에 수명은 한 달밖에 안 되고, 2월에는 다른 그림이 그 자리에 붙게 된다. 이렇게 대중에게 수요도 많고 자주 그려지다 보니 어느덧 일정한 양식으로 정형화되었다. 그래서 무명화가들이 눈썰미로 그린 대중의 그림, 곧 민화가 된 것이다.
그러면 왜 정월에는 이 까치와 호랑이 그림을 그려 붙이게 되었을까?
흔히들 사나운 호랑이를 붙여서 액막이를 하려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납지 않은 까치는 왜 그려 넣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또 까치는 왜 한결같이 한 마리이며,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중국에도 이와 유사한 형식의 그림이 민간에서 역시 세화로서 존재한다. 이 중국 그림이 우리나라의 [작호도]와 다른 점은, 호랑이가 아니고 표범이라는 점이다. 구도도 같고 자세와 표정도 같은데 털의 무늬가 표범의 무늬를 나타내고 있다.
소나무, 까치, 포범이어야 맞는 그림
표범인 경우에 이 그림은 읽을 수 있다. 표범의 표(豹)가 고할 보와 중국에서는 [Pao4]로 발음이 같고, 소나무는 정월, 까치는 기쁨[喜]을 뜻하므로 이것을 한 화면에 그린 그림은 "새해를 맞아 기쁜 소식만 오다"라는 뜻을 갖게 되고, 읽으면 "신년보희(新年報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표범 자리에 호랑이가 들어가면 위와 같이 읽을 수 없게 된다. 음력으로 정월이 호랑이달[寅月]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변질된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나라의 까치와 호랑이 그림들을 자세히 보면 표범 무늬가 섞여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오래된 것일수록 표범 무늬가 많고, 후기로 내려올수록 표범 무늬가 적어져서, 아주 호랑이가 돼버렸다. 또한 호랑이의 얼굴도 고양이를 많이 닮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무명화가들이 실제 표범은 본 적이 없고(우리나라에는 살지 않았으므로) 호랑이 무늬와 비슷한 고양이는 자주 보았기 때문에 부지불식간 눈에 익은 고양이 모습으로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45-47쪽)
그러고 보니 제목에 붙인 작호도나, 위 작호도에서 보면, 범에게 없는 둥근 거죽 무늬, 표범 무늬가 있다. 조용진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라고 본다.
이 그림이 중국에서 들어왔으니 기분 나쁜 일일까? 그렇지 않다. 모든 문화는 서로 영향을 끼치고, 받아들인 후 자기만의 색깔로 변형된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신년보희'의 의미로 쓰이던 그림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랑하는 범 모양으로 바뀌며, 그 뜻도 해학을 담은 것으로 서서히 변해 갔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작호도는 우리만의 작호도가 된 셈이다. 우리 작호도는 우리 작호도대로 이해하되, 원래 그림의 의미는 알자는 뜻으로 이 글을 써보았다.
한자의 동음이의 현상을 활용한 그림으로 전통문화를 바라보면 많은 옛 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조금 공부하고 인사동을 찾는다면, 외국인 친구들과 더 깊고 풍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한다.
참고) 조용진, [동양화 읽은 법], 1999, 집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