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 태도의 변화에 부쳐
얼마 전,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우리나라와 ‘한민족’이라는 개념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해, 통일을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낳았다. 김이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 것이 1991년 이루어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다. 이 사건의 의미에 대해 짚어보아야 지금의 사태가 잘 이해된다.
1991년 9월 17일, 남북한이 제46차 유엔 총회에서 유엔(UN)에 동시 가입한 사건은 한반도 현대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변곡점이었다. 주요한 의미는 무엇일까.
- 국제법적 '주권 국가'로의 공인
그전까지 남북한은 서로를 유일한 합법 정부라 주장하며 상대방의 국가성을 부정해 왔다. 그러나 유엔 동시 가입을 통해 국제사회는 남북한을 각각 독립된 주권 국가로 승인하게 되었다. 이는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Two Koreas)'가 실재함을 국제법적으로 확정한 것이다.
- 냉전 종식과 외교적 지평 확대
당시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 결실 중 하나로, 소련과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어 이뤄진 성과였다. 이를 통해 남북한은 국제기구 내에서 대등한 발언권을 얻게 되었고, 분단 문제를 국제적 틀 안에서 다룰 수 있는 공식적인 채널을 확보하게 되었다.
-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의 발판
유엔 가입 직후인 1991년 12월,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여기서 양측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무력 침략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등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여는 기초를 마련했다.
이 사건이 우리의 전통적 통일 의지와 담론에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 유엔 가입은 통일의 과정에서 좋은 디딤돌이 되기도 했지만 복잡한 과제도 던져주었다.
- 긍정적 영향: '평화 공존'을 통한 단계적 통일
감정적인 호소보다는 국제 규범에 기초한 평화 관리 체제로 접어들었다. "먼저 평화롭게 공존하고, 나중에 통일하자"는 단계적 통일론이 힘을 얻게 되었다.
양측이 유엔 헌장을 준수해야 하는 회원국이 됨으로써, 무력 사용에 대한 국제적 감시와 제동 장치가 강화되었다.
- 부정적 혹은 혼란스러운 영향: '영구 분단'의 우려
우리 헌법 제3조(영토 조항)는 북한을 국가로 보지 않지만, 유엔 가입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이 때문에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 관계라는 독특한 논리가 정립되었다.
- 일부에서는 "각자 번듯한 국가로 유엔에 있는데, 굳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합쳐야 하는가?"라는 '현상 유지'선호 심리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최근 북한이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통일 폐기를 선언한 상황에서, 1991년의 유엔 동시 가입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당시에는 통일을 위한 잠정적 조치였던 동시 가입이, 지금은 '완전한 남남'을 주장하는 근거로 이용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