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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성호 Sep 22. 2016

처음부터 대단한 일은 없다

명화의 탄생은 점을 찍는 것부터 시작한다.

돌아보면 내 인생은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작은 것에서 시작되었거나 이루어졌다.

뒤늦게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일주일에 두 권 정도는 꼬박꼬박 책을 읽을 때였다. 절실함이 있어서였을까? 책을 읽고 나면 그 책을 쓴 저자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저자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막연하게 생각하면 그 대단한 사람들이 나를 만나줄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저자들은 흔쾌히 만남을 허락해 주었다. 



실제는 그렇지도 않은데 나 스스로 지레 벽을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 때부터였다. 하지만 특별한 고정 소득이 없으면서 저자들을 매번 찾아가는 것이 비용적으로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이 때만 해도 강사가 되겠다고, 하던 일들을 다 그만두고 오로지 강사과정과 책 읽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마침 매 주 한 번 저자들을 모시고 하는 무료 북토크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적어도 이 북토크쇼에 오면, 저자들을 따로 보느라 쓰는 찻값이나 밥값은 절약할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매주 이 북토크쇼를 찾기 시작했다. 



매주 참여하다보니 스태프들과도 친분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끔 일찍 도착하는 날에는 스태프들과 함께 의자를 놓고, 방송장비를 셋팅하는 등 준비작업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스태프 아닌 스태프가 되어 있었다.     


“MC 한 번 해보실래요?”   

  

네 명의 MC가 로테이션으로 진행을 하던 북토크쇼였는데, 갑자기 한 명의 MC가 함께 할 수 없게 되면서 다음 주의 진행자가 공백이 생기게 되었다. 이 북토크쇼를 총괄 기획하고 진행하던 대표님이 느닷없이 내게 물어온 것이다.     

“강사 준비하고 있다면서요? MC의 경험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평소의 나였다면 선뜻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믿고 맡겨주는 대표님과 스태프들의 제안이 정말 감사했고 감동이었다. 또 하나, 나는 어느 새 청중이라기보다 스태프에 가까운 입장이어서 당장의 공백을 해결해야겠다는 마음도 MC를 수락하는데 크게 작용했다.



그것이 <손대희의 리얼북톡>의 시작이었다. 방송을 위해 저자들과의 사전 미팅을 하고, 콘셉트를 잡고 진행까지, 1년 가까운 시간동안 MC로서의 경험은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후 강사로서 강의를 하는 데에도 손대희의 리얼북톡 MC경험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북토크쇼 MC라는 타이틀은 동기부여강사인 나에게 스펙 아닌 스펙이 되어 비슷한 경력의 다른 강사들에 비해 강의료를 더 받는 것은 물론, 나중에는 손대희의 리얼북톡 포맷으로 정식 유료 콘서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예측이 가능한 사람이었어요. 손대희 선생님은. 그만큼 신뢰가 갔다는 이야기예요. 의자 하나 놓는 일도 기꺼이 함께 해주는 모습이 언젠가는 같이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했으니까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문득 나에게 온 MC라는 기회가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누군가는 하찮게 여기는 ‘의자를 놓는 일’이었다. 의자나 놓던 청중 중 하나에 불과했던 나는, 북토크쇼의 MC를 한 번 해보고 싶어서 다가왔다가 어느 샌가 사라지는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던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무리 위대한 일과 업적이라도 모두 ‘처음’에서 시작됐다. 완벽하게 시작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직이나 팀 안에서 모두가 같은 비중의 역할을 맡을 수는 없다. 하지만 하찮아 보이는 역할도 분명 필요한 역할이다. 



99℃의 물이라도 마지막 1℃를 올리지 못하면 끓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무시하는 한국민속촌의 거지 알바는 최근 정직원으로 전격 채용되었다. 작은 일을 제대로 못 하는 이에게 큰 일을 맡기는 조직이나 팀은 없다.


커피 한 잔을 제대로 타지 못하는 이에게, 복사도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이에게 더 중요한 일을 맡길 상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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