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타이밍은 분명 중요하다.
몸도 젊을 때부터 관리하면 나이 먹어서도 편해.
운동을 마친 후 샤워하고 거울 앞에 섰을 때만큼 뿌듯한 때가 있던가? 오늘도 뿌듯한 하루를 산 내가 대견스럽다 생각할 때 쯤, 한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일흔은 족히 되어보이는 외모였지만 몸은 말대로 젊을 때부터 꾸준히 관리하신 듯하다.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까, 가장 확실한 투자가 건강이더군.
처음 보는 청년에게 스스럼 없이 말을 거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눈빛은 나이에 맞지 않게 젊고 힘이 있어 보였다. 나이 먹은 사람의 오지랖이나 꼰대질(?)처럼 들리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그 당당하지만 진심이 담긴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자식들이나 마누라 아파서 병원비로만 갖다 바친 게, 수 억은 될 거야.
그럴 것이다. 건강이 중요한지는 모르는 이 없겠지만 한 사람의 생에서 소홀히 한 건강 때문에 치르는 비용이 얼마인지 꼼꼼이 계산해 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르신의 말씀이 갑자기 가슴에 팍 하고 꽂히는 기분이었다. 당장 나만 해도 지금까지 내가 번 돈의 상당 부분을 나 또는 가족의 병원비나 건강 유지를 위해 써왔고 지금도 쓰고 있다. 잘 관리해서 건강하다면 치르지 않아도 될 비용을 차곡차곡 치르고 있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때'를 놓치면 치르지 않아도 될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이른 바 타이밍이 중요한 이유다. 후회의 대부분은 '그 때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것에서 비롯된다. '그 때 했다면' 하지 않을 후회일 텐데 말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축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메시나 호나우두의 이름을 한 두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들의 화려한 드리블 실력과 슛팅 능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두세 명 정도는 거뜬히 제치고 슛을 성공시키는 모습은 짜릿함 그 자체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는, 단순히 메시나 호나우두의 움직임만 보지 않는다. 그들이 드리블로 수비수들을 제치는 동안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을 본다. 누가 봐도 슛팅 타이밍에 한 번을 더 제치면서 그들은 수비수들을 가볍게 지나쳐 간다. 그런데 그 순간 같은 팀의 다른 선수들도 템포가 바뀐다. 슛팅 이후에 리바운드된 공을 잡기 위해 쇄도하던 선수들은 그들이 수비수를 제치는 순간, 다시 패스를 받기 위한 자세와 포지션으로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 만약, 메시나 호나우두가 슛을 성공시키지 못하거나 볼을 빼앗기는 순간 상대팀의 역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메시나 호나우두가 대단한 것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공격을 성공하는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축구를 할 때, 주로 오른쪽 윙을 맡는다. 오른쪽 윙에 소질이 있다기보다는 체력이 좋다는 이유로 말이다. 오른쪽 윙은 상대의 골라인 끝까지 전력질주할 줄 알아야 하며 최종적으로는 공격수에게 정확한 센터링을 해야 한다. 한창 개인기에 심취해 있을 때, 나는 센터링 타이밍에 수비수를 한 번씩 더 제쳤다. 내 페이크 동작 한 번에 허무하게 빈 공간으로 달려가는 수비수를 보는 것은 뿌듯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내 센터링을 받을 우리 팀 선수들 조차도 역동작에 걸려 공격은 커녕 다시 후방으로 내려가기 바빠졌다. 나의 페이크 한 번에 나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타이밍을 뺏기는 것이었다.
뻔한 타이밍에 센터링을 올렸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함께 쇄도하던 우리팀 선수 두세 명에게 그 공이 갈 확률이 생긴다. 하지만 내가 그 타이밍을 지나치는 순간, 거의 모든 것은 나 혼자 마무리해야 한다. 메시나 호나우두처럼 수비수 두세 명을 제치지 못한다면 괜한 체력과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 된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단순한 패턴으로 센터링을 올리던 설기현 선수를 욕하는 팬들이 많았다. 너무 뻔한 타이밍에 센터링을 하는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단조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 뻔한 타이밍 덕분에 쇄도하는 한국 선수들은 보다 편하게 공격을 할 수 있었다. 오랜 동안 팀워크를 맞춰 왔기 때문에 똑같은 타이밍이더라도 상대팀 선수들보다 정확한 위치에서 우리 선수들이 슛팅을 준비할 수 있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때'를 놓치면 치르지 않아도 될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