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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성호 Jul 29. 2019

내가 시크릿(seacret)을 선택한 이유

seacret why

                                

형, 형은 하숙집을 해야겠네요.

                              

나의 대학시절을 온전히 함께 겪은 후배와, 최근의 나를 가장 많이 아는 아내와의 대화의 끝에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다짜고짜 하숙집이라니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무슨 하숙집이야? 임대업 관심도 없어.
그리고 임대업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


아니, 형! 임대업을 하라는 게 아니라 왠지 형하고 하숙집은 잘 어울려요.



그제서야 후배의 얘기가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대학시절 나는 4년 내내 하숙과 자취를 했다. 혼자 사는 집이지만 나는 자취방을 구할 때 선택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주방과 방이 나뉘어 있지 않아야 선택했다. 이유는 내가 사는 자취방에는 나 혼자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소 3명에서 많게는 6명까지 함께 살았다. 물론 월세며 생활비는 모두 내가 부담했다. 그냥 좋았다. 후배와 친구들끼리 함께 살며 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그 시간과 공간이 좋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한 후에도, 내가 그 지역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항상 친구, 후배들과 함께 살았다.

                            


                                      

강사가 된 후에도 대학생, 취준생 정도의 청춘에 나의 모든 관심이 쏟아졌다. 강사로서 비교적 돈이 되지 않는 대학 강의도 그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강의료가 얼마든 기꺼이 수락했다. 청춘들과 함께 하는 여러 모임들도 꾸준히 참여했고 한 모임에서는 부소장으로서 그들과 꾸준히 만나기 위한 노력들을 해왔다.


그랬다. 난 참 청년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후배와 아내가 정확히 나를 바라봐 준 것이다.


하숙집!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형 같은 느낌의 하숙집 주인. 가끔 술도 한 잔 사주고, 가끔 쓴 소리도 해주고, 필요할 땐 강의도 하고, 많은 멘토들과 연결해주는 그런 장이 될 수 있는 하숙집. 가슴 벅차는 꿈이 생겼다.


그러나, 그도 잠시. 냉철히 생각해 보았다.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하숙집을 차리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내가 바라는 모습의 하숙집을 차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50대 중반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았다. 현실적인 문제였다. 50대 중반이면 아무리 내가 젊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냥 아저씨였다. 형 같은 느낌의 하숙집 주인은 불가능했다.

                                    



손대희 대표는 왜 시크릿 사업을 하시나요?

                              

한 청년모임에서 만난 대표님이 물었다. 강사로서 자리잡고 나름 가치있게 멋있게 성장하는 나를 좋게 봐주던 대표님이라 네트워크마케팅이라는 편견있는 일을 선택한 내가 걱정스러웠었나보다. 


시크릿 사업을 하는 온전한 이유는 아니지만, 정말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바로 청년에 대한 나의 관심때문이었다.

                             

대학시절부터 경험해왔던 수많은 청년 모임에는 공통적인 한계가 있었다. 바로 모임 운영을 위한 경비였다. 순수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은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그 경비때문에 공통의 벽에 맞닥뜨렸다. 개인의 주도에 의해 운영되는 청년 모임은 그 개인의 경제 사정에 따라 모임이 진행되었다 중지되었다를 반복했다. 그래서 선택하는 것이 그 안에서 수익적인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수익 활동'이 추가되면 여지없이 시작할 때의 순수성과 컬러를 잃어가기 일쑤였다. 심지어 멤버들도 바뀌기 시작한다. 수익 활동이라는 것은 시장에서 인정하는 가치를 제공했을 때에 가능한 것인데, 그런 활동이 가능한 멤버는 아무래도 제한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 모임이 선택하는 또 하나의 옵션은 정부지원 사업비용을 유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금액을 유치하는 순간, 모임의 가치와는 다르게 써야 할 항목들이 생긴다. 온전한 모임의 가치를 이어나가기는 역시 힘들었다.


모임의 성격 그대로를 담을 온전한 그릇이 필요했다. 조건없는 돈이 필요했다. 그것만이 20여년 간 내가 경험해 온 청년 모임을 그대로 담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은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보다 무모한 것이었다.

          

          

이 모임을 담을 그릇을 제가 만들겠습니다.
당분간 모임에 못 나와도 이해해 주십시오.


함께 모임을 운영하던 소장님에게 시크릿 사업을 선택한 이유와 포부를 이야기했다. 강의로 돈을 많이 벌어서도 가능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꾸준하기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강의도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았고 기복도 있을 것을 알았다. 강사지망생부터 강사로 성장하는 시간동안 국내 탑강사들의 곁에서 본 강사시장은 내게 그랬다.


흔들리지 않을 수익 구조가 있어야 내 삶도, 청년들의 모임을 그대로 담을 그릇도 가능했다. 그래서 네트워크마케팅이어야 했고, 그래서 시크릿이어야 했다.

                                 


누군가에게 피해가 없고, 나에게도 리스크가 적으며, 기왕이면 짧은 시간 가능해야 나의 이 초심이 변하기 전에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반 년, 처음의 내 계획대로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다. 누군가는 아직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일로, 누구보다 가치있는 삶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줄 날이 머지않았다.


칼을 위험하게 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그 칼로 사람을 살리고, 맛있는 요리를 한다.


교통사고 사망률 세계 1위라고 자동차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과와 오는 사람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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