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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는 벚꽃잎 속에서 사랑의 의미를 깨달은 거야

결혼 이후의 사랑에 대해

by 파란선인장


언제 그랬냐는 듯 벚꽃잎은 다 졌고, 연한 녹색의 이파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올해는 기후 온난화로 예년에 비해 일찍 개화할 거라 했지만, 봄에 어울리지 않는 날씨 덕에 벚꽃은 원래 펴야 할 시기에 피어났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벚꽃이 필 때는 여전히 쌀쌀했고, 비도 자주 왔고, 아내와 내가 서로 바빠서 본격적으로 벚꽃을 구경할 수 있었을 때는 이미 꽃잎들이 흩날리고 있는 시기였다.


벚꽃이 흩날리는 풍경 속을 걸을 때 나는 종종 날려오는 꽃잎을 잡곤 한다. 대학교 때 생긴 습관 같은 건데,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을 알고부터 시작된 것 같다.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 어쩌면 생각지도 못한 어떤 사랑이 찾아올까 싶어 꽃잎이 흩날리는 봄날이면 눈 오는 날 강아지처럼 꽃잎을 쫓곤 했다.


올해도 직장 근처의 공원에서 잠시 산책할 때마다 흩날리는 벚꽃잎을 여러 차례 잡았다. 이제는 새로운 사랑이 이루어지면 안 되는 몸이지만, 조건 반사 마냥 꽃잎들에 손을 뻗었고, 이루어질 수 없는,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들을 대여섯 번 정도 잡았다가 보내주었다. 같이 산책하는 동료들이 잡는 비결을 물어오면 ‘동체시력과 순발력’이라고 대답했는데, 반복해서 잡다 보니 진짜 요령을 깨닫게 되었다.


나풀거리는 꽃잎을 억지로 잡으려 하면 잡기가 힘들지만 날려오는 모습을 유심히 살피면서 ‘바람길’이라고 해야 하나, 그 꽃잎이 날려오는 경로를 바탕으로 날려올 경로를 예측해서 그곳에 손을 갖다 대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받아낸다는 느낌으로 꽃잎을 손에다 오므려 담으면 잘 잡을 수 있었다. 즉, 억지로 잡으려 하지 않고, 꽃잎이 날아오는 결을 고려해 받아들인다는 느낌으로 잡았다.


문득, 벚꽃잎을 잡는 것과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냥 이야기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봄날 감성에 지어낸 로맨스의 파편일까. 아내 곁을 걸으면서 흩날리는 꽃잎을 잡다가 문득 아내를 보고 손바닥 위의 꽃잎을 봤다. 억지로 잡으려 하면 잡기 힘들지만 날아오는 모양 그대로, 본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면 손에 잡히는 것이 벚꽃잎에만 해당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벚꽃잎을 잡으면 왜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벚꽃잎을 잡으며 깨달은 사랑의 의미라고 해야 하나. 사랑이란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다. 있는 그대로의 아내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었는지에 대한 자기반성이자 다짐이자,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사랑해 달라는 청원이었던 것도 같다. 아내는 내 말에 그냥, “그래~.”하고 말았다.


그래, 원래 내 아내는 이런 담담함, 담백함, 털털함, 어떤 쿨함이 있어 멋있는 사람이었다. 한철 흩날리는 벚꽃잎 대신에 늘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이 나부끼지 않도록 포근히 담아 주자고, 유유히 유모차를 밀며 걸어가는 아내를 보며 마음에 새기는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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