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타누키 차차 Nov 15. 2018

18. 퇴사용 인간

나를 발견하는 일은 더럽게 힘들지만 설렘이 된다.

 정기적으로 우울감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에 내가 속한다. 이 시기에는 끊임없이 일어나지도 않을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불안해한다. 작은 일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일부를 보고서 그것이 전부라고 여기다 보니 이 세상에서 나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 살아서 뭐 할까. 고작 나 같은 것이.

 

 내가 처음으로 죽어버리고 싶다는 마음을 작은, 아주 작은 실천으로 옮겼던 때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 시절에 죽고 싶어 하던 사람이 나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학에 목을 맨 누구든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때의 우리는 사소하게 웃거나 울거나. 점심시간 식판에 둘러앉아 웃었고 모의고사를 채점하다가는 울었다. 수능이 다가올수록 웃는 날은 줄어들었고 대부분의 날들은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수능은 정말이지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빨리 문제를 풀려고 해도 문제지가 심할 때는 두세 장씩 남았다. 책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도 속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슬램덩크 한 권을 읽는데도 한 시간이 걸리는 나를 보며 이 정도면 글에 대한 이해력과 문맥을 파악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데도 정신력 하나로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것을 대단하다 여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들 정도였다.


 수시용 인간. 아무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나를 포함한 모두가 나를 그렇게 정의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 가면 담임선생님이 학원으로 가면 전담 선생님이 한마음 한뜻으로 말했다.

  

“무조건 수시로 가야 해. 수능이면 넌 답이 없어. 인서울은 불가능이야.”


 언어 영역을 풀어가던 새벽, 틀린 문제에 대해 오답풀이를 하던 중에 나는 이성을 잃었다. 내가 고른 답은 3번인데 정답지는 4번이라 적혀 있었다. 뒷장의 문제 해설을 꼼꼼히 읽어 보아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은 변함없이 3번이었다. 그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남겨두고 다음 문제로 넘어갈 수 없었다. 그런 강인함이 그 무렵 나에겐 없었다.   


 내가 아무리 3번이라 외쳐도 세상엔 이미 4번의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만 같았다. 이게 앞으로 내가 살아갈 세상이고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세상은 아닐까. 정답과 오답, 명백하고도 극명하게 나눠진 두 가지 세계에서 나는 평생 정답을 쫓는 오답의 신세로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을 확신해버렸다.


 죽어버리자. 어서 빨리 죽어버리자.


 그 순간에는 이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작은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일부를 보고 그것이 전부라 생각해버리고.


 필통을 열어 뾰족하게 깎인 연필들을 한 자루 한 자루 손에 쥐고 모의고사 문제지를 한 장 한 장 북북 그어대며 난도질했다. 정갈하게 인쇄된 글자들이 힘없이 찢어지고 시커멓게 흐트러졌다. 정답의 세계의 균열을 내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오른손은 그다음 타깃인 왼쪽 손목의 동맥으로 추측되는 어느 지점으로 향했다. 사정없이 왼쪽 손목을 찌르고 휘갈겼지만 인체는 신비하기에 종이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팠다. 정말 많이 아팠다. '에게 고작 연필 정도에'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죽고 싶었는데 너무 아파서 못 죽겠구나를 바로 깨달아 버릴 만큼 아팠다. 그래서 분했다. 사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는데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는구나. 꼭지가 돌았다.  


 울고 또 울다가 괴성에 가까운 울부짖음이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다. 엄마는 놀라서 방으로 뛰어왔고 상황을 파악하고 나를 냅다 끌어안았다. 엄마도 같이 울었다. 힘들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공부 같은 거 그만두어도 된다고. 나는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한참을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지각할까 부지런히 교복을 챙겨 입고 지저분한 흔적이 남은 손모가지를 손수건으로 둘둘 감싸는데 몇 가지를 생각들이 떠올랐다. 자살에도 용기가 필요하고 나는 절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은 못 된다는 것.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효도가 될 수도 있겠다는 것. 죽는 것은 무섭지 않지만 아픈 것은 무섭다는 것. 아프지 않고 죽을 수 있는 것은 탄생에 맞먹는 축복이라는 것.





 직장생활은 불안하지 않았다. 불만으로 가득해 불안할 여유도 별로 없었다. 내키지는 않아도 내 삶이 4번 같은 정답란에 체크되어 있는 듯한 기분이었고 퇴사는 마치 3번을 선택하는 일과도 같아서 후련함과 동시에 불안함을 일으켰다. 대기업에서 꿋꿋이 버티는 친구들은 4번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그날 밤 언어영역을 풀던 새벽처럼 오답풀이를 하는 심정이 되어버려 마음이 복잡해지곤 했다.


 월급용 인간. 아무도 나를 그리 정의한 적은 없지만 실은 내가 누구보다도 직장생활에 최적화된 인간이면 어쩌나 싶은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래서 자주 불안해졌다.


'직장인 아니면 답이 없어. 너의 의지만으로 무언가를 해나가는 건 불가능이야'


 그런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밤이면 나는 스스로가 오답이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해 잠을 설쳤다. 불안한 밤이 무기력한 낮을 만들고 버려지는 하루들을 쌓아갔다. 내가 나를 너무도 분주히 못살게 굴어서 내가 나인 게 괴로운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스타워즈와 그의 개그맨 지망생 친구를 만난 건 그 맘 때쯤이었다. 개그를 하는 사람이라곤 하기엔 어딘가 수줍고 꽤나 번듯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하얀 피부에 밝은 웃음이 어우러지는 게 스타워즈와 꼭 닮아 있었다. 친구이기 때문인 걸까. 이마트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람들이 볼지 안 볼지도 모르는 개그를 짜면서도 그의 얼굴엔 불안의 그림자가 없었다.

 

 “불안하지 않아요? 이렇게 사는 거?”

내 멋대로 그의 생활을 불안해야 하는 삶으로 정의 내리는 거 같아 고민을 하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헤어질 때쯤 넌지시 물어보았다.


 “잘 될 건데 왜 불안해해요.”

그의 목소리엔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나를 더욱 의아하게 만든 의외의 대답.  

 

 “전 잘 될 거예요. 만약에 그렇지 않다고 해도 평생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았으니까 죽을 때 후회하지는 않을 거 같아요.”


 맞는 말이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퇴사를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생활이 되게 하는 건, 불안이 아니라 오늘이 되게 하는 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몸소 깨닫고 있는 터였다. 멍하니 듣고 있다가 스타워즈에게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아니 그래도 뭐 결혼이라든지 내 집 마련이라든지... 나도 그런 걸 목적으로 살진 않지만 가끔씩 툭 하고 튀어나오잖아요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우리 요즘 일도 끊겨서 안 들어오고... 불안하지 않아요?”


“집 하나 사려면 내 시간을 전부 써야 하는 데. 솔직히 몇십 년을 일만 해도 요즘 같은 시대는 될까 말까 한 일인데 그걸 위해서 쏟는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졌어요. 그리고 애초에 우리가 그게 가능한 사람들이면 회사를 나와서 이러고 있진 않겠죠. 난 오히려 다른 게 걱정인데. 우리한테 일이 몰려서 다시 일에 잠식될 까 봐. 그땐 어떤 식으로 결정을 내려야 할까 그런 게 더 고민이에요."


 분명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인데 대처하는 자세는 전혀 달랐다. 내가 전전긍긍이면 스타워즈는 천하태평. 아니 무슨 저런 말도 안 되는 고민을 고민이라고 하고 있나 콧방귀가 나왔지만 내 관점을 달리하는 데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지금 내가 무지막지하게 부자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듯이 무지막지한 거지가 될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아주 조금 더 가지지 못해서, 아주 조금 더 잃는 게 두려워서 전전긍긍하는 건 인생에 하등의 도움이 안 되는 것이리라.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들은 어쩌면 1번과 2번일지도 모른다. 나는 겨우 4번에 가까운 3번을 선택해 놓고서도 이렇게 불안해하는데 저들은 저만치 떨어져서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나도 될 수 있을까. 어떤 길에 서 있건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이, 내가 나를 믿고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 그리고 우리 일은 다음 달부터 아마 좀 들어올 거예요. 추석이었잖아요. 광고주들이 그전에 진행하던 것들 다 처리하고 쉬려고 하지 새로 시작하려고 하겠어요? 10월 초에 휴일도 많은데. 다들 좀 쉬어가는 기간일 테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요. 멀리 봐요 멀리. 큰 흐름을.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코앞의 문제들만 보려고 하지 말고.


 스타워즈는 나보다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있었고 그의 말은 내 걸음보다 조금 더 앞서 걷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며 다리를 움직였던 적이. 


 10월이 저물어가는 무렵, 일출처럼 일들이 몰려와 갑작스레 11월이 열렸다. 우리는 다시금 바빠졌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른 채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창업을 한 이래 가장 바쁜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아, 쉴 수 있을 때 좀 편하게 쉴 걸 뭐 하러 불안에 떨고 있었을까. 나는 또 후회를 해버렸다. 어리석은 인간은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다 써버린다는 데 내가 과연 그 짝이었다.   


 도대체 다 찢어버린 모의고사지를 왜 또 손에 쥐고 있었던 걸까? 인생은 모의고사 따위가 아닌데.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3번 길을 가다 1번 길로 우회하고 다시 4번 길로 돌아가도 아무도 채점 따윈 하지 않는데. 사실 다들 그러고 살아갈 텐데...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를 좀 더 믿어주지 못하고 요란을 떤 것에 대하여.

동시에 어쩌면 나는 이런 과정을 거쳐 점점 퇴사용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은 설레어 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17. 을에게도 품격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