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는 싸우지 않는다
어렸을 적 기억으론 나는 분명 싸움닭이었다. 싸우는 걸 두려워하지도 지는 걸 슬퍼하지도 않았다. 사실 누군가에게 져본 기억이 딱히 없는데 이유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운다기보다 문제를 끝내버리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싸움에 임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러면 앞으로는 만나지 말자.
너랑 나랑은 잘 안 맞는 거 같으니 이쯤에서 그만두자.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나와 너, 우리 둘. 이 둘 사이 어딘가 엉켜있는 한 뭉텅이의 실타래를 풀어나가다 지쳐버리면 싹둑. 가위를 들고 나타나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문제는 너와 그리고 또 너. 나는 그곳에 없었다. 단호하게 상대방을 제거함으로써 철저하게 피해자 위치를 선점하려는 조금은 치사한 작전이었다. 나의 상처는 너를 버리고 싶을 만큼이란다. 너는 어느 정도니?
친구라 불리던 이들은 종종 울었다. 세상에 태어난 이래 이런 일을 처음 겪는다며, 이런 일을 또 겪게 되다니 정말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거부를 당하는 일은 경험의 유무와 상관이 없이 힘겨운 일임이 분명했다.
거침없이 싸우고 난 자들은 적 아니면 동지가 된다. 한바탕 싸움을 벌인 우리는 서로가 숨겨둔 우물로 들어가 헤엄을 치며 놀거나 아예 퉤퉤 침을 뱉고 등을 돌려 버리는 사이가 되곤 했다.
생각해보면 유년시절 친구와 관련된 강렬한 기억들 대부분들이 이 범주 안에 들어있다. 왕따를 당해서 여자애들 모두가 나를 두고 운동장 정글짐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교실 안에 혼자 남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장면. 다음 학기엔 반장이 되어 나를 왕따시킨 주요 인물들을 자습시간마다 데스노트를 작성하듯 [떠드는 아이]로 칠판에 적어대던 장면. 적 아니면 동지. 끝과 끝을 질주해야만 하는 직성이 풀리던 나란 아이에게 중간에 서 있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자 무리의 결속력은 대단했다. 내가 싸운 건 분명 한 사람이었는데 콩알만한 고것이 조동아리를 어떻게 놀려댔는지 어제까지만 해도 잘만 웃고 떠들던 대부분의 여학우들이 삽시간에 결속해 나를 배제해갔다. 머리 숙이고 그 틈에 끼는 게 몹시나 자존심이 상해 시작한 게 축구다.
남자 무리는 단순해서 내가 왜 여자 무리에서 떨어져 자신들과 공을 차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게 나에겐 어떠한 위로와 같아서 나는 위로를 받고 싶을 때마다 운동장으로 달려가 공을 찼다.
소싯적 보디빌더였던 자를 아버지로 둔 나의 발재간은 생각보다 출중했고 공을 차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남자아이들 몇몇이 같이 축구를 하자며 우리 집을 찾아올 정도가 되었다. 어렸을 땐 포지션이랄 것도 없어 김병지만 뽑으면 너도 홍명보요 나도 최용수가 될 수 있었다. 공이 있는 곳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우르르 몰려오는 막무가내의 공놀이. 운동장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마음껏 질주하는 것이 가능했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체육시간 구기종목이 선택되면 남자 무리들은 나를 뽑아가기 바빴고 여자 무리들은 눈을 흘기기 바빴다. 든든한 축구인들의 세력을 등에 업고 나는 3년 연속 반장 또는 부반장이 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무리에서는 꾸준히 소소한 왕따를 당하는 과반수의 적을 둔 학급 임원으로 자라났다.
중학교에 올라와 처음 입어본 교복 밑에 아삭아삭 걸어 다니는 두 개의 알타리무에 충격을 받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지금도 축구를 계속하고 있었겠지 싶다.
참 건강한 왕따였구나 그때의 나는. 이제 와서야 내가 좀 대견스럽다. 요즘은 왕따가 되기 싫어서 요리조리 상황을 모면하고 회피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화라는 명목으로 이러한 자세를 유지하려 애쓰다 보니 왕따가 되는 일은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지만 어쩐지 건강하지도 않은 기분이다.
주변의 껄끄러운 말이나 행동이 내 마음속 어느 지점을 정확히 건드렸는데도 나는 나까지 속여가며 모르는 척 아닌 척 넘겨버리기 위해 용을 쓴다. 그런 시답잖은 일들로 싸우려 들면 어른이 아닌 거 같아서. 성숙하지 못하다고 할 거 같아서. 내가 없는 곳에서 나에 대한 안 좋은 말들이 내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게 될 까봐서.
서른이 넘어서자 가족 이외의 관계는 내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관계라 생각해 어떻게든 좋게 좋게 이어가고자 노력해야 마음이 놓이는 편이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얘랑 친구해야겠다 해서 친구가 되는 경우는 남자친구 말고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어쩌다 강강술래를 하게 되어 옆에 있길래 손잡고 빙빙 돌고 돌아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함께 보름달을 올려다보게 된 사이를 친구라 부르고 있는 것도 같은데 말이다.
친구가 되어 친구로 남는 일은 시간의 흐름에, 장소의 변화에, 삶의 방향성에, 따라 가차 없이 흔들리고 옅어지는 일이었기에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일수록,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 친구일수록, 삶의 방향성이 달라진 친구일수록 싸움을 피하기 위해 그들 앞에선 하나하나 단어를 골라 담아야 했고 집에 와서는 잘못된 조합으로 내뱉은 아까의 단어들을 떠올리며 섬세하지 못했던 내 조동아리를 꾸짖는 일이 많아졌다.
끝에서 끝으로 질주해도 되는 운동장은 끝을 모르고 펼쳐진 좁고 기다란 평균대가 되어 있었고 나는 그 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매일매일의 위태로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축구보다는 체조에 가까운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 어른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자 우리네 아버지들이 왜들 그렇게 나이가 들면 조기축구회에 목숨을 거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커져서 나를 배려하는 마음이 작아졌다면 그것이 정말 배려라 할 수 있을까. 그런 어줍지 않은 배려로 남도 나도, 누구 하나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다 보면 반가운 만남도 불편한 자리가 될 수밖에 없다.
사실은 싸우고 싶은데
누구와도 싸우질 못해서.
얼마간 쌓였던 껄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외면하고 있던 친구가 있었다. 최대한 티를 안 내고 있다 확신했지만 그녀는 자신을 대하는 나의 태도의 달라진 윤곽을 수월하게 알아차렸다.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안부고 뭐고 없이 다짜고짜 따져 묻는 그녀였다.
내가 너에게 무슨 잘못을 했냐고
아니라고 너의 잘못이 아니고 그냥 내 문제라고
그게 무슨 문제길래 자신을 피해야만 하는 거냐고
너뿐만이 아니라 그냥 요즘 모든 인간관계에서 회의가 느껴져서 그런다고
그렇다고 치더라고 내가 너에게 모두 부정당하고 있는 이 기분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어서 빨리 대충 뭉뚱그려 둘러대고 전화를 끊을 작정이었지만 철저하게 실패. 침착하게 말을 이어가던 친구가 끝내 언성을 높이더니 화를 내며 울음을 터트렸다. 불시의 습격에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그녀의 단어들이 봉인 해제되었고 나도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다 울어버리고 말았다.
휴대전화로 비친 1시간 29분. 서로의 눈물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 사이에 놓인 수년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온 정성을 다해 싸웠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팔다리가 축 처져 시체처럼 누워있던 나는 통화를 이어가다 픽 웃음이 났다.
"근데 말이야 나 기분이 좀 좋은 거 같아. 누구랑 이렇게 울면서 싸운 게 정말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여기서 남자친구는 제외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이 대목에서 친구도 자신도 마찬가지라며 굉장히 어이없어하다 웃었다.
오랜만에 골대가 출렁이는 것을 본 것 마냥 어떠한 일렁임이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실은 친구가 화를 낼 때부터 느낄 수 있었다. 이 친구가 이 관계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그녀도 우리가 깨어질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내가 이 사람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걸. 그녀가 싸움을 걸어옴으로써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끝이 아니란 걸 알고서 거는 싸움은 다정하다. 어쩌면 어린 날의 건강한 왕따는 그저 좀 어리석고 외로운 아이였던 거 같다. 내가 너를 이만큼 증오한다고 내가 너를 이만큼 애정 한다고. 친구라 불리는 이들에게 나를 알아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끝이라고 말해도 아니라고 화를 내줄 친구를 간절히 바라면서.
언젠가 내 뱃속에서 알타리 무와 같은 아이가 태어난다면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는 엄마는 되지 말아야겠다. 마음껏 싸울 수 있는 시간이 짧게나마 주어져 있는 아이에게서 어서 빨리 어른이 되라고 넘어지지 말고 중심을 잡으라고 어른의 시선에서 강요하는 말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싸우고 싶으면 싸워.
대신 사이좋게.
싸우지 않는 방법보다 사이좋게 싸우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