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타누키 차차 Aug 28. 2019

22. 나의 밤

프리랜서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낮보다 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낮보다 밤에 나약한 사람들이다. 어제 하지 않은 일들을 후회하느라. 오늘 내뱉은 무신경들을 창피함과 미안함으로 복기하느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미래를 굳이 그들의 것과 비교해가며 불안해하느라. 함께 풀어갈 고민을 혼자 앓느라. 혼자 풀어갈 고민은 인생은 정말 철저히 나 혼자구나 깨달아가느라. 밤에 괴롭고 밤을 괴롭히는 사람들.


 회사를 차렸지만 사무실을 따로 두지 않아 프리랜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침은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는 프리한 밤들이 이어지고 굳건해지고 생활이 되었다. 매일 아침,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매일 오전 열한 시에서 열두 시 사이 일어난 나는 암막 커튼을 걷으며 찬란하게 내리쬐는 정오의 태양을 바라보며 어제의 나를 후회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조금 더 부지런할걸. 조금 더 일찍 잠들걸. 조금 더 일찍 일어날걸. 오늘부터는 아침형 인간이 되어보자 잠이 덜 깬 나에게서 되지도 않는 다짐을 받아냈다.


 물론,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지켜지지도 않을 약속을 하는 것만큼 무식하고 무기력한 것도 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는 삶이지 않은가. 필요가 없으면 하지 않는 게 인간이고. 나는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

 

 낮에는 주로 벌어지는 일들을 처리한다. 은행에 간다거나 시장에서 장을 봐온다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한다거나 미용실에서 머리를 만다거나 목욕탕에서 몸을 불린다거나 배가 고파 두 끼 분의 축척된 굶주림을 한 끼에 몰아서 해결한다거나. 그래서 다시 그 밤이 오고야 만다. 오늘만은 만나지 않겠다 다짐했던 새벽녘 늦밤이.


 밤에는 주로 내가 일을 벌인다. 회의 때 보내야 할 파일의 레퍼런스를 찾고 카피를 쓰고 컷을 붙이고 아이디어를 만들고 그 과정을 여섯 번쯤 반복해 시안을 에프(f) 안 까지 만든다. 뭐가 될지도 모르는 글들을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이미 뭐가 되어버린 글들을 찾아 읽으며 정말 나는 글을 못쓰는구나. 나는 좋은 글들을 많이 먹고 자랐는데 왜 이런 글들을 싸고 있는 것일까 자책하다 보면 시계는 어느새 새벽 네시와 다섯 시 사이 어딘가쯤. 간장을 뿌려 놓은 듯 캄캄했던 하늘에 푸른 끼가 감돈다. 일찍 일어난 새는 목청껏 자신의 기상을 알리고 일찍 일어난 어떤 이는 정신없이 밥벌이로 걸음을 재촉하고, 늦게 돌아오는 어떤 이는 힘없이 밥벌이로부터 복귀한다. 그 모습들을 마침표처럼 눈으로 찍어야 잠이 들었다. 물론 일어나면 다시 후회했다. 일찍 잠들걸. 직장생활만큼이나 규칙적인 일과였다.


 처음 직장인의 꼬리표를 떼고 나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 새벽 다섯 시 사이의 나와 낮 열두 시 사이 나의 간극이었다. 그 사이의 틈을 나머지 시간의 내가 부지런히 메꾸어 보아도 어째서인지 한 번 벌어진 틈은 좀처럼 달라붙지 않았다. 남들이 점심을 즐길 시간에 겨우 눈을 뜬다는 것. 남들이 퇴근을 할 시간에 참던 허기를 달래고 남들이 가장 지쳐있을 시간에 에너지가 넘치고 남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일을 한다는 건 스스로 선택한 일임에도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는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밤은 낮에는 풀리지 않던 아이디어들을 물어다 주었고 키보드에서 굿판을 벌이듯 신명 나게 카피를 쓰게 해 주었다. 좋은 책의 숨은 단어들을 마음껏 수집할 수 있는 고요와 잘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잘할 수 있는 집중을 선물해주었다. 문제는 그 고요와 집중의 에너지가 일이 아닌 '나'에게로 모아질 때. 밤은 소리 없이 난폭하게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나는 그 기세에 속절없이 당하고야 말았다. 어제를 후회하고 오늘을 창피해하고 내일을 불안해하고 그 시제들을 이어 붙임으로써 결국 나를 부정하고. 울고불고.


 낮 12시 나의 기상은 밤의 영양분을 빨아먹은 대가로 치러지는 정오의 장례식 같은 것이었다.  


 회사를 차리고 나서 회사적인 차원이 아닌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보자면, 내 시간을 내가 관리하고 그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벌어진 감정 기복을 다스리는 일이 무엇보다 힘들었다. 매일 매번 내가 나를 다독여야 했다.


 좋아하는 것 앞에선 나약해지는 거라고. 내가 밤을 좋아해서 밤에 일이 되고 밤에 내가 되는 거라고. 그렇기에 밤이 괴로울 때에도 밤을 미워하지는 말자고. 자연스럽게 돌아가고 있는 내 시계를 구태여 다시 직장인의 시간으로 맞추려 애쓰지 말자고. 나를 설득하기를 일 년. 나의 밤은 정말로 프리해져있었다. 일 년 만에 처음으로 나의 시계는 안정권이었다.   


 그래서 허무했고 그래서 짐작해볼 수 있었다. 내가 겪어온 밤하늘의 거리를 그녀도 수없이 헤매고 있었을 거라고. 나보다 많은 나이만큼이나 나보다 많은 경력만큼이나 나보다 많은 내려놓음 만큼이나 그녀의 밤은 나의 것보다 더 크고 무거웠을 거라고. 나의 것보다 더 난폭하고 자비 없는 까마득함을 버텨내고 있었을 거라고.


 2019년 5월 3일.

회사를 차리고 1년 하고 2개월.


 박조이가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직장인이 되고 싶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21. 감정 노동. 감정 경영. 감정 실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