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raveler’s needs, 2024
각자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배경지식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다.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모두는 각자 다르게 받아들인다. <여행자의 필요>란 제목은 언뜻 말 그대로 여행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여행자를 필요로 함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여행을 온 이리스(이자벨 위뻬르)는 이름부터 저마다 차이를 보인다. 누구는 아이리스라 부르고, 이리스 본인은 많이들 헷갈린다며 그것을 이리스라 정정한다.
프랑스 출신의 이리스는 한국인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친다. 흔히 생각하는 언어의 시작인 자음, 모음부터 익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감정을 묻고 그 감정에 대한 표현을 번역해 준다. 외국어로 자신의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새로운 언어 교육법을 만들어냈다고까지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정작 한국인이 그 감정을 표현할 때, 이리스는 그것이 자신에게 전해지는 것을 차단한다. 이송(김승윤)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회상하며 눈물을 보일 때, 면전에 대고 그 순간에 대해 메모를 하기에 이른다. 이송이 피아노로 Liebestraum No. 3 in A-Flat Major, S. 541을 연주할 때, 원주(이혜영)가 기타를 연주할 때 이리스는 담배를 피우겠다며 자리를 뜬다. 인국(하성국)이 키보드를 연주할 땐 그의 엄마 연희(조윤희)의 등장으로 감상이 방해받는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접했을 땐, 원주와 란희(하진화)가 핸드폰으로 번역된 텍스트를 건넬 뿐이다.
영화의 포스터에 적힌 것처럼 “어디서 온 지 모르는 이 사람은”, “힘이 되는 때 순간순간을 비언어적으로 바라보려 하고, 최대한 사실에 근거한 삶을 살려고 애”쓴다. 어쩌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2021)의 대본 리딩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오히려 감정을 배제하게 하는, 혹은 그것을 말로써 표현하기 위해 애를 써본 적이 없는 일상의 순간들을 굳이 표현할 단어를 찾기 위해 노력하게 하는, 늘 겸손하고, 늘 노력하는 한국인의 특성이 드러나는, 악기를 더 잘 다루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마주하게 하는 이는, 직전까지 눈앞에 있었는데 잠시 한눈 판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역시 그와 대조적인 건 연희다. 일언반구도 없이 갑자기 인국의 앞에 등장한 그는 격정적인, 과격한 감정의 표현 이후 정말 한국스러운 된장찌개를 뚝배기에 끓여 인국에게 내놓는다. 인국은 진지하게 사는 것과 열심히 사는 것은 다른 것이라 말하더니, 진지하게 사는 이리스에게 가서 열심히 사는 연희처럼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가 이리스에게 여전히 자신을 ‘친구로서’ 사랑하냐며 거리를 두려는 그녀에게 그렇다고 답한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렇지만도 않다. 때로 단조로운 일상에 경종을 울리는 여행자가 필요하기도 하고, “그래도 사는 건 변함없이 고되”니, 여행자도 “매일 막걸리에 의존하며 조금의 편안함을 얻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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