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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머리"를 아시나요?

eggheads.page 소개글 쓰기

by 안덕희

달걀머리의 소개글을 다시 쓰고 있다. 달걀머리 홈페이지의 About Us에 넣으려고 쓴 글이다. 이 정도면 우리 사이트를 모르는 분들도 이해가 될까? 흥미를 느낄까?




eggheads.page는 불안한 변화의 시대를 감지하고

어떤 확신도 없이 글을 쓰는 사람들을 찾으려 만든 공간입니다. 독서 모임과 글쓰기 강의 플랫폼처럼 보이지만

말이 되기 전의 생각들이 모이는 조용한 작업장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다루는 주제는 종종 무겁습니다. 기후, 인간의 경계, 감정노동, 생존, 비인간 존재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작은 문장과 이야기로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변화를 설명하거나,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리의 오류와 옛 말에 갇혀 변화를 보지 못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고통받는 이들을 보지도 못하고, 보아도 당연히 여길까 두려워합니다.


흔들리고, 궁금해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확신이 아니라, 흔들림이 만든 방향을 믿으려고 합니다. 그 흔들림을 함께 느끼고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갈 친구들을 기다립니다. “지금 여기"를 정확히 느끼고 정확히 말해보려는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인문, 철학, 소설 독서모임, 쓰기와 읽기 강의





저 짧은 소개글 쓰기가 참 쉽지 않았다. 요즘 출판연구학교라는 곳에 다니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데, 경험과 지혜로 무장하신 선배 출판인들의 조언에 따라 나 자신을 돌아보며 브랜딩을 다시 해보려 하는 중이다. 그 첫 단계가 바로 내가 달걀머리를 하고 있으며, 나는 이 사이트에서 어떤 역할을 하려는 건가, 하는 점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누런 하늘이 무서웠다. 서울 하늘 가장자리를 누런 띠가 감싸면 미세먼지가 온도계처럼 감지됐고, 공기 안의 이상한 감촉을 피부로 먼저 알았다. 2000년쯤, MBC 백분토론에서 “2020년대에는 서울에 야자나무를 심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들었다. 한 패널이 웃으며 말했다. “와, 그럼 바나나도 심고 좋겠네요.” 그 웃음이 이상했다. 서울에 야자나무를 심을 만큼의 변화가 온다는 건, 내겐 단순한 기후 변화가 아니라 무언가 엄청난 고통과 두려움의 예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그게 더 이상했다. (지금도 종종 그렇다.)


사람들이 무관심할수록, 나는 더 민감해졌고 그 감각들을 말로 꺼내려할수록 말이 어그러졌다. 기후만 그런 건 아니었다. 많은 다른 것들도 그러했다. 아마 그래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써지다 안 써지다 해도 습작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그 이유인 것 같다. 그리고 eggheads.page는… 그때부터 시작된 감각의 흔적을 글로 붙잡아보려는, 그리고 그 소외된 감각을 밖으로 꺼내보려는 나의 시도였다.

달걀머리를 작년 6월에 시작했으니까, 이제 1년이 다 되어간다. 여유롭게 하자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안 되는 부분은 내버려 두자고 했다. (강의는 최소인원만 차면 되고, 운영은 유지만 하며 내 소설 쓰면 되지—그렇게 생각했다.) 확실히, 걱정은 안 했다.


그러나… 시간이 서서히 흐르면서 불편해졌다. 이건 여유가 아니구나, 싶었다. 훨씬 나 자신을 드러내고 소통해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게 왜 이렇게까지 어려울까, 사실 나는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게 아니라 마비되어 있는 거였다.


아마, 단절된 감각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처럼 환경, 기후 이런 얘기가 당연해지기 전, 너 종말론 믿는 거냐, 너 왜 이렇게 쓸데없이 민감하냐, 하는 말에 어릴 때부터 찔리며 컸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내 안의 감각과 사회의 감각이 연결되기보다는 괴리되는 데 더 익숙하니까, 나를 보호하려고 조용히 머무는데 익숙해진 것 같다. 이것이 나 자신을 위한 변명이고, 위로다. 어쨌든 자책은 안 하려고 한다.


다만 이제는 세계의 온도와 나의 온도가 조금씩 비슷해지고 있으니 더 용기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이 사이트를 시작했을 때도 나는 용감해져도 된다는 걸 감지했던 걸 거다. 그걸 백 프로 실현하지 못했지만...


달걀머리는 다른 사이트처럼 완전히 준비된 곳은 아니다. 이름은 재밌지만 키치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헛똑똑이들, 그러니까 근대 이후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 하며 세상을 지배하는 줄 착각했던 인간들이 이렇게 세상을 망쳐놓았다는 걸 꼬집는 삐딱한 말이다.


만약 eggheads.page가 만약 조금 재밌거나 이상할 가능성이 있다면, 세상의 변화를 몸 깊이 감각하여 표현해 보려는 시도를 열어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감각들은, 이미 만들어진 게 아니라서 불완전하고, 울퉁불퉁하고, 날카롭다. 이 감각을 흠결 없이 포장해서 내놓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걸 자꾸 흠결 없이 보여주려 했으니 달걀머리 운영이 어렵게 느껴진 건 당연한 거겠지.


우리 사이트의 About부터 다시 생각해 봤다. 원래는 이렇게 썼었다.



새로 쓴 글보다 이 짧은 글이 더 낫기도 할 거다.

그러나 내가 이 사이트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건 어떤 사이트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끌고 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다시 쓰는 작업 자체가 우리 사이트가 어딘가에 있을 친구들을 향해 다가가는 발자국일지도 모른다.


글의 처음에서 마주치셨을 새로 쓴 About을 한번 읽어봐 주시고, 모호하거나 뜻이 전달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질문해 주시면 좋겠다. 그러면 다시 생각해 보면서, 한번 더, 대답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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