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더들을 위한 자가 진단표
컨설턴트로 일하다, 스타트업에 합류한지 어느덧 2년 6개월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창업자는 아니나, 회사의 리더로서 함께 비즈니스를 성장시켜 오면서 직/간접적으로 '리더십'에 대해 고민할 일이 많았다. 리더의 덕목을 감히 논할 정도로 경력이 길거나 대단하지는 않지만,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리더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동년배들과 대비해 밀도 있게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아래에 적는 항목들은 (특히나 스타트업의) 리더라면 갖추어야 할 덕목들에 대한 이야기다. 필자 역시 아직까지 답을 못 내리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그 해답이라기보다는 몇 년간의 리더십 역할을 수행하며 몸소 경험하고 느낀 바를 조심스럽게 공유하고자 한다.
비전은 내가 열심히 일해야 하는 당위다. 리더는 구성원들이 혼을 담아 달려야 할 이유를 주어야 한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생각보다 단순히 돈과 커리어만을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수한 인재들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욱 강하다. '우리는 왜 모였는지, 어디를 향해 가는지,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며 도달했을 때 우리와 우리가 바꿨을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생생히 그려내어 구성원들의 마음에 강렬한 불을 지펴야 한다. 구성원들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은 비전은 백 마디 업무 지시보다 많은 일들을 달성시킨다.
배를 만들게 하려면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려 하지 말고 바다를 동경하게 하라. 그 동경이 네게 스스로 배를 만들게 할 것이다.
- 생텍쥐페리 -
나아가 비전을 내제화 시켜야 한다. 비전이 선언적인 문장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 리더는 끊임없이 상기시켜줘야 하며, 다양한 형태의 수단과 도구, 제도 등을 동원해야 하기도 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 모든 행동들은 비전에 대한 대표의 진심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전의 중요성을 머리로만 아는 리더의 가식적인 비전 선언은 구성원들에 의해 놀랍도록 빨리 간파된다.
비전이 수립되면 적합한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모인 사람들이 유기적인 한 팀이 되어 최고의 효율로 일할 수 있도록 기업 문화에 기반한 인사 제도, 업무 프로세스를 정립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결핍한 조직이고 늘 인력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특히 급속도로 성장하는 조직일수록 급하게 직원을 채용하려고 하는데 이는 반드시 피해야 할 태도다. 회사가 요구하는 역량이나 fit에 부합하지 않는 지원자를 뽑을 경우, 치명적인 손실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서 완벽한 인재를 뽑는 것은 어렵겠지만 적어도 1] 조직 문화와의 적합성 2] 빠른 학습 곡선 3] 간절함은 공통적으로 차용할 만한 기준이라 생각한다. 잘못 채용한 인원을 강단 있고 빠르게 내보내는 것은 잘 뽑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맞지 않는 사람을 빨리 솎아내는 것은 회사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지만, 소중한 한 개인의 인생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업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된 인사 제도의 중요성이다. 회사가 사람을 채용, 해고, 평가, 보상하는 기준이 기업 문화와 동떨어지면 제대로 된 인재들로 구성된 팀이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훌륭한 리더는 업무를 시작한 첫날부터, 새로운 리더를 육성하는 데에 신경 써야 한다. 더 큰 책임을 맡아도 될 예비 리더들을 식별하고 성장시키는 일은 급속히 성장해 나가는 스타트업 조직의 성격을 감안할 때 대단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성원들의 업무 몰입도와 잔류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리더를 육성하려는 리더들의 의지와 노력을 통해 구성원들은 조직 내에 본인의 미래가 있음을 실감하게 되고 더 열심히 자계 개발과 업무에 열정을 쏟게 된다.
대다수의 스타트업들은 비즈니스에 대한 전략과 계획은 갖고 있어도, 리더 육성에 대한 것은 보유하지 않다. 통상 매출과 이익 등의 재무적 지표들과는 달리, 인력 육성은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로 간주되고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틀린 생각이다.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동인 중 하나가 보다 큰 역할에 대한 욕심이라는 점을 상기해 볼 때, 구성원들의 승진에 대한 경로 좌절은 이직 욕구를 부추기기 좋다. 우수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직원들을 회사에 잔류시키고 그들을 육성하는 것이 비즈니스 관점에서 가장 큰 이득이 된다.
리더 육성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이다. 회사가 리더들을 얼마나 중요시 여기며 얼마나 육성할 의지가 있는지, 기대하는 리더십의 역량과 자질은 무엇인지, 리더가 되기 위한 프로세스는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본래 의도했던 목적이 달성되고 쓸데없는 오해를 야기하지 않는다.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에 따르는 결과는 리더가 져야 한다. 수많은 구성원들과의 협의를 거쳐도 결국 최종 의사 결정자는 리더이기 때문이다.
책임이 무서운 것은 근본적으로 모든 의사결정에는 항상 미래에 대한 리스크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특히나 스타트업에서는 이 리스크의 불확실성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구성원들과 조직을 위축시켜 도전의식을 약화시키고, 발전에 필요한 건전한 시행착오를 억누른다. 시행착오가 없는 조직은 현실에 안주하게 되며 이는 스타트업의 가장 큰 강점인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갉아먹게 된다. 리더가 결정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구성원들에게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면 신뢰를 잃는 것은 물론, 조직의 영혼을 잃게 된다.
'적극적 의미의 책임감'이 중요하다. 단순히 결과가 나오면 그때 가서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한 사항이 실패하지 않도록 리더가 실무자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선제적인 개념이 '적극적 책임감'이다. 이 경우 설사 결과가 안 좋게 나오더라도 리더가 보여주는 헌신과 노력의 과정을 통해 리더와 조직에 대한 불신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고의 실무자는 '모든 질문에 대답을 주는 사람'이지만, 최고의 리더는 '모든 대답에 질문을 품는 사람'이다. 리더는 항상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 한정된 시간과 자원으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은 필수며, 오로지 리더만이 지엽적인 이슈나 근시안적인 시각에 대해 함몰되지 않은 종합적인 시야를 바탕으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의 리더는 실무에 대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있는 조직의 리더들보다 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자주 주어진 현안에 매몰되어 근본적인 질문을 놓치기 쉽다. 필자의 회사 역시 눈앞의 매출과 성장 때문에, 회사의 DNA와 맞지 않는 사업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때마다 우리가 과연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지금 하는 것이 맞는지, 이 형태로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성과에 대한 마음이 급했지만 차분히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많은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리더는 한 발 나아가 구성원들이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건강한 문화가 형성되면, 리더가 놓쳐도 회사의 빈틈이 줄어든다. 이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리더는 평소 구성원들에게 단기적 성과 지표 중심으로 질문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항목들을 종합해보면 스타트업의 리더는 '비전을 세우고, 여기 부합하는 사람들을 모아, 리더를 육성하며, 책임을 지고 계속 질문하는 사람' 정도로 정리되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경험을 통해 이것들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필자의 반성과 경험에서 나온 생각들이 리더십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오늘도 수많은 난관을 이겨내며 하루하루 전진해 나가는 모든 스타트업 리더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Written by 우치수
Edited by 조경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