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끈따끈한 오늘 이야기
교회 가는 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이미 걸어온 3분과 앞으로 걸어야 할 3분. 자취방으로 돌아갈지 교회로 갈지 망설이다 큰 나무 아래로 뛰어갔다. 위에서는 후두둑 빗소리가 들리고 건너편에서는 푸취치직 요란한 소리가 난다. 압력솥이 연기를 뿜으며 옥수수를 삶고 있다. 비가 잦아들어 교회로 뛰어갔다. 또 옥수수가 있다. '000 권사님이 직접 농사지은 옥수수입니다' 안내 문구를 보아하니 예배 끝나고 나눠주실 듯하다. 맛있겠다. 예배 끝나고 누가 내 손에 옥수수를 쥐어주길 조용히 바랐다.
이 교회에는 한 달에 한 번쯤 간다. 일부러 조금 늦게 가서 존재감 없이 예배만 드리고 후다닥 나온다. 예배가 끝나면 교회 현관에는 떡이나 사과처럼 간단한 간식이 준비돼 있다. 교회도 자주 안 오고 헌금도 안 하는데 간식을 집어가기가 민망해서 지나치면, 누군가는 꼭 내 손에 간식을 쥐어준다. 오늘은 떡과 옥수수가 있었는데 어느 분이 내 손에 떡을 쥐어주셨다. 감사한데, 옥수수가 너무 먹고 싶어서 아까 본 옥수수 노점에 들렀다. 5개에 5천 원. 방금 쪄서 뜨끈한 옥수수를 쥐고 카페에 갔다. 디카페인 아이스 라테와 옥수수 3개로 점심을 때웠다.
점심 먹고 누워서 유튜브로 류수영 비빔국수 레시피를 보다가 촬영이 있어서 집을 나섰다. 촬영하러 가는 길, 도로 양쪽으로 옥수수가 잔뜩 심겨 있다. 내 주변에 이렇게 옥수수가 많았던 날이 있었나. 오늘은 종일 옥수수 옥수수 거리며 다녔다. 겨울에는 추워서 잘 몰랐고, 봄에는 벚꽃 구경하느라 잘 몰랐는데 지금 사는 이 도시.. 참 초록빛이다. 이쪽 하늘에도 저쪽 하늘에도 어딜 가나 큼지막한 산이 있고, 이쪽 집도 저쪽 집도 텃밭에 각종 작물을 기르고 있다. 자취방 앞에도 복숭아나무가 새초롬히 서 있는데 복숭아가 이렇게 예뻤나, 마트에서 볼 때는 잘 몰라뵀다.
서울을 떠나 이곳에 온 지도 벌써 9개월. 이곳을 떠날 시기가 다가오다 보니 초록빛 도시를 더 만끽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든다. 우선 이번 여름 여기 옥수수는 내가 다 먹을 거다.
자취방 앞 옥수수밭. 옥수수야 잘 자라거라
자취방 코 앞 복숭아나무. 복숭아야 잘 자라거라.
자취방 근처 카페 앞 무슨 작물인지 모르겠는 밭. 잘 자라서 훌륭한 초록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