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결혼할 때 우리에겐 성혼선언문처럼 중요한 약속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결혼 후, 5년 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세계여행을 떠난다는 약속이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린 3년간 치열하게 살았다.
목표가 뚜렷해지자 모든 생각과 행동이 바꿨다. 아내는 결혼한 지 5개월 만에 교보문고에서 현대카드로 이직을 했고 난 결혼하자마자 주말 알바를 시작했다.
분당-정자동 빌라촌에서 월세 33만 원을 내며 돈을 모았다. 신용카드는 둘 다 하나씩만 사용했으며 차는 사지 않았다. 택시를 타는 일은 연중행사일 정도로 대중교통만을 고집했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봤고 회사는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돈을 모으는 것은 심리전이었다. 매월 엑셀로 수입과 지출을 항목별로 적고 자주 들여다봤다. 그러다 보니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통로가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조금씩 돈이 모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지출을 줄이거나 수입을 늘리면 돈이 모인다'는 간단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우린 지속적으로 지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려나갔다.
잠실, 석촌, 안양, 수원 일대 지역의 집부터 알아봤다. 집을 사서 매월 월세를 받는 야무진 꿈을 꾸며... 그러나 시세를 알아보니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다. 집이 어찌나 비싸 던 지 부동산에 들어가 시세를 물어보면 어느새 우린 스머프처럼 작아져 있었다.
눈길을 상가로 돌렸다. 분당-서현의 상가는 20평도 안 되는 것이 7-8억 훌쩍 넘었다. 회사 근처의 판교는? 서현보다는 쌌지만 우리가 살만한 상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매 월마다 월세를 받아보겠다는 생각은 매일마다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던 중에 머리 속에 스치는 생각. 서울, 경기도에서 상가를 살 필요가 있을까? 돈도 없는데...
어머니가 사는 인천-부평의 상가를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은 서울, 경기보다 시세가 싸고, 어머니가 살고 있으니 관리도 해줄 수 있다. 이거야 말로 1석 2조 아닌가?
난 주말에 알바를 위해 종로로, 아내는 인천 부평에 있는 상가를 알아보기 위해 분당-부평을 오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우리가 원하는 상가가 싼 가격에 나왔다. 그러나 상가는 '상가'였다. 매매 가격은 태산처럼 높았다. 보증금과 대출금을 껴도 매매 가격에는 어림도 없었다.
둘 다 신용대출을 받고 휴가를 내서 은행 지점장을 찾아가 사정사정해 추가 대출금을 받아도 돈이 부족해 어머니 비상금까지 탈탈 털어 매매 가격에 보탰다. 그래도 돈이 부족했다. 결국 잔금 치르는 날을 월급날인 25일로 미룬 후에야 가까스로 상가를 구입할 수 있었다. 우린 그렇게 결혼 후 8개월 만에 상가를 구입했다.
IT와 전혀 다른 업종에서 주말 알바를 해보니 생각보다 힘들었다. 작은 창고 뒤에서 햄버거를 밀어 넣다시피 하며 점심을 먹을 때는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며 버텼던 대학시절이 떠오르곤 했다. 회사를 떠나면 명함에서 남는 것은 이름뿐 이라고 하더니만 진짜였다. 그러나 흘린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매월 10일은 주말 알바 월급, 25일은 내 월급, 아내 월급, 상가 임대료까지... 한 달에 월급 4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돈들은 눈덩이처럼 모이면서 그전에 받았던 대출금들과 이자들을 열심히 먹어 치웠다.
매월 월급이 4개씩 들어오자 '욕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생겼다. 이렇게 편하게 살까? 아니다. 이제 떠날 때가 됐다. 돈이 부족하더라도 지금 떠나지 않으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다. 2014년 10월. 난 11년 넘게 다녔던 안랩을(구 안철수연구소) 퇴사했다. 일주일 후 아내도 현대카드를 퇴사했다. 처음에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서 아침마다 침대에 누워 미친 사람들처럼 실실 웃었다. 여유롭게 아점을 먹고, 뒷산을 걷고,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꿈꾸는 것 같았고 '행복' 그 자체였다. 2주간의 국내여행과 3주간의 국내 카우치서핑으로 워밍업을 한 후 출국 일주일 전, 방을 뺐다. 결혼 3년 만에 우린 한국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