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에 들어왔다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by 월세부부

과연 저 배낭들을 기내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을까?


그것도 추가 비용 없이! 몇 개월 전, 이곳 런던에서 아이슬란드로 들어가는 비행기 티켓을 샀다. 저가 항공사 중에 하나인 이지젯으로. 이지젯은 저가 항공사답게 짐을 수화물로 부치거나 좌석을 미리 지정하는 경우 아무튼 좋아 보이는 선택에 대해서 꼼꼼하게 추가 요금을 요구한다. 당시 우린 짐 하나를 수화물로 부칠 수 있게 미리 돈을 지불했는데 문제는 짐이 총 3개라는 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기내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다. 승무원들이 괜히 자그마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 사실 돈이 많다면 또는 돈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수화물 하나당 8만원 정도를 추가로 지불하고 부치면 그만이다. 쿨하게! 그런데 우린 지금 쿨하지 못하다. 그래서 머리 아프고 좀 약간의 짜증이 나고 뭐 그런 거다. 그리고 우린 똑똑하고 약간은 교활한 이지젯을 넘어서고 싶었다. 체크인할 때 이지젯 항공사 직원들 앞에서 환하게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 짓고 싶었다. 너희들은 아직 우리에게 안된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이지젯과의 게임이 시작됐다. 짐들을 모두 바닥에 쏟았다.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수화물로 부칠 수 있는 짐 크기는 제한이 없고 무게는 20kg까지 가능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수화물로 부치는 배낭에 짐을 가능한 한 많이 구겨 넣은 후 두 개의 짐인 배낭, 비닐가방을 이지젯에서 제한하는 크기로 배낭을 전부 다시 싸는 것이다.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한 배낭 '트랜스포머'였다. 수화물에 부칠 배낭에는 부피가 큰 것들 위주로, 기내에 가지고 갈 배낭에는 부피가 작고 무거운 것들을 넣었다. 옷을 무진장 끼여 입고 비행기를 탈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그 정도로 절박한 상황은 아니라서 그만뒀다.


다음날 공항에 도착해 이지젯 항공사 쪽으로 걸어가는데 기내 짐 크기를 체크하는 통이 보였다. 먼저 비닐가방을 넣었다. 통과! 다음은 내 배낭. 역시 통과! 괜히 졸았잖아! 하루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부푼 아내 배낭을 수화물로 부친 후 라운지에 갔는데 와아! 이곳 공항 라운지는 호텔 식당인 건가? 왜 이렇게 럭셔리해. 이게 다 무료하는 거지? 그 막강한 PP카드(Priority Pass - 전 세계 공항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카드) 덕분에! 이야기하면서 인터넷 하면서 하루 종일 굶은 사람처럼 음식을 흡입하고 있는데 아내가 “저기 외국인들 냅킨에 음식 싸가지고 가는데 우리도 싸갈까?”라고 말했고 난 “why not?”으로 답했다. 우린, 배낭여행자들이니까...



드디어 출발!


저녁 8시가 넘어 아이슬란드 국제공항(Keflavik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얼마간 더 가자 아이슬란드 수도인 레이캬비크 시내가 보였다. 저녁 10시. 수화물로 부친 아내 배낭을 멨는데 쌀 가마니를 멘 것처럼 양쪽 어깨뼈를 짓눌렀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에어비앤비(Airbnb - 숙박 공유 플랫폼 서비스) 호스트는(집주인) 우리가 오기 전에 아이슬란드는 술이 매우 비싸다고 두 번이나 강조하면서 공항에서 나오기 전에 면세점에서 술을 사야 40~50% 가격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그로 인해 난 어깨에는 쌀가마니 같은 배낭을, 왼손에는 보드카 두 병, 오른손에는 맥주 12병을 들고 있다. 아이슬란드 이 겨울밤에!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은 어둑 컴컴한 시내를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으며 걸었다. 이국적이었고 낯설었고 간판은 모두 아이슬란드어로 쓰여 있었다. 1km 정도만 걸어가면 나올 거라 생각한 에어비앤비 집은 예상과 달리 나오지 않았다. 중무장한 군인처럼 이것저것 들고 한참을 거리를 헤매다가 안 되겠다 싶어 호스트에게 전화를 했다. 3분 넘게 국제통화를 했지만 그는 자신은 다른 도시에 살고 있으니 차근차근 잘 찾아보라고 했고 우린 순간 사막에 떨어진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전화를 끊었다. 아내와 함께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며 헤매기를 다시 한참. 우린 뚫어지게 구글 지도를 보고 있었음에도 바보처럼 예약한 집을 찾을 수 없었다. 답답한 가슴을 식히기 위해 눈이라도 퍼먹어야 할 판이었다.


그 사이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내 아이폰은 배터리가 방전되어 꺼진 지 오래였고 아내 아이폰의 배터리는 1% 만남아 있었다. 무슨 액션 스릴러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닌데 딱! 1%라니! 설마 저 숫자가 오늘 에어비앤비에서 잘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사막에 갇힌 사람처럼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고 두렵고 초초해졌다. 저 1% 남은 아이폰 배터리가 꺼지기 전에 어떻게든 집을 찾아야 한다. 온통 하얀색으로 뒤 덮인 이 길거리에서 하얗게 '동사'하고 싶지 않으면...


밤늦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주소를 보여주며 미친 사람처럼 물었지만 그들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때 눈 앞에 택시가 서서히 다가왔다. 난 돈이고 뭐고 간에 다짜고짜 택시를 세워 나이 지긋한 택시 아저씨에게 주소를 물었다. 그는 아이슬란드어로 '시키비크시키비크'라고 했고 난 일시적으로 신경다발이 끊긴 사람처럼 한 동안 그 아저씨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아! 여기 아이슬란드지! 하고 바디랭귀지를 시작했다. 택시 아저씨는 내 바디랭귀지를 본 후 오른손으로 왼쪽 팔을 두드리며 '시키비크시키비크' 했다.


하아. 아이슬란드에 와서 택시기사 아저씨와 가족오락관에서나 나올법한 게임을 하고 할 줄이야! 이런 게 여행이구나! 집 나오면 개고생, 맞구나! 그런데 재밌다. 힘들고 답답하고 초조한데 이 상황이 재밌다. 아저씨는 자신의 바디랭귀지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일단 타라고 했다. 우린 땡큐를 연발하며 택시에 탔고 아내 아이폰은 영화처럼 전원이 꺼졌다. 직선으로 300미터 남짓 갔을까? 아저씨는 차를 세우더니 나를 한번 보고 집 문을 가리켰다. 고작 300미터 앞에 있는 집이었는데 2시간 넘게 찾지 못하다니. 우린 아이슬란드에 오자마자 장님이 됐고 어린아이가 됐다. 아저씨에게 돈을 내려고 하자 그는 몇 번이나 필요 없다고 했다. 조폭들처럼 택시 앞에서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말한 후 키박스에서 열쇠를 찾아 방으로 들어와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침대에 털석 주저앉았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때로는 장님이 되고 귀 먹거리가 되고 어린아이가 되어 '개고생'을 한다는 것을 의미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보겠다는 다짐이자 의지다. 우린 한국을 떠난 후부터 그 길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