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세부부 Oct 30. 2020

누구나 '이직'을 꿈꾼다.

가을이다.

옷장에서 긴 옷을 꺼내 입으며 나도 모르게

올해도 이제 별로 남지 않았네~라고 혼잣말하는 가을이다.

지인이나 직장동료들이 설악산 갔다 왔다고 자랑질하는 그런 가을이다.

얼마 전에 회사를 이직한 친한 동생에게 회사가 어떠냐고 물었는데 답변이 웃겼다.


형, 캐리비안베이 온 줄 알았다니까요~

(일의) 파도가 오니까 물 먹고, 앞은 안 보이고,

옆에 다른 사람들하고 엉겨 붙고, 코는 맵고.

진짜 쉴 새 없이 일하고 있어요.

개울에서 물장난하다가 여기 오니까 정신없네요.

30초마다 파도가 오고 있어요.


문자들을 보고 자신의 상황을 단방에 알아듣게 설명해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났는데 그 뒤로 그 동생의 슬픔이 묻어났다.

얼마나 다닐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으니 2년 간 잘 버텨서 이후에 판교로 이직을 하겠단다.

이제 들어간 지 한 달도 안됐는데 말이다.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직'을 꿈꾼다.

이유는 다양하다.


더 좋은 처우(연봉)를 받기 위해서,

월화수목금금금처럼 매일 야근하는 게 진절머리 나서,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꼰대 같은 상사와 끊임없이 잘난척하는 동료들로부터 탈출하고 싶어서,

그냥 이 회사가 싫어서 등.


일단 이직을 결심하면 직장생활은 활기차게 변하기 시작한다.

아침에 눈꺼풀에서 딱! 소리가 날 정도로 번쩍 떠지고

상사가 귀에 피가 나도록 잔소리를 해도

이직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스님 얼굴을 하고 허허실실 하며 다 받아준다.


그뿐 아니다.

동료들 몰래 또는 화장실에서 잡코리아나 사람인에 접속해 채용공고를 수시로 확인하고

한 동안 보지 않았던 지인들과 만나 현재 트렌드를 파악하고 유용한 정보들을 얻는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열심히 이력서를 쓰고, 업데이트하고

칼을 갈듯 조용히 휴가를 쓰고 면접을 준비한다.


최종 면접이 붙고 처우(연봉협상)까지 끝나면 지금 다니는 회사 상사와

동료들에게 약간은 미안한 표정으로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직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때 사람들은 보통 세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부류는 배신, 의리 등을 이야기하며

게거품 무는 사람으로 보통 상사나 팀장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이들은 부하직원이 나간다고 하면 즉각적으로 양의 탈을 집어던지고 송곳니를 뽐내며 포악한 늑대로 변한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고 시작해 나중엔 절대 아는 척하지 말라!로 말하며 마무리한다.

지금까지 회사를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나갈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가 조폭 상사 밑에서 일했다는 것을.

드루와~ 드루와~ 준구가 시키드나?


두 번째 부류는 부러운 눈빛을 하며 축하해주는 사람들로

내 이럴 줄 알았다, 어쩐지 요즘에 출퇴근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라고 말하면서 오늘 당장! 술 한잔 사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나가는 입장에서는 미안하고 즐거운 협박이다.


마지막 부류는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마음으로 사람들이 들고나가는 것을 초월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공기 같은 사람들이라 이직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몇 달간 고생해 이력서를 쓰고, 면접보고, 송별회를 하고

지인들에게 이직을 한다고 알릴 때가 어찌 보면 가장 설레고 기뻤던 시기라는 것을 새로운 회사에 출근하고 머지않아 알게 된다.


아~ 배우고 싶어서, 일을 좀 더 열심히 하고 싶어서 이직을 하긴 한 건데...

이건 일이 거의 폭탄 수준이네!

3일밖에 안 다녔는데 벌써 전 직장이 진심, 그.립.다!


아~ 전 직장 팀장은 양반이었구나!

지금 팀장은 완전 워커홀릭에 또라이잖아!


이렇게 하루하루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며

이직하며 설레었던 감정들을 퍼내고 또 퍼낸다.

때로는 유난히 달달하게 느껴지는 소주 한잔과 함께.


혹시 이직을 고민하는가?

이직해라! 대신 그 시기를 즐겨라!

그 설렘은 이직하고 첫 출근을 하는 순간 급속도록 하한가를 맞을 확률이 높다.

그러니 그 시기를 마음껏 즐겨라!


이미 이직했는데 적응하기 힘든가?

버텨라. 2년만 버텨라!

어렵게 이직해 왔는데 이런 것까지 해야 되나?라고 자존심을 내세워

배움의 순간을 홀라당 날리는 것보다는

오히려 내가 여기 와서 이런 업무를 하며 배우기까지 하네!라고 생각하자.

그러면 월급은 덤이 된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자존심의 꽃이 떨어져야 인격의 열매가 맺힌다"고.

당신 잘난 거 다 아니까 자존심은 좀 내려두고 배워라. 그게 먼저다.


그래도 너무 힘든가?

그러면 어쩔 수 없다.

젖꿀이 흐르는 전 직장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그런데 이 결정을 할 때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

사람(전 직장 상사) 마음이란 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인생사 결국 마음먹기 나름이다.

죽어서 천국 갈 생각하지 말고 지금 여기가 천국이라 생각하자.

그러면 나도, 당신도 이미 천사다. 하하.

이전 18화 내 마음을 닦아준 까만 눈동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