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그래도 가족과 함께한 연세대 마지막 이야기
한창 학교 다니면서 수업 듣는 와중에도 나는 졸업식 날을 상상하곤 했다. 학위 가운 입고 캠퍼스 곳곳에 사진 찍으러 다니는 사람들을 봐서, 졸업 가운이 눈에 익기도 했고, 학회와 학과, 동아리에 졸업하는 선배들이 매학기 나오다 보니 내가 졸업하는 날의 장면을 상상하는 게 딱히 어렵지 않았다.
물론, 졸업하는 선배마다 대학원이니 대기업이니, 공무원이니 제각기 가는 길이 너무도 달라서 내 스스로 졸업한 뒤 진로와 그에 따른 기분이 어떨까 가늠하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난 워낙에 낙천적인 사람이다^^ 이 캠퍼스가 치열하게 공부하는 현장인 한편 남성합창단 등 기분 좋은 낭만을 선물해준 장소이기도 해서 만에 하나 갈 데 없이 졸업하더라도 기분이 나쁘진 않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졸업하는 날에는 내가 다녔던 건물을 하나하나 돌아다녀보고 싶었다. 셀 수 없이 오랜 시간 있었던 도서관과 전공, 학회 세미나를 했던 상경대학, 그리고 2년 동안 몸담은 남성합창단의 동아리방을 들르고 싶었다. 비록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연희관과 백양관, 교육관 등 수업 들은 건물은 한번씩 다 다녀보고 싶었다.
나름 명문대를 다닌다는 자부심이 있었고(부정할 수 없쥬), 또 이 대학의 동문으로서 사회로 내딧는 첫발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가장 나이 많은 손주로서 학교를 찾은 할머니, 할아버지께 캠퍼스 구경도 시켜드리고 학사모도 씌워드리고 싶었다. 외할머니는 우리 어머니의 사촌 오빠, 그러니까 외할머니 당신의 조카가 연세대를 졸업할 때 이미 그 졸업식을 왔다고 했다. 그러니까 연세대 졸업식이 처음이 아닌 건데, 그래도 조카의 졸업과 본인 손주 졸업이 같으랴. 말은 못했지만 이번 졸업식을 꼭 외할머니와 함께 하고 있었다.
또 졸업하는 날 동아리, 학회 등 학교 내 단체마다 그들만의 행사가 있는데, 내가 기대하는 게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일년 동안 함께 공부했던 ESC 통계학회. 졸업하는 선배들의 기수와 이름을 적어 현수막을 걸어둔다. 졸업생들은 학회 측이 공지한 시간에 현수막 앞에 모여 함께 사진 찍고, 학회가 준비한 졸업 선물을 받는다.
두번째는 남성합창단 행사다. 우리 도서관 앞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는데, 졸업생들과 현 단원들이 이곳에 모인다. 그곳에서 졸업생을 꼭대기로 올리는 인간 피라미드를 쌓아 올리는데, 맨 밑에 4명, 그 위로 3, 2, 마지막으로 졸업생 1명을 올리는 식이다. 남자들만 모인 합창단 특유의 단합과 무식함을 보여주는 행사가 아닐 수 없는.. 어쨌든 난 선배들 피라미드를 쌓아주고 나는 그 위에 오르지도 못한 꼴이 됐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