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5]
아무래도 요리에 재미를 붙이게 되는 시작으로 무난한 건 파스타가 아닐까? 기본적인 토마토부터 로제, 비스크 소스까지 다양하게 유리병으로 팔아주니 면만 취향대로 삶아주면 끝이다. 면의 종류만 해도 리본 모양, 곰돌이 모양, 조개 모양 등 식감과 비주얼마저 무한하게 변주가 가능해서 질릴 틈도 없다.
하지만 팩 소스로 만족되지 않는 파스타가 딱 하나 있었으니, 바로 크림 파스타다. 브랜드 별로 다 먹어보아도 레스토랑의 맛을 따라갈 수 없었다. 18000원짜리 파스타에서 느껴지는 꼬소—하다 못해 꼬릿 하고 눅진한 맛은 팩 소스로는 역부족이다. 다들 이 결핍을 시작으로 ‘요리’를 시작하게 되는 게 아닐까.
크림 파스타의 비밀을 알 게 된 것은 스물두 살 때였다. 소스까지 직접 만들어보자며 장을 봐다가 우유 0% 생크림 100%로 이루어진 꾸우덕한 크림을 영접한 순간 ‘아, 이것이구나!’라며 유레카를 외쳤다. 레스토랑 크림 파스타의 비밀은 아낌없는 생크림의 비율이구나!
나는 미친 고소함의 폭탄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고 싶었다. 식사만큼 일상의 소소하고 특별한 조각이 있을까? 당장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아, 이렇게 맛있는데! 이 맛을 나만 알고 있어야 하다니!
난 곧장 집에 있던 해를 불러 냈다.
- 내 요리 좀 쩌는 것 같아! 혹시 올래? 파스타 먹게 해 줄게!
마침 본가에 있던 난 수능 볼 때 마지막으로 썼던 보온 도시락통을 꺼냈다. 그러곤 평소의 두 배양은 되는 면을 삶아서 소스와 함께 가득 담아서 싸들고 나갔다. 아무 계획 없이 대뜸 파스타를 덜렁 들고 서울 한복판에서 만난 우리는 동네를 방황하다가 가까운 대학 캠퍼스로 들어갔다. 그리고 적당한 나무 벤치에 앉아서 파스타 도시락을 꺼냈다.
뚜껑을 열었을 때 기대와 다른 비주얼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면은 퉁퉁 불고 소스는 떡져 있었다. 그럼에도 꾸덕하고 고소한 크림 빨로 우린 파스타를 싹싹 비웠다. 아니, 소스 덕이라기보단 음식을 함께 맛보는 흥분과 재미에 푹 빠졌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함께 맛의 기쁨을 나누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항상 남과 함께하는 식사는 불편함뿐이었다. 남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에 먹는 속도도 느렸던 나는 내게 주어진 식사를 다 비워본 적이 없었다. 남의 속도에 맞춰 식사를 마치면 자리에서 일어날 때부터 배가 고팠다. 꾸역꾸역 입에 넣은 날에는 하루 종일 더부룩해서 새벽까지 잠을 설치곤 했다.
그런데 해와 함께 하는 식사는 즐겁기만 했다. 맛있는 음식은 더 맛있어졌고, 맛없는 음식을 먹을 때조차 함께 ‘맛없음’에 대해 토론하느라 재밌기만 했다. 내가 먹는 건 걔가 먹는 거였고, 걔가 먹는 건 내가 먹는 거였다.
스물두 살에 자취를 시작하면서 고삐가 풀린 듯이 해와 온갖 음식을 먹어댔다. 당연 대부분의 식사는 해와 함께였다. 점심에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밥버거와 편의점 도시락을 때울 때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지쳐서 배달 음식을 시켜먹을 때도 함께였다. 매일 새벽까지 논문을 쓸 적엔 매일같이 야식 배달을 시켜서 허기를 채우곤 했다. 둘이니 돈도 반반이라 부담도 덜했고 ‘옆에 있는 애도 똑같은 걸 먹네?’라는 생각이 드니 거리낌이 없었다. 당시엔 무지해서 밥버거도 밥이요, 편의점 도시락도 한식이자 정식이요, 야식 배달도 김치찌개니(?) 나 정도면 적당히 잘 챙겨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연인과 함께 했던 대학 생활 동안 10킬로가 쪘다. 당연히 운동은 없었다. 그나마도 체육 교양강의로 듣던 요가 수업이 유일한 운동이었다. 건강에 무지했던, 맛있는 걸 함께 먹는 데에 만족했던 시절이었다.
영원히 즐길 수만 있다면 좋았겠지만 즐거움에 뒷전이 된 내 몸뚱이를 감당하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새내기 시절에 입던 옷이 죄다 맞질 않았다. 옷을 살 때 상의는 무조건 헐렁하게, 바지 허리엔 고무줄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아무런 자제와 관리 없이 방치해둔 내 몸은 근육은커녕 뼈도 잘 보이지 않는 둥글한 모양새였다. 실루엣과 상관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이가 옆에 있었지만 나는 내 뱃살이 사랑스럽지 않았다. 연인과 행복하게 맛있는 것을 즐긴 것이 쌓이고 쌓인 증거이기도 했으나, 나에 대한 외면과 무지의 결과이기도 했다.
‘내 몸뚱이와 건강을 내가 책임지지 못했구나.’
한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거슬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실루엣 정도야 패션으로 만들 수 있다지만, 연인이란 존재는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서로의 몸을 접촉하기에. 혼자일 땐 위생만 챙기면 그만이었지만 그가 쓰다듬는 거칠한 볼의 피부결이 신경 쓰였다. 뱃살이 나온 모양새마저 볼록한지, 쳐졌는지 가늠하게 됐다. 연인의 몸엔 관대하면서 나 자신의 몸엔 관대하기 힘들었다. 연인의 얼굴이 동그래지면 그건 그거대로 귀여웠으나, 내 얼굴의 살은 떼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다 해와 최장기간의 이별을 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학과, 동아리, 관심사까지 같았던 우리는 5년간 거의 매일같이 붙어 지냈는데, 군인이란 신분과 코로나 상황이 맞물리면서 세 달에 걸쳐 견우와 직녀처럼 만남을 가졌다. 본의 아니게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진 거다. 에너지가 남았고, 돈이 남았고, 시간이 많아졌다. 야밤에 치킨 한 마리를 배달시켜 먹기 애매해진 거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다시 건강해지고 싶었다. 나는 ‘옆에 있는 애가 먹는 기름지고 지방질의 무엇’을 참아낼 재간이 없어서, 혼자가 된 시간을 적극 활용해보기로 했다. ‘함께 먹는 즐거움’은 잠시 제쳐두고 홀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제일 예쁘게 생긴 과일도 내 것, 오동통한 새우도 모두 내 것이요, 주방장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플레이팅이 된 아름다운 접시도 모두 내 것이다. 먹는 양을 눈치 볼 이도, 입맛을 맞춰야 하는 사람도 없는 나만의 식단이 있는 식당.
의외로 나만을 위한 요리는 즐거웠다. 역시 외식보단 요리였다. 아무래도 직접 요리를 하면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하기 쉽다. 어떤 요리에 설탕과 소금이 우수수 들어가게 되는지 직면하게 되니까. 나를 건강히 챙기는 일은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함께 하는 일은 즐겁지만 나를 돌아보긴 힘드니까. 사랑지상주의자는 살이 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