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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 Oct 23. 2022

맞춤 치킨 케이크 나왔습니다.

[0.125]

- 내가 준 선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야?

 이 책을 쓰다가 해에게 물었다. 안타깝게도 준 사람조차 모든 선물이 기억나진 않았다. 소소하게는 츄파춥스부터 크게는 전자기기까지 주고받은 것이 너무 많았다. 서로 주고받은 물성 있는 선물을 다 없애면 방에 남는 게 별로 없을 정도랄까?

 하지만 내 물음에 해는 망설임 없이 외쳤다.

- 치킨 케이크!     

 치킨 케이크는 해의 생일날 내가 서프라이즈로 직접 만들었던 선물이었다. 해는 케이크 같은 디저트를 잘 즐기지 않는 짭짤 매콤파다. 그나마 선호하는 달다구리는 죄다 후루룩 마실 수 있는 것들 뿐이었다. 그래도 분위기 내는데 케이크만 한 게 없으니 고뇌하다가 떠올린 아이디어가 치킨 케이크였다.

 해의 치킨 취향은 무조건 순살이다. 육즙 가득한 닭다리살로만 이루어져 있는 고오급 프랜차이즈 치킨보다는 덩어리도 작은 살짝 B급 감성의 치킨을 좋아했다. 살보다 겉 튀김이 두꺼우면서 입천장을 긁어대는 빠삭한 호프집 후라이드 치킨 느낌이면 최고다.

 별난 선물치고 치킨 케이크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다이소에서 동그랗게 케이크 모양을 만들 수 있는 틀을 사고 치킨 배달을 시키면 반은 완성한 거나 다름없다. 군침도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치킨 박스가 집 앞으로 배달되면 동글동글한 순살치킨을 빈틈없이 원통 모양으로 쌓아준다. 나름 케이크인데 빵만 있으면 서운하니 매콤한 양념치킨도 함께 시켜서 중간중간 크림층을 만들어주면 훌륭하다. 사실 동그란 틀에 담긴 치킨일 뿐이지만 멋들어진 ‘HAPPY BIRTHDAY!’ 초를 꽂아주면 누가 뭐래도 가장 특별한 주문 제작 치킨 케이크 완성이다!

 사실 훌륭한 속물이 되어버린 이십 대 후반의 나는 ‘가장 비쌌던 선물을 기억하려나?’ 싶었는데, ‘가장 별난 선물’에 감동받는 걸 보면 역시 돈을 많이 쓸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특별한 날은 더 특별하게. 바쁠 때도 우울할 때도 생일 케이크 초를 부는 건 빼놓지 않았던 나는 챙기고 기념하는 걸 좋아했다. 서프라이즈도 좋아하고 편지도 좋아하고 어여쁘게 포장된 선물도 좋아하는, 조금 성가신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도 받는 걸 좋아하는 만큼 퍼주는 것도 좋아해서 생일자인 사람이 있으면 확실하게 챙겨 주는 게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라고나 할까. 생일 한 달 전부터 선물을 물색하는 건 물론이요, 어울리는 카드와 포장지까지 하나씩 수집해나가는 게 작은 낙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학창 시절엔 선물을 챙기는데 나를 가로막는 것은 용돈의 여부밖에 없었다. 나는 비싼 외국 브랜드 샤프를 받았는데 답례로 과자를 줄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도 즐거웠다. 생일날 아침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등교하면 보물 찾기가 시작됐다. 책상 서랍에 작은 쇼핑백 하나, 끼익 거리는 사물함을 열면 편지와 박카스 한 병. ‘너랑 친구라서 기뻐.’라는 직설적이고 용감한 고백이 담긴 카드를 읽으면 행복으로 충만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십 대가 되고 생일을 챙기는 방식이 달라졌다. 성인이 되자 각자의 사정으로 바빠진 학창 시절 친구들은 좀처럼 다 같이 모이기 힘들었다. 시간을 내서 만나기보다 시간이 나면 모이는 방식이 고착화되어 더욱 그랬다. 생일은 고사하고 연말연시에 연례행사처럼 한 두 번씩 만나는 게 고작이었다. 그 마저도 모든 멤버들이 ‘모인다’라는 의무감으로 한 달간 겨우 시간을 맞춰봐야 했다. 그렇게 6개월에 한 번, 혹은 1년 중 하루를 잡아 누군가의 하루 일정이 모두 끝난 오후 6시쯤 모여 밥 한 끼를 먹고 디저트 한 세트를 먹었다. 축하할 일도 위로할 일도 이미 삭아버릴 정도로 오래되어서 우린 항상 함께 지나왔던 추억 이야기만 되풀이하다가 헤어졌다. 20대 초반의 나는 그게 참 싫었다.

 난 생일이면 모바일 기프트콘보다 고심해서 고른 선물을 정성껏 포장해서 건네며 축하하고, 축하받고 싶었다. 하지만 날짜에 맞춰 미리 준비해둔 누군가의 선물 박스는 주인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몇 개월이고 옷장 위에서 먼지만 쌓여가기 일쑤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다들 특별한 날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미 준비되어 있구나. 가족이 됐든, 다른 친구가 됐든, 내 자리가 아니구나. 섭섭하면서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치였다. 그저, 조금 쓸쓸했던 것 같다.

 그래도 특별한 날에 꼭 함께 하는 관계가 딱 하나 있었다. 좋은 것을 보면 하나 둘 사모아 왕창 퍼주어도 호구가 아닌 넘치는 사랑이 되고, 비싼 선물을 받아도 보답을 걱정하기 이전에 감동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관계. 바로 애인 관계였다.

 나는 처음 함께 보내게 된 해의 생일에 파티를 열었다. 친한 대학 동기들을 모아 떠들썩하게 그의 생일을 축하했다. 선물 증정식도 하고, 생일 고깔을 씌운 뒤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난생처음 생일 파티라는 걸 하게 된 해는 얼떨떨해했지만 즐거워했다.

 내 생일에는 꽃과 식물을 받았다. 해에게 받은 작디작았던 미니 선인장은 지금 새끼 자구를 15마리 이상 가진 엄마 아빠가 됐다. 선물을 고르는 센스나 가격은 사실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나를 생각하며 선물을 고르는 모습을 상상하면 사랑스럽고, 다른 무언가를 살 수 있는 돈으로 내가 필요한 것을 결제하는 마음이 기특했다.

 어느 무엇도 당연한 건 없었다. 누군가는 정성스레 표현했고, 누군가는 그걸 알고 노력해서 시간을 낸 거다. 자신의 하루를 기꺼이 나를 위해 내어 주는 사람. 그리고 그걸 감동하고 고마워하는 사람. 그렇게 애인이 우선순위가 되는 게 아닐까?

 어른이 되고 보니 사랑의 교환만큼 더없이 복잡하고 힘든 일도 없는 것 같다. 사랑은 무엇보다 귀중하고 한정된 재화라서,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양은 매정하리만큼 쪼그맣다. 실속 없지만 거대한 문구 세트를 선물하며 “내가 제일 큰 선물을 했어!”라고 뿌듯해하던 날은 어디 갔는지 원.

 난 이 그리움을 연애를 하면서 해소했던 것 같다. 혹자가 연애하느라 친구들은 내팽개쳐두고 애인만 만난다는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부디 이해해주시길. 연인이란 언제나 카톡 채팅방 가장 윗 쪽을 차지하는 부동의 1위일 테니. 그렇게 인간관계의 1순위를 인생 전체에서 얼마 차지하지도 않은 연인이 손쉽게 쟁취하는 거다. 이렇게 연애가 어마 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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