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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 Oct 23. 2022

사건은 항상 쏘주와 함께

[0.1875]

 낯선 모임에 참석하게 되면 “애인 있어요?”란 질문을 꼭 받는다. 연애기간이 4년 정도가 넘었을 무렵부턴 새로운 질문이 추가됐다.

- 헤어진 적 없이 쭉 사귀었어요?

- 이젠 싸우지도 않죠?

 처음엔 왜 이런 무례한 질문을 하나 싶어서 불쾌했는데, 요즘은 긴 기간의 놀라움을 표현하는 거겠거니 하고 넘기곤 한다. 이 주제가 많은 이들이 퍽 궁금해하는 소재이긴 한가 보다.

 싸우긴 8년째인 지금도 싸운다. 꿀밤 한 대를 세게 쥐어박고 싶은 날이 백날은 넘는다. 싸움의 이유가 반복될 땐 솔직히 허탈한 마음으로 이별이 머릿속을 스쳐간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강렬하게 불타오르는 짜증의 순간을 잠재우는 것은 뜨뜻하게 쌓아온 사랑이 아닌, 분노로 가득 찬 나에 대한 혐오감이다.

 싸움은 스스로를 참 못난 사람으로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못된 단어들만 부러 골라 골라 내뱉는다. 잔뜩 자존심이란 가시를 세워가며 잡아 죽일 듯이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노려본다. 내 감정을 내가 조절하지 못하는 느낌은 불쾌하다. 그 경험은 대개 좋지 않게 끝나기 때문이다. 바락 바락 화내 보았자, 어떤 논리 정연한 말을 늘어놓아보았자, 결국엔 흑역사가 되어 이불을 뻥뻥 찰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입 밖으로 투투 뱉어내고 만다. 당장 내보내지 않으면 명치 쪽에 응어리찬 불덩이로 혈압 올라 뒷목 잡고 쓰러질 것만 같으니까.

 누구에게도 뱉지 못했던 날 선 단어들이 우리 사이를 오갔지만 그럼에도 관계가 베어진 적은 없었다. 하면, 관계의 위기가 없었느냐. 아니다. 드디어 수없이 들어온 질문에 대답해보자면 이별을 입 밖으로 낸 적이 한 번 있었다.

-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 개소리하지 마.

 우린 1초 정도 헤어진 전적이 있다. 이성친구 문제 때문이었다.

 난 소위 ‘남사친’이 많았다. 학창 시절, 여성으로 이루어진 무리에서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는데,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 여성들과 어울리는 게 어려웠다.

 ‘여성이 내게 호감을 가질 리 없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란 걸 알지만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본능 문제였다. 나란히 걷다가 뒤처지는 것만으로 위축되는 관계에서 친구관계가 성립될 리 만무했다. 불쑥 튀어나오는 거부감을 끊임없이 노력하며 눌러야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반대로 남자 형제는 태어나자마자 있었고, 학창 시절 동안 모두 공학을 다녔기에 이성의 존재는 낯설지 않았다. 거부감이 없었기에 사교가 잘 이어졌고 우정이 깊어질 수 있었다.

 대부분 애인이 생기면 이성 친구와 거리를 둔다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내 소중한 친구는 모두 남자였고 남자일 뿐이었다. 애인이 싫어하는 행동을 할 생각은 없지만 난 내 인간관계를 연애를 이유로 바꿀 생각이 없었다.

 다행히 애인은 모든 사실을 알고도 별 관심 없어했지만, 사달이 난 것은 쏘주때문이었다.


 사귄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우린 대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MT란 걸 가게 됐다. 같이 손을 붙잡고 계곡을 산책하기도 하고, 산골짜기의 신비한 기념품들을 구경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눴지만 항상 함께는 아니었다. 데이트를 간 게 아니니 두루두루 함께 노는데 집중했다. 특히나 밤새 이어지는 술자리는 선후배 상관없이 벽을 허물고 가까워질 수 있는 친목의 장이었다.

 거실 같은 공간에 작은 테이블을 서너 개씩 붙여서 다닥다닥 붙어 앉은 모습은 꼭 명절을 떠올리게 했다. 다 함께 비좁은 부엌에서 북적이며 서툴게 만들어낸 안주들을 사이좋게 상 위에 늘어놓았다. 문어모양의 소시지와 채소를 수북이 볶아낸 케첩 쏘야, 어묵과 시판 소스를 부어 끓이기만 한 어묵탕. 아쉬운 탄수화물의 자리는 역시 봉지 라면이다. 싸구려 인스턴트 요리들이 빛을 발하는 건 ‘안주’의 이름을 달았을 때다.

 일회용 스티로폼 그릇에 담긴 안주가 모두 준비되면 시계 방향으로 잔을 돌린다. 착, 착, 모두에게 잔이 들리면 종이컵에 표면장력을 뽐내며 찰랑거리는 쏘주가 담긴다. 편하지만은 않은 자리를 풀어내는 건 역시 쏘주의 역할이다. ‘소주’는 왠지 정 없다. ‘쏘주’라 불러야 제 이름 같달까? 좁은 밥상 앞에서 무릎 끝조차 서로 닿기 어색했던 사이도 쏘주만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동무까지 해가며 셀카를 찍는다. ‘부어라 마셔라’는 그때만 할 수 있는 친목이기도 했다.

 하지만 쏘주는 즐거움만 주지 아니하는 법. 사건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쏘주의 역할이다. 알코올램프를 왈칵 마시는 것 같던 맛이 달게 느껴질 때가 사건이 일어나기 딱 좋은 적기다. 혀는 마취된 것처럼 꼬이고 사고마저 마비된다. 가차 없이 감정이 뒤흔들리고 생각을 생각만으로 두지 못하게 하는 마성의 음료, 쏘주. 낯선 감정을 부추기는 쏘주에게 지배당한 새내기 해는 당황했다.

 연애를 하면서 느끼게 되는 제일 낯선 감정은 질투가 아닐까? 나 자신이 가장 보잘것 없어지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타인을 소유하고자 하는 오만한 탐욕스러움. 꼬인 마음을 버틸 재간 없이 배설하게 만드는 진퇴양난의 감정. 그 치졸한 감정은 너무나 파괴적으로 자신의 밑바닥을 마주 보게 한다. 그걸 먼저 느낀 건 내가 아닌 해였다.

 난 술기운에 풀썩 맨바닥에 드러누워 선배들과 낄낄거리고 있었다. 화장은 다 지워지고 귀까지 잔뜩 벌게져서 추해진 서로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을 때였다. 저 멀리 앉아있던 해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난 이상한 낌새가 들어서 해에게 다가갔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손등에 상처가 날 때까지 손끝에 힘을 쥐고 있었다. 난 급히 해의 손등에 대일밴드를 붙여주곤 서둘러 바깥으로 그를 데리고 나왔다.

 마땅히 앉아서 이야기할 곳이 없었던 우린 차디찬 대리석 계단에 나란히 앉았다. 그는 취해있었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 개소리하지 마.

 과격했던 언행을 애인에게 이 글을 빌어 사과한다. 하지만 돌아가도 변함없이 반응했을 것 같긴 하다. 그가 이별의 말을 꺼낸 건 ‘질투를 하는 본인의 모습’이 혐오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 않았을 생각을 하는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질투 때문에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다니? 만약 그가 “남사친이 많은 네가 싫어.”라고 말했다면 “어쩔 수 없지.”라고 답했을지도 모르지만, 감정을 감당할 수 없다니. 질투는 마땅한 감정이다. 헤어짐의 이유가 사랑의 부재가 아닌 감정의 넘침이 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린 대리석 계단을 협상 테이블 삼아 긴 이야길 나눴다. 해는 잘못이 없었다. 나도 틀리지 않았지만 배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린 아직 너무 얕은 관계였고, 사랑을 책임지는데 서툴렀다.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건 쏘주로 달아오른 몸뚱이를 식혀줄 돌계단의 냉함이었다. 우린 알코올로 꼬여버린 혀로 부족하지만 명확하게 말하려 애썼다. 서로에게 섞이려다가 마구잡이로 엉켜버린 실타래를 다시 천천히 한 가닥, 한 가닥 풀어냈다.

 목구멍을 타들어가게 만들던 쓴 맛은 온데간데없이 어느새 입안에 화한 단내만 남았다. 그날은 쓰디썼고, 곧네 달았다.

 그날의 질투는 오늘날 해와 나의 단골 쏘주 안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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