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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상담사 Uni Jul 20. 2020

숲이 놀이터였던 그때

 4. 숲이 놀이터였던 그 때


딸아, 너에게는 유년기를 함께 보낸 멋진 친구들이 있지. 6살부터 숲에서 모여 놀던 친구들과 2학년 때부터 도서관에서 모여 품앗이 수업을 하던 친구들. 모임을 하면 3년 넘기기가 어려운데 이 두 모임은 몇 년을 잘 보낸 덕에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끈끈하게 만남을 이어오고 있어. 엄마에게 인생의 찐 행운이란다. 

    

 너는 사람들을 참 좋아했어. 어렸을 때부터도 친구들과 놀기를 원하고, 무조건 누가 있어야 나가려 했지. 동물원이나 박물관이라도 가려면 한참을 구슬려서야 나가려 할 정도로 집에서 노는 걸 좋아했는데, 친구만 있다고 하면 당장에 달려 나가는 거지. 엄마가 친구들이 많았으면 서로 어울려 놀 수 있을 텐데 최대한 노력해도 안 되더라. 그때 당시는 어린이집이 보육료를 비싸게 내야 했기에 어린이집을 보내기도 애매하고, 문화센터 수업을 몇 개 받았어. 보통 문화센터에서도 엄마들끼리 친해져서 아이들 같이 놀더라. 엄마도 애써봤는데 가까워지기가 쉽지 않았어. 엄마는 내향적인 편이라 낯가림도 심하고, 다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연락처 물어보려면 며칠은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잖아. 지금까지 제일 친하게 지내는 유치원 친구도 하도 네가 연락해서 놀고 싶다고 해서 그 친구 엄마에게 말하기까지 몇 주 고심하다 말 걸었을 정도야. 어쩔 때는 너 놀게 해 주겠다고 내 성향에 맞지도 않는 일을 해야 하나 싶다가도 네가 그렇게 놀고 싶어 하는데 짠하니까 애는 썼지. 그래도 인연이 잘 안 이어졌어. 어쩌겠어. 엄마, 아빠가 대신 많이 놀아줬지.     


 5살이 되면서 유치원을 가니 좀 낫더라. 친구들도 만나고, 놀 수 있으니 좋을 거라 기대했는데, 웬걸. 유치원에 10시에 가서 끝나고 오는 2시까지 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거야. 엄마는 너를 놀며 즐거운 시간 보내리라 생각했는데 너는 놀지도 못하고 왔다고 하니 왜 그런가 봤지. 수업시간이 있어서 시간마다 선생님과 활동을 하는 거지, 정작 노는 시간은 하루 30분 정도가 다였어. 네가 원하는 건 마음껏 아이들이랑 놀고 싶어 간 건데, 끝나면 또 다 통학버스 타고, 뿔뿔이 흩어져서 헤어지니 성에 안 차는 거지. 그래서, 놀 수 있는 친구 엄마들과 놀자고도 해 보고, 연락도 해서 따로 만남도 가져 보지만, 엄마도 동생을 낳으면서 너를 마냥 데리고 나갈 수 없으니 마음이 무거웠어.      


  엄마가 어릴 때는 동네가 다 놀이터였거든. 엄마들이 일하시고 바쁘면 그냥 문 열고 밖에 나가서 골목에서, 아파트 단지에서 놀아도 아무 상관이 없었어. 범죄를 크게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나쁜 일이 생길까 걱정도 별로 없었지. 놀고 싶으면 나가서 마음껏 놀았던 것 같아. 물론 어린 나이에는 보호자가 당연히 필요하지만. 내내 속으로만 고민해도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어째.      

 

 그러다가 동네에서 숲 모임 공고를 보고, ‘이거다’하며 무릎을 탁 쳤지. 산에도 가서 마음껏 놀고 친구들과도 놀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동생은 이제 막 걷기 시작했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를 업고서라도 어디든 못 가겠냐 싶었어. 엄마가 되니 용기도 불쑥불쑥 솟는구나. 그렇게 네가 6살 때부터 숲 모임으로 일주일에 2~3번씩 하원 하면 근처 산에 가서 뛰어놀고, 간식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단다.     

 기억나니? 도봉산, 수락산, 초안산 참 많이도 갔잖아. 6~7집에서 아이들 1명에서 3명까지 하면 엄마들까지 10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 움직였어. 너랑 동갑인 여자 친구가 있어 마음이 잘 맞고, 사이사이 동생들과 돌쟁이 막내도 있었어. 공주를 좋아하던 너는 산에 가면 힘들다고, 늘 출발 전까지는 산에 안 간다고, 안 간다고 해서, 구슬리고 어쩔 때는 협박도 하며 데리고 갔는데. 막상 가서는 또 놀다가 집에 안 간다고, 안 간다고 떼를 써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흐뭇한 고민을 했어. 산에 올라가면 마음껏 뛰어다녀도 되고, 조금 한적한 곳에서는 큰 소리로 부르고, 깔깔깔깔 웃기도 했지.     

 봄이면 살짝 비가 내려도 우비 쓰고 산행하면서 개구리 소리도 듣고, 안개 낀 산속을 우리만의 아지트처럼 여기저기 누비며 보냈어. 진달래가 피면 진달래도 따서 불을 사용할 수 있는 곳에서 화전도 만들어 부쳐 먹어보고. 너희는 막대기, 돌멩이 모아다가 기지 같은 것도 만들고, 칼싸움도 하고, 너희들만의 시간을 만끽했지. 여름이면 비가 많이 오길 기다렸다가 물이 찼을 때 물놀이도 하고. 발만 담그기로 했다가 어느새 옷이 다 흠뻑 젖어도 신이 나서 웃고 놀았잖아. 댐도 만들고, 물총놀이도 하고, 물고기도 잡아보고 여름 내 새까맣게 타도록 산에서는 시원하게 보냈어. 가을이면 알밤도 줍고, 다람쥐도 만났잖아. 낙엽도 떨어지면 낙엽 다 쓸어다가 모아서 거기에 쏙 들어가기도 하고, 낙엽을 하늘 위로 던져서 낙엽비도 맞고, 이모들이 루프 사용법을 배워서 줄을 나무에 묶어 그네도 탔었어. 겨울이면 너희 가장 신났지. 눈이라도 쌓였다 하면 비닐포대 준비해서 매끄럽게 미끄러질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눈썰매를 신나게 탔어.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어 보고.      

  엄마들이 여러 명이다 보니 간식도 다양했지. 한창 놀고 나면 배고파질 즈음에 엄마들 돗자리 위에 떡, 꼬치, 과일, 빵, 샌드위치, 김밥까지 쫙 펼쳐지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왁자지껄 이야기하며 맛있게 나눠 먹었지. 겨울이라고 간식타임을 빼놓을 수 없지. 천하무적이던 엄마들은 원터치 텐트까지 준비해서 가장 바람이 적을만한 곳을 골라서 설치하고, 핫팩으로 중무장했어. 찬바람 맞으면서도 밖에서 놀던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텐트로 들어오면 텐트 안이 꽉 차도록 끼어 앉아서 따듯한 간식을 먹었어. 어묵도 싸오고, 핫초코, 호떡도 있고, 호호 불어가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도 먹었단다. 먹고 나면 또 나가서 뛰며 놀고, 잠바 잠가라, 장갑 껴라 해도 괜찮다며 여유롭게 놀러 다녔지. 그때 많이 뛰어놀아서 그런가 너희는 감기도 잘 안 걸리고, 튼튼하게 자란 것 같아.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도 일주일에 며칠을 만나며 놀았는데 어느덧 한 집, 한 집 멀리 이사를 가게 됐어. 세종, 용인으로 떠나게 됐는데 처음엔 그 빈자리가 참 크더라. 매일같이 놀고, 어울리고, 좋은 데 있으면 함께 가던 친구들이 없어지니 너도, 엄마도 그 자리를 메꾸기까지 시간이 걸렸어. 우리는 물론 지금도 일 년이면 서너 번은 각지에서 만나 어제도 만난 듯이 놀잖아. 참 고마운 인연들이야. 


 딸아, 이 기억들을 잘 간직하렴. 네가 살아가다 넘어지고, 부딪힐 때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낸 기억들이 너를 위로해 주고, 토닥여 줄 거야. 너의 모습 그대로 사랑받았던 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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