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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은 Jan 07. 2024

나는 내가 제일 좋아

고백한다. 나는 내가 제일 좋다. 나는 내가 제일 애틋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매번 느낀다. 나는 아이를 키우지만, 나도 키운다. 머리의 반쪽은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데 쓰고, 나머지 반쪽은 휴직 기간을 어떻게 슬기롭게 쓸 것인가, 효과적인 자기계발 방법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생각하는 데 쓴다.     

나에게 책을 읽을 시간도 주고, 글을 쓸 여유도 주고, 일과 공부를 통해 성취하고 성장하는 경험도 가능하게 하고. 30여 년간 그렇게 나를 키워왔다.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서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다.     

아내로서의 나, 엄마로서의 나도 소중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나도 엄연히 살아있다. 고된 타지살이와 육아로 더깨가 쌓인 '나'도 종종 들여다보고 가꿔야하는데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가는 것, 조용히 식사를 하는 것, 세수하는 것, 로션을 바르는 것, 혼자 편하게 걷는 것은 물론 새벽에 깨지 않고 맘 편히 푹 자는 것도 어려워졌다. 생리 욕구조차 참아가며 아이를 돌봐야 하다 보니 체력도 인내도 바닥나기 일쑤였다.       


보호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와 성장과 발전에 대한 불안감이 굳은살처럼 박힌 삼십대 후반의 나. 본능은 마땅히 안전과 안정의 손길이 필요한 아기부터 돌보지만 마음 한 편에는 이렇게 육아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도 되는걸까? 하는 의문이 스물스물 올라오곤 했다. 누구도 나를 손가락질 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데, 찜찜한 죄책감은 덤이었다.     


한없이 우울한 마음이 고개를 들면 내면의 평가자가 엄격한 얼굴로 묻는다. 너는 제대로 하는 게 뭐야? 엄마로서도 온전하지 않고, 사회인으로서도 무중력 상태. 머리는 바쁜데 몸은 의욕의 발끝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나를 호되게 야단친다. 스마트폰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잘 해내는 것 같은데.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흐트러짐이 없고, 머나먼 타국에서도 씩씩하게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비교선상에 선 나는 흠결 투성이다.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우선 읽는다. 그리고 적는다. 완벽하지 않은 글이라도 기록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울적한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다. 어디에선가 글 쓰는 여자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문구를 봤다. 글 쓰는 여자는 무너지지 않는다. 나 자신을 돌보고 키우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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