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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유니버스 Nov 27. 2023

악몽

이것은 웹툰인가 소설인가...

꿈을 '거의' 꾸지 않는다. 정확히는 꿈을 꾸는 건지도 모르는데 깨면 기억이 없다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꿈 속에서 조상님이 나타나 6개의 번호를 점지해주고 '로또에 당첨되어라!' 하더라도 그 숫자를 기억 못하기 때문에 꽝일 확률이 높다. "어제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오늘 차 조심하고..." 라고 했던 어머니의 말씀도 그래서 크게 와닿질 않았다. 


그런 내가... 웹툰이나 소설처럼 너무 생생하고 생경한 꿈을 꿨다. 

'안...돼' 하며 몸부림을 치며 일어나자 베개가 눈물로 흥건히 젖어 있는 그런 꿈을 꿨다. 




불행히도 이번 꿈의 발단과 전개는 모두 생략되었다. 꾸었는지도 모르지만 기억이 없기 때문에 바로 전개의 후반부이다. 공간과 시간 배경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그 곳, 그 시간이다. 어딘가를 부지런히 걸어가는 나, 상가의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붉은 빛이다. 장작을 태울 때 보이는 그 붉은 빛의 얼굴과 붉은 눈. 


'나는 누구일까?' 


어딘가로부터 지령을 받고 방화를 하고 건물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건물 속 사람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동료와 상사로부터 넌 왜 그러냐며 질타를 받는다. 아... 내 존재를 알 거 같다. 나는 '악마'였다. 다행인 것은 절대 악이 아니라 아직은 인간의 본성이 남아있고, 이승의 가족들에 대한 기억도 남아 있는 그런 악마였다. 


장면이 바뀌고, 아내가 아이들과 걷고 있다. 엄마 왼쪽,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고 재잘재잘대는 모습이 지금과 같다. 반가운 마음에 아이들을 부르려는데, 유리창 속에 검붉은 내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악마이기에 지령을 받고 흑화될 수록 점점 사람의 얼굴을 잃고 검붉은 불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려다 '멈칫'한다. 악마인 아빠를 아이들이 보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족들의 뒷모습을 보고 악마인 나는 어둠으로 사라진다. 꿈 속에서지만 너무 생경하고 슬퍼서 어둠 속에서 흑화된 악마가 붉은 눈물을 흘렸다. 




세상사가 그렇듯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악마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동안 그들을 잡고 처리하기 위해 천사가 파견될지 누가 알았으랴. 지령을 받은 악마들이 불을 지르고 범행을 저지르면 하얀 옷을 입은 천사들이 나와 그들을 무력화한다. 소화기로 불을 끄듯이... ... 중간 장면은 또 삭제되고... 나는 또 무슨 지령을 받고 건물의 기둥을 무너뜨리고 불을 지르려 하고 있다. 그러다 하얀 옷을 입은 천사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누군지 모를 심판관에게 끌려갔다. 


"안돼요. 나는 비록 악마이지만, 그래서 지령을 받고 나쁜 일을 했지만 한 번도 사람을 직접 해한 적은 없습니다. 건물이 붕괴되거나 불이 날 때 사람들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왜 악마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기억 속에는 아직도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나를 처리한다면 전지전능한 당신이 과연 옳은 일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한 문장 이상의 말을 잘 안 하는 과묵한 편인데, 꿈이지만 이렇게 논리정연하게 얘길한 나 자신을 칭찬한다. 그런 논리 덕이었을까? 심판관은 나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너의 기록을 보니 정말 악마이지만 살인을 하지는 않았구나. 내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일주일 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소멸되는 것이지."




"안돼요. 안돼 ! 일주일 가족들과 있어서 좋지만 검붉은 악마로 변한 아빠, 남편을 가족들이 반길 리가 없잖아요. 안돼요 안 돼! 아이들에게, 아내에게, 이제 아빠는 떠난다는 말을 하지도 못했는데.. 이 모습으로 어떻게 나타나요 (엉엉) "


그렇게 꿈에서 깼다. 베개가 젖어 있다. 깼는데도 코를 훌쩍 하는 걸 보니 아직도 슬픈가보다. 

후다닥 일어나 화장대 조명을 켜고 얼굴을 봤다. 검붉은 악마가 아니라, 자다 깬 아저씨가 있다. 


'다행이다.' 주섬 주섬 안경을 찾아 시계를 보니 토요일 새벽 3시 30분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단잠에 빠져 있어 내가 옆에 다가가도 몰랐다. 다행이다. 



너무 생생하길래 아침을 먹으며 가족들에게 꿈 이야기를 해줬다. 예지몽 이런 건 아닌데..라며 다들 의아해했다.

아이들은  "아빠, 요즘 영화나 책이나 웹툰에서 비슷한 내용 본 거 있어요?"

아내는  "영화 콘스탄틴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죽은자의 집청소라는 에세이를 가슴 먹먹하게 읽고, 젠틀맨 리그의 초능력자들이 기억이 안 나서 영화를 다시 보고, 고스트 터미널미소찢는 남자라는 웹툰을 보기는 했다. 젠틀맨 리그에 나오는 '투명인간'도 불 앞에서 결국 화상을 입고, 죽은 자의 집청소가 눈앞에 보여준 홀로 죽은 사람의 모습이 연결됐나 보다.

공항폭발사고로 저승에 가야 하는 아빠가 살아있는 가족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이승으로 오려 하는 고스트터미널과 입을 찢어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미소찢는 남자의 이야기도 한몫 거들었나 보다. 


어쨌든 지금 악마가 아닌 아빠로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된 꿈이었다. 

(어쩌면 나에게 이런 스토리의 소설이나 영화 대본을 써보라는 조상신의 점지일지도 모른다) 


#라라크루 #라이트 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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