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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웅주 Sep 02. 2018

나의 계획은 사실 그랬다.

'나'란 나의 자아와 주관으로 가득찬 존재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내'가 '나'에 대해 말하는 것 보다는 타인이 '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어쩌면 더 합리적일지 모른다.


물론 '타인' 역시 '나'를 자신(=타인)의 자아와 주관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겠지만.

그래서 처음부터 어쩌면 모든 것의 객관적 시각이라는게 가능하긴 한건가 라는 생각도 든다.


2018년 2월 6일.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그는 하루 종일 엉덩이가 들썩였다. 다행히 뭔가 집중해야 하는 일은 없었지만 

괜시리 인터넷 창을 의미 없이 켰다 껐다 했을 뿐이었고, 유튜브를 검색했다갸 검색 결과는 보지도 않고 네이버, 구글에서 뭔가를 찾아보다가 그것 역시 정작 검색 결과는 안보고 그냥 뭔가 정신 없이 왔다 갔다 마음만 부산했다.


네이버 지도. 상호 검색, 리뷰 확인, 거리 및 소요 시간 체크.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그림 확인. 댓글 확인.

전화. 전화번호 입력. 여보세요. 아, 네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깐깐하거나 분초 단위로 시간을 체크하면서 그래서 평소보다 더 디테일하게 컨디션을 체크했다.

중요한 만남인 건 맞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그 사람을 피곤하게 하거나 나의 어색함이 드러나거나, 혹은 일정 중 하나라도 꼬이기 시작한다면??


그 생각이 그를 더욱 깊숙한 심연으로 끌어당기고 마는 것이었다.


"아, 뭘 먹어야 하지?"


까다롭지 않고 소탈해 보이는 입맛으로 뭐든 잘먹는다는 말은 오히려 꽤 입맛이 짧은 고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무얼 먹고 싶냐 물어보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일차에서는 밥을 먹고 이차에서 좋은 카페라도 가서 술이든 차든 커피든 마시면서 이야기를 꺼내봐야지.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아, 그럼 뭘 마셔야 하지?"


여의도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그 근방에 괜찮은 곳이 있을까.

아무래도 커피보다는 술을 한잔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맥주보다는 소주를 좋아하는 그녀.

그렇다고 소주를 마시는 것도 좀 경박해 보였다. 

오늘은 아무래도 그가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하는 자리니깐, 혹여 위스키나 칵테일을 마시러 가자 해서 문제될 것도 없겠지.


"아, 차를 가져가잖아!"


그렇다면 그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말인데, 술을 안마시고 그녀만 혼자 소주잔을?

더더욱 안될 말이었다. 그러나 위스키나 칵테일은 상관 없을 것 같았다. 그가 무알콜 칵테일 같은 걸 마셔도 될테지.


그래서 여의도에 있는 괜찮은 호텔의 바를 찾아봤다.


너무 비싸다.  그러나 사실 가격이 문제될 건 없었다. 오늘 같이 중요한 날 평소보다 조금 더 과한 지출이 문제될 건 없었다.


그녀를 위해서는 그 정도 쯤은... 그리고 현대카드 바우쳐도 있으니 오늘 한번 써도 될 법한 상황이었다.


"근데, 아마도 그녀가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


이제 겨우 만난지 세번째. 결혼 프로포즈도 아닌데 한강 야경이 보이는 고급 바 & 레스토랑에 가서 "우리 조금 더 진지한 만남을 가져봐요" 라는 말은 그녀가 매우 부담스러워 할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과유불급. 늘 중용을 중시하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과함. 그리고 뭔가 허세가 가득한 남자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네, 저 제주도에서 언니들이랑 재밌게 잘 놀다 왔어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근데 정작 제주도 흑돼지를 못먹어서 좀 아쉬웠어요'


뇌리를 스쳤다.


"그래, 소탈하게 보이면서 뭔가 깊이 신경 쓴 듯한. 일을 마치고 허기가 져 있을 그녀를 위해 1차는 삼겹살을 가볍게 먹으며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들어볼까?"


"흑돈가? 제주도 흑돼지? 여의도에 뭐가 있을까. 아니지, 오늘 같은 날 돼지고기를 먹이는 건 좀 너무 평범하지 않을까?"


그는 겨우 생각의 확장을 부여잡았다. 더 이상 오래 끌 시간이 없다. 시간은 어느덧 5시 30분.

지난 번 여의도 IFC 몰에 있었던 YG에서 운영하는 삼거리 푸줏간을 갔던 기억이 난다.


2016년 5월 즈음.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그녀는 욕심이 많았던 여자였다.


부어도 부어도 끝이 없고,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그치지 않는 사람처럼 끊임 없이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던 여자였다.


하루를 보면 이틀이 보고 싶고, 이틀을 보면 삼일을 봐야 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자존심이 강했지만 자존감은 약했던 여자였다.

그녀는 그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했고, 먼 미래까지 생각하는 것 같은 여자였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행복했으나, 나중에 갈수록 그것은 그의 목을 차츰차츰 조여오는 칼이었다.


비오는 날 홍대에서 시작된 10km 마라톤. 그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뛰었다. 아니 걸었다.

그녀는 몹시 나에게 실망한 듯 했으나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여의도에서 마무리 된 레이스에서 만신창이가 된 둘은 IFC몰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근처 아무 고깃집이나 가서 고기를 먹었다.

그는 늘 겉으로는 최선을 다하는 배려심이 깊은 남자였다. 가슴 속에는 스스로 부끄러움으로 가득찬 자괴감과 그녀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 고깃집. IFC몰 삼거리 푸줏간.


그는 그 곳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곳에 가기로 했다.

뭐 어때. 사람이 바뀌었고 상황이 바뀌었는데.

지난 사랑에는 아무 물기도 뭍어있지 않았다.

그 기억들은 너무나 건조해서 생생하게 기록되었지만 한없이 가벼웠고 아프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고깃집이었다.

차가운 고기를 파는 고깃집.


결국,

6시 30분 퇴근.

6시 40분 차를 빼고.

6시 50분까지 회사 옆에 있는 주유소에 가서 차에 기름을 넣고 세차를 하고.

티맵을 켜보니 7시 반까지는 여의도에 도착한다고 하는데 

경험 상 이 시간대 올림픽대로 여의도 방향은 마지막 진입 차선이 늘 막히곤 하지.


카톡으로 "7시 40~50분 사이에는 도착할 거 같아요"

운전을 하면서 계속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본다.

최대한 동작은 자연스럽게, 표정은 평온하게.

사실 그는 누군가와 눈을 잘 맞추지 못한다.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내의 생각을 읽혀버릴 것만 같고, 내 모습을 보면서 상대방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느끼는 것도 불편했다.

그는 은근히 눈치가 빠르고 미세한 변화에도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미세한 변화는 그의 마음 속에 늘 태풍처럼 격렬하게 그를 공격하곤 했다.

"이번에는 눈을 잘 맞추고, 최대한 말을 적게 하고, 혹시 거절한다 하더라도 마치 예상했다는 듯 의연하게 대처하기"

그답게. 그답게. '나' 답게 하기.


<후기>

결국 나는 그녀를 63빌딩 지하 주차장에서  30분 동안 기다렸다.

일이 덜 끝난 그녀는 몹시 미안해 하며 내 차에 올라탔고

준비한 대사와 상황과 완전히 어긋나버린 나는 다행히도 고깃집까지는 무사히 운전하고 갔다.

재작년 사람이 없던 그 곳은 사람이 가득가득해서 겨우 자리를 잡았고,

고기를 굽는데 고기가 잘 안구워져서 중간에 가위와 집게를 빼앗겼다.

술은 소주를 시켰고 나는 마시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서도 곧잘 술을 홀짝홀짝 마셔서 걱정했던 별 문제는 없었다

밥을 잘 먹고 상수동 당인리 발전소 근처의 그문화 다방으로 갔다.

술을 시키려고 했는데 커피를 시킨 그녀에게 꽤 당황했다.

커피를 앞에 두고 맨정신에 이야기를 나누기엔 좀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일본에 있는 동안 내내 생각났고 만나는 몇 번의 순간이 너무 좋았다. 조금 더 진지한 관계로 더 만나고 싶다' 고 담백하게 고백했고. (물론 모습은 전혀 담백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는 바로 '네 그렇게 해요 우리' 라고 했다.

나는 당황해서 '네?' 라고 되물었고, 그녀는 바보같이 물어보는 나를 보며 빙긋이 웃었다.

나는 또 당황해서 '그런데, 우리 그럼 이제 어떤 관계가 되는건가요?'라는 최악의 질문을 했고

그녀는 바보 천치 멍청이처럼 물어보는 나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뭐긴 뭐에요, 사귀는거죠' 라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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