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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웅주 Sep 02. 2018

봄은 내 오감을 통해서 온다.

봄날은 간다



봄은 내 오감을 통해서 온다.


어느날 쓰레기가 버려져 있던 한 골목길에서 하얀 눈과 검정 때가 뒤섞여 녹지 않은 눈덩이를 보며 겨울이 저렇게 더러울 수도 있구나를 느꼈을 때


그러나 어느날 우연히 그 눈덩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말라 버렸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문득 그 순간 쳐다본 하늘이 회색 빛 구름 덮임이 아닌 미색의 하늘 빛으로 눈에 들어왔을 때


이어서 바라본 앙상하게 말라있던 나뭇가지에 녹색의 무언가가 빼꼼히 돋아나 있을 때


봄은 내 눈에 들어왔다.


적막과 고요가 밤을 감싸던 눈내리던 새벽의 순간, 이 겨울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도 그 순간 처절한 외로움을 경험했을 때


생명의 물기라곤 전혀 없는 마른 나무가 흔들리고 갈변한 풀잎들이 건조한 서걱거림을 소리낼 때 겨울은 오랫동안 내 곁에 있겠구나 생각했다. 


어느날 우연히 저 멀리서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


바람이 불면 흔들리던 나뭇가지와 풀잎들의 소리가 느려지게 들릴 때


그 겨울의 소리는 사라지고 봄은 내 귀로 들려왔다.


제철의 맛은 오래 묵힌 맛보다 더 달고 시고 쓰다.


겨우내 먹었던 밥이 뜨거운 온도로 무뎌졌을 때, 비로소 봄은 우리에게 날 것 그대로의 맛과 온도를 허락했다.


겨울의 맛이 속을 뜨겁게 만들어 주고 열량을 주었을 때, 봄의 맛은 혀를 민감하게 만들어 주고 활력을 준다.


밥벌이의 지겨움도 봄이 되면 먹기 위해 벌어야 한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 사이클을 돌아 첫 마음을 되찾는다.


봄에는 도다리 쑥국, 냉이와 달래 무침이 맛있다지만 그냥 그 철에 나오는 맛이면 그 무엇이든 사람을 편안하게, 졸립게 만든다.


그렇게 나는 봄을 먹어 내 몸에 흡수한다.


비온 뒤 나는 흙냄새와 봄이 올 때 나는 흙냄새는 다르다.


차가운 바람이 불 때의 겨울 냄새는 비릿하고 날카로웠다. 봄의 냄새는 그에 비해 훨씬 뭉근하고 복잡하다.


봄은 코를 통해 가장 먼저 느끼고 그 봄의 향은 우리의 생활이 다시 시작함을 의미한다.


냄새마저 얼어붙던 겨울이 지나가면 그 동안 봉인되어 있던 모든 냄새가 일시에 해제되고

그 다양한 냄새를 구분하며 나는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봄은 내 코를 바쁘게 한다. 


봄은 간지럽다.


내 온 몸을 적시는 봄바람도, 흩날리는 옅은 봄비도, 어디선가 불어오는 꽃가루의 가벼움도

내 몸에 봄이 닿을 때 나는 간지러움을 느낀다.


맘 속에 뭔가 몽글몽글한 것이 돌아다니기 시작할 때, 나는 그것이 곧 봄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간지럽고 맘이 간지러울 때, 희망의 노래를 듣고 보드라운 영화를 찾아본다.


연애가 하고 싶고 감정의 교류를 나누고 싶고 온기가 올라오는 잔디밭에 앉아 훌렁 드러눕고 싶기도 하다.


오감을 활짝 열고 봄을 느껴본다. 평생을 봐도 질리지 않을 봄이다. 점점 더 짧아져서 그리울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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