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따라야 들어갈 수 있는 카페.

우연처럼 열리고, 인연처럼 사라진 빠이의 어느 아침.

by 나들레



운이 좋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하는 동안, 글을 써야 했기에 '노트북 하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녔다. 차가 없는 뚜벅이 여행자에게는 걷기 좋은 거리에 있으면서도,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분위기가 절실했다. 빠이 숙소로 오가는 길목에서 매번 마주쳤던 Chortip Cafe'는 이상할 만큼 늘 한적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외관과 내부는 '여긴 꼭 한 번 들러봐야지'하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토요일 아침 9시, 드디어 첫 방문의 날이 밝았다.


삐걱, 문을 열자 두 남자가 나를 맞았다. 남자 사장님과 그의 아버지로 보이는 분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나 하나뿐. 어색함도 잠시, 두 사람은 나를 보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활짝 웃어며 반겨주었다.


"어디서 왔어요?", "혼자 여행 중이에요?", "빠이 여행이 처음이에요?"


간단한 영어로 시작된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쏟아지는 질문 세례라기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듯한 다정함이 가득했다. "혼자 왔다니 정말 대단해요!", "빠이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짧은 수다였지만, 그들의 따뜻한 환대 덕분에 낯선 공간에 대한 경계심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카페 내부는 한국의 세련된 인테리어 카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통창으로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쏟아져 들어왔고, 창밖 맞은편으로는 온갖 잡다한 물건이 가득 쌓인 현지 생활용품점이 보여 묘한 대조를 이뤘다.


며칠 내내 지극히 로컬다운 공간에만 머물다 마주한 도시적인 분위기는 기분 좋은 설렘을 안겨주었다. 에어컨 덕분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쾌적한 온도, 눈이 편안한 조명, 공간을 느긋하게 채우는 재즈 선율까지. 모든 것이 '오늘은 여기서 오래 머물러도 좋아'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가장자리 벽을 따라서는 노트북 작업자를 위한 배려인 듯 콘센트가 넉넉했다. 마음에 드는 테이블에 자리 잡고 노트북을 막 꺼내려던 참이었다. 사장님의 아버지로 보이는 분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말했다. "여기 콘센트 있어요! 편하게 충전하세요." 그 사소한 한마디가 왜 그리 기분 좋게 들렸을까. 작은 친절과 공간이 주는 온기가 뒤섞여 첫 방문의 낯가림을 완전히 무장 해제시켰다.





커피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디저트는 오렌지 조각 케이크를 주문했다.


푹푹 찌는 빠이 날씨에도 따뜻한 커피를 고집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 여행에서 덥다고 찬 음료만 마시다가 호되게 배탈이 난 경험 때문이었다.


조심스럽게 커피를 한 모금 머금자,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산미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과하지도 밋밋하지도 않은 완벽한 균형감. '이 원두, 정체가 뭐지?' 싶을 만큼 깔끔하고 인상적인 맛이었다. 산미를 선호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을 법한, 그런 맛.





그리고 문제의 오렌지 조각 케이크. 평소에 단것을 즐기지 않아 카페에서 케이크를 시키는 일은 거의 없지만, 빠이의 다른 카페에서 오렌지를 활용한 메뉴를 유독 많이 본 터라 호기심이 동했다.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하는 궁금증이었다.


첫입을 맛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건 무조건 또 먹어야 해." 오렌지의 상큼한 향이 폭발하듯 퍼지며 기분 좋은 달콤함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과일의 생생함은 살아있되, 조금의 인공적인 단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껏 먹어본 수많은 과일 케이크 중 단연 최고로 기억되는 맛이다.





그날 이후, 나는 몇 번이고 Chortip Cafe'의 문을 다시 두드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운이 없었던 걸까. 결국 그날의 첫 방문이 나의 마지막 방문이 되었고, 따뜻했던 두 사람과의 만남도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다시 빠이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가장 먼저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그날 그 자리에 앉아,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오렌지 조각 케이크를
주문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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