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만난 하루.
빠이의 토요마켓이 내게는 그랬다. 매일 밤 열리는 야시장과 달리, 토요일 오전에만 잠깐 열리는 이 시장의 존재를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금요일 저녁, 숙소 사장님께서 "내일 이런 마켓이 열리는데, 같이 가볼래요?"라며 아기자기한 포스터 한 장을 보내주지 않았다면 아마 영영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
다음 날 아침, 약속이라도 한 듯 하늘에서는 제법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이런 빗속에서도 시장이 제대로 열릴지 걱정했지만, 그건 온전히 나만의 기우였다.
마켓은 플리마켓에 가까운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허술해 보이는 천막 아래서 상인들은 비를 피해 음식을 만들었고, 몇몇은 아예 비를 맞으며 요리를 이어갔다. 그리고 여행자들은 우산도 없이 그 풍경 속으로 기꺼이 젖어 들며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위생 걱정부터 앞섰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맑은 공기 속으로 내리는 깨끗한 비 때문이었을까, 그 순간 나는 비에 젖은 것조차 기분 좋은 해방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켓은 단순한 장터가 아니었다. 길 전체가 거대한 축제의 장이었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경쾌한 재즈 라이브 연주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겼다. 평범한 카페테라스에 자리를 잡은 밴드는 빗소리를 배경 삼아 열정적으로 음악을 쏟아냈고, 그 앞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이 모여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저마다의 몸짓으로 춤을 추는 그들의 틈에서, 나 역시 낯선 여행자라는 사실을 잊은 채 어깨를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
흥겨운 음악에 목이 탈 때쯤, 길 한쪽에서 파는 100% 오렌지 주스가 눈에 들어왔다. 단돈 30밧, 우리 돈으로 1,200원 남짓. 빠이의 특산품인 오렌지를 그대로 짜낸 진한 원액이 한 모금에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정신이 번쩍 드는 상큼함. 아껴 마셔야지 다짐했지만, 결국 그 자리에서 단숨에 투명한 빈 병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 토요마켓 : 매주 토요일 09:30 - 15:00
활기찬 마켓의 축제 분위기는
시끄럽던 음악 소리가 잦아들자, 흙냄새와 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마켓의 소란스러움이 기분 좋은 활기로 바뀌는 곳, 그 공원은 또 다른 매력의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신발을 벗어 던진 아이들을 보았다. 아이들은 투박한 통나무 기둥에 매달린 그네를 신나게 타고, 흙과 잔디가 뒤섞인 축축한 땅 위를 맨발로 마음껏 뛰어다녔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게 폭신한 우레탄이 깔린 한국의 놀이터와는 정반대의 풍경. 그 모습에 문득 내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다.
흙바닥에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맨발로 뛰어놀았던 그때의 기억.
낯선 땅에서 마주한 과거의 내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졌다. 조금만 더 머물렀다면, 나 역시 그들처럼 신발을 벗고 젖은 흙의 촉감을 온전히 느꼈을 것이다.
오히려 빗속이었기에 더 완벽했던 하루였다. 맑은 날이었다면 이 모든 풍경이 이토록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을까.
빗속에서도 웃고, 춤추고, 맨발로 자유를 만끽하던 사람들. 그날의 빠이는 그 자체로 평화와 즐거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다음에 다시 빠이를 찾는다면,
비가 와도 좋으니, 토요일 아침의
이 길을 꼭 다시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