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토요 마켓, 낯선 식당에서 터져 나오는 박장대소의 이유.
Grandma's Cafe. 숙소 사장님의 오랜 단골 맛집이라는 말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가게는 마켓의 열기만큼이나 생생한 온기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실 주변에는 온갖 먹거리를 파는 노점과 식당이 즐비했다. 굳이 이곳에 발을 들인 이유는 단 하나. 동행한 숙소 사장님 부부의 '찐' 행복이 담긴 얼굴 때문이었다. "이 집, 내 친구가 하는 곳인데 진짜 맛있어요! 저도 자주 와요!" 복스러운 얼굴로 엄지를 치켜세우는 추천에 어찌 궁금증이 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겉보기엔 소박한 노천 테이블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안으로 들어서자 제법 많은 좌석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에어컨은 없었고 선풍기 몇 대가 전부였지만, 건물 구조 덕분인지 시원한 바람이 가게를 관통했다. 비가 내려 눅눅한 날씨였음에도 신기할 만큼 쾌적했다. 화려한 새것 대신 앤티크한 소품들이 가득한, 그야말로 '로컬' 그 자체인 공간이었다.
주문은 깡통에 담긴 종이 메뉴를 적어 내는 아날로그 방식이었지만, 감사하게도 무료 와이파이는 제공됐다. 테이블마다 다채로운 소스들이 놓여 있어 입맛에 맞게 곁들일 수 있었다.
본연의 맛을 즐기는 편이라 평소라면 지나쳤겠지만, 현란한 손기술로 소스를 배합하는 사장님 남편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손이 갔다. 역시 현지인은 달랐다. 밋밋했던 음식에 소스가 더해지자마자 맛의 차원이 달라지는 마법이 펼쳐졌다. 그날 이후, 나도 모르게 다른 식당에서도 소스를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메뉴판은 관광객과 현지인 모두를 아우르려는 듯 빼곡했다. 첫 방문이라 무엇을 골라야 할지 한참을 망설이던 차에, 사장님 부부가 추천해 주었다. 감사하게도 맛보라고 조금씩 덜어주기까지 했다.
하나는 걸쭉한 국물의 쌀국수(ND08)였고, 다른 하나는 베이컨 칠리 바질 볶음 쌀국수(SGD06)였다.
비 오는 날엔 역시 국물 요리가 진리지만, 다이어터의 양심상 볶음국수인 SGD06을 골랐다. 매운맛을 좋아하기도 하고, 맵기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맵게 해 주세요!" 자신 있게 외친 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한 접시가 내 앞에 놓였다.
하지만 첫입을 입에 넣는 순간, 예상치 못한 반전이 찾아왔다.
맛보기와는 차원이 다른 매운맛이었다. 혀끝이 아려오며 순식간에 감각이 마비되는 느낌.
"Oh my God!"을 외치며 어설픈 영어로 너무 맵다고 호소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당황하는 내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사장님 부부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그 해맑은 웃음에 나도 따라 웃으며 뜨겁고 매운 기운을 식혔다.
어째서 맛보기와 달랐을까.
아마 갓 조리된 뜨거운 열기가 매운 향을 한순간에 폭발시킨 모양이었다. 정신 차리고 다시 맛본 볶음국수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색색의 채소와, 바삭한 베이컨이 풍성한 식감을 만들었고, 면에는 간이 완벽하게 배어 있었다. 한국 돈으로 약 3,6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양까지 푸짐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
이름처럼 이곳은 한쪽에 카페 공간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벽면을 채운 커피 메뉴판과 초록 식물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이미 배가 너무 불러 음료를 즐기진 못했지만, 커피 한 잔을 위해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저 초록 식물들 사이에서
내어주는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온전히 누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