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일상의 기록
차가 없는 오늘. 걷기로 했다
가을볕이 깊어졌다. 모자 위로 내리는
따사로운 햇살과 등 뒤로 감싸 앉는 바람이
슬며시 나를 밀어준다.
생명력이 깃든 초록의 싹들이
흩어지는 바람에 흔들리다 멈추다를 반복하며
내게 말을 건넨다.
“걷기 좋은 날이야, 그렇지?
어때 요즘은? 이젠 외롭지 않지?
평온과 행복이 깃든 충만한 오후야.”
어느 때부터 그랬다.
아니 제주에 오고, 제주에 머물 때는
언제나 그랬다.
외로움에 잠식되지 않게
나의 감정이 땅 속 깊이 파고들지 않게
가벼이 나를 일으켜 세워줬다.
제주의 바다가 숲이 그리고 바람이.
밤이 긴 계절이 찾아와도
온전히 어둠의 고요를 진정으로 느끼게 했고,
선잠에 깬 새벽녁에도
뜨는 해를 기다리는 반가움을 알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