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유발의 정체는 엽산
정확히 5주 4일부터 뭔가가 시작되었다.
그 후로 일주일 동안 밥을 먹지 않아도 힘들고 밥을 먹어도 힘든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중에 가장 힘든 건 엽산을 먹는 일이었다.
엽산은 임신준비기부터 임신초기까지 태아에게 가장 필수적인 영양소라고 한다. 임신 전에는 남편이랑 매일 밤 자기 전에 엽산을 먹고 잤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다. 엽산에서 약간의 사료냄새(?)가 나는구나라고 느꼈을 뿐.
하지만 임신 후 점점 임신증상이 나타나면서 엽산이 가장 거북하게 느껴졌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물 자체를 마시는 것조차 거북스러운데 거기에 엽산까지 억지로 먹고 나면 위가 빵빵해졌다. 평소에는 금방 꺼졌을 위가 소화를 시키는데 두세 배의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태생 밥순이인 내가 며칠간 흰밥이 싫어지고 부드러운 면만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의도치 않게 소식좌가 되어 그런지 평소처럼 먹는 게 힘들었다. 원래 걸음도 빠르고 먹는 것도 빨라, 심지어 천천히 걷고 천천히 먹는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사람인 내가 먹는 속도가 더뎌지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으면 매일 1등으로 밥을 다 먹고 기다렸는데, 요즘엔 꼴등으로 식사를 마친다. (마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만 먹는다.)
특히 엽산을 먹고 나면 속이 너무나 울렁거리고 헛구역질이 나는 증상이 갈수록 뚜렷해졌다. 처음에는 난 밤에 입덧이 심한 편이구나. 그럼 딸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진짜일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뭔가 엽산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지면서 입덧유발의 원인이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말에 이틀 동안은 엽산을 안 먹어봤다. 피곤한 증상은 있지만 속이 울렁거리거나 구역감은 확실히 사라졌다. 그래 바로 엽산이 입덧을 유발하는 거였다!
5주 차가 그렇게 지나고 6주 차에 들어오면서 엽산을 점심에 먹어보기로 했다. 직장에서는 점심시간이 항상 같으니까 밥 먹고 바로 엽산을 먹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밤에 빈속에 먹는 것보단 낫겠지! 바뀐 시간으로 엽산 섭취 두 시간 후, 나는 사무실 화장실에서 헛구역질을 해댔다. 게다가 소변에서는 강한 엽산냄새가 났다.
엽산을 바꿔봐야겠다!
역시나 입덧유발의 정체는 엽산이였다. 나는 이 엽산을 하루빨리 치우고 다른 엽산으로 바꾸고 싶었다. 남편이 임신준비할 때 처음으로 같이 먹기 시작한 엽산으로 사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정말 신기하게 구역감이 올라오는 입덧증상이 사라졌다! 그래도 더딘소화와 속쓰림 증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새 엽산을 먹고 이틀 뒤에 평소 좋아하던 닭칼국수를 평소처럼 맛있게 먹고 더딘 소화와 속 쓰림을 참아내며 잠들었다.
구역감만 없어도 살만했다. 그래도 느려진 소화능력은 돌아오지 않았고 적잖이 불편했다. 평소보다 적게 먹었는데도 헛배 부르듯 배부른 느낌은 밥 먹은 뒤 4시간은 지속되었다. 배불러서 물 한 모금에도 과식하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는 배가 부르지 않은데, 내 신체와 뇌가 배부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몸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듯하고 과장해서 말하면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뭔가를 먹고나면 입이 너무 써서 속도 더 쓰린 듯 하다. 입이 쓰니 음식들도 다 맛이 없게 느껴지고 배가 아무리 고파도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지 않는다. 먹고 싶은거 생각하는 시간에 내 속은 점점 더 역동적으로 쓰리고 온몸에 힘이 빠진다.
엽산을 바꾸니 헛구역질은 없어졌지만, 이처럼 배고플 때 속 쓰리고 배불러도 속이 쓰리다. 아무튼 토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고 이것도 띠용이(태명ㅎ)가 잘 있다는 신호라 생각하며 초보임산부는 오늘도 하루를 버티고 있다. 내 입덧의 실체가 이것인가 관찰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냥 적당히 경험하고 빨리 끝나면 좋겠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