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 괴롭지만 행복한 거?
요즘 먹을 수 없는 건 없으나, 모든 걸 먹을 순 없는 상태이다.
매일매일 컨디션이 달라지고 컨디션에 따라 입맛도 영향을 받는 듯하다. 가만히 있어도 토할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신선한 야채에 더불어 이상하게 입맛을 돋울 수 있는 소스가 발린 샌드위치 종류가 먹고 싶은 날이 있었다. 다행히 사무실 주변에 서브웨이가 있었고 그날부터 점심식사는 2-3일 간격으로 서브웨이가 되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수액처럼 달고 다녔던 나는 입안에서 쓴맛이 느껴진 이후로 커피가 너무 쓰게만 느껴졌고, 일부러 안 마시려고 한 것도 있지만 이러한 이유로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샌드위치랑은 커피가 잘 어울리니 오랜만에 커피와 세트로 주문했다. 그런데 커피는 한 모금을 마시는 것조차 버거웠다. 평소에 커피 외에 다른 액체(?)는 잘 마시지 않는데, 내 사랑 커피조차 마시는 게 힘들어 지다니. 예전 커피를 먹지 못하는 삶에 대해 동정심을 느꼈던 나는 사라졌다. 15cm 샌드위치 하나 먹는 것도 버거웠고, 다 못 마시고 테이크아웃으로 가져온 커피는 아까우니 몇 모금씩 억지로 마시려고 했다. 그런데 커피를 토했다.
주변 임신 경험담을 들을 때 무서운 건 "나는 그때 맨날 토했는데^^"라고 웃으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지난 일이니 웃으며 얘기하는 거겠지만, 20대 초반 때 술을 왕창 먹고 토한 기억 외에, 토한 일이 없는 나에게는 그것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어둠의 기운처럼 공포감이 느껴졌다. 술 먹고 토했던 기억이 괴로워 그 경험을 몇 번 하고 술을 멀리했는데, 맨 정신에 토하는 건 얼마나 괴로울까 두려웠다. 커피를 토한 그날 저녁, 나는 바로 산부인과에 가서 입덧약을 처방받았다. 앞으로 매일 토하는 날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입덧약은 매일 밤 취침 전에 두 알을 복용한다. 나는 약 효과가 좋은 편이고 토덧으로 괴롭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사와 상의 후 매일 한 알을 복용하기로 결정했다. 입덧약의 효과는 6시간 이후 나타나므로 입덧의 특성상 가장 괴로운 아침 시간을 참아내기 위한 약으로 보인다. 그렇다. 아침의 입덧은 매우 괴로워 영어로도 morining sickness이다.
입덧약 복용 후에는 매일 아침 당장 뭐라도 입에 넣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그 아침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이어서 출근하는 버스에서의 멀미도 사라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그렇게 약 2주를 입덧약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임신 10주 차가 다가오면서 입덧이 더 심해진 건지 다시 헛구역질이 올라왔고 저녁에는 토를 하기도 했다. 약을 두 알로 늘려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으나, 아직 한 알로도 어느 정도 버티는 게 가능하기에 여전히 한 알을 복용 중이다. 입덧약이라도 세상에 존재하니 다행이지, 몇 년 전만 해도 입덧이든 토덧이든 곧이곧대로 느끼며 하루하루를 버텼을 임산부들은 정말 대단한 존재라고 느꼈다. 엄마가 되는 길은 시작부터 험란한 것이었다. 우리 엄마도 나를 가졌을 때 거의 막달까지 입덧을 했다고 했는데.. 말잇못.. "먹고 그냥 토하면 돼~" 엄마가 나에게 말한 입덧을 견디는 방법이다. 사실 입덧에는 입덧약 외엔 방법이 없다. 모두가 시간이 지나야 된다고 말한다.
그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임신이 단지 힘들기만 한 시기를 지나 컨디션이 돌아오고 조금씩 태동도 느끼는 순간이 오면 신비로운 임신기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 10주 차가 다가오는 지금은 아이를 가졌다는 기쁨보다는 아랫배에는 느껴지는 게 없고, 조금만 움직이여도 피곤하며 하루종일 잠이 쏟아지는, 하루하루를 버티지만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 같아 아쉬운 순간들이 더 많다. 먹고 싶은 게 생겨서 먹었을 때, 먹는 기쁨 보다 두세 숟가락에 금방 속이 안 좋아지고 더 못 먹는 상태. 그러나 또 배는 고파서 꾸역꾸역 먹으려고 하지만 먹을수록 컨디션이 나빠지는 이 상태가 지속된다. 사무실 안에서 나는 사소한 냄새도 코를 찌르고 혼자 유별나게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그나마 버티는 이 불편한 기간만 지난다면 더 기쁘게 아이를 맞이할 수 있고 임신을 실감하며 태교에 신경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입덧은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면서도 괴로운 건 어쩔 수 없다. 심지어 남편도 내가 하루하루 더 괴로워할수록 제대로 임신한 게 실감이 난다면서 마음이 기쁘다고 했다. 아.. 입덧은 괴롭지만 행복한 거구나^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