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 방관형 빌런, 조용하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더 파괴력을 가진다
조직에는 눈에 띄는 문제 인물보다 훨씬 더 다루기 어려운 존재가 있다. 소리를 내지 않고, 갈등을 만들지 않으며, 겉으로는 성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직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들은 반대하지도 않고, 주도하지도 않는다. 그저 한 발짝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시키는 일만 한다”는 태도로 자신을 보호한다. 바로 소극적 방관형 빌런이다.
이 빌런의 가장 흔한 언어는 단순하다.
이 말은 겸손하거나 협조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의 관점에서 보면, 이 문장은 명확한 선 긋기이다. 자신의 역할을 최소 단위로 축소하고, 그 밖의 모든 책임과 고민에서 스스로를 배제하겠다는 선언이다. 문제는 조직의 성과와 변화는 언제나 ‘시키지 않은 일’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변화는 지시가 아니라 참여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 유형은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조직의 속도를 떨어뜨린다.
한 중견기업의 신사업 TF팀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팀장은 새로운 서비스 론칭을 앞두고 여러 차례 회의를 열었다. 아이디어를 모으고, 리스크를 점검하고, 실행 전략을 정교화하는 과정이었다. 대부분의 팀원들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지만, 한 팀원은 늘 조용했다. 회의 중 질문을 던져도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팀장은 그를 ‘차분한 실무자’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실행 단계에서 발생했다. 일정이 지연되었고, 예상하지 못한 고객 반응이 나타났을 때, 그 팀원은 말했다.
“그 부분은 저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회의 때 그런 방향으로 갈 줄은 몰랐어요.”
그러나 그 회의에 그는 분명히 참석해 있었다. 문제는 참석이 아니라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의견을 내지 않았고, 우려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방향성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지 않았다. 결국 팀장은 모든 조율과 보완 작업을 다시 떠안아야 했다. 팀원 한 명의 침묵은 프로젝트의 속도를 늦췄고, 리더의 에너지를 소모시켰다. 이 팀원은 규정된 업무는 수행했지만, 팀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았다. 이것이 소극적 방관형 빌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빌런의 가장 큰 문제는 겉으로는 성실해 보인다는 점이다. 정해진 업무는 수행하고, 마감도 지킨다. 그래서 리더는 처음에는 문제를 인식하기 어렵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팀은 느껴진다.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일이 ‘확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일을 막지는 않지만, 앞으로 밀지도 않는다.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상태는 바로 이 정체 상태이다.
또 다른 사례는 팀장급 리더가 직접 겪은 경험이다. 조직 개편 이후, 팀 내 협업 문화를 강화하기 위해 자발적 태스크포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공식 지시는 아니었지만, 팀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시도였다. 몇몇 팀원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나 일부는 늘 같은 태도를 보였다.
“이건 제 업무 범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정식으로 지시가 내려오면 하겠습니다.”
그들은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태도는 리더의 추진력을 갉아먹었다. 팀장은 매번 참여를 독려해야 했고, 설명해야 했으며, 의미를 설득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프로젝트는 점점 느려졌고, 결국 리더는 중요한 판단을 혼자 떠안게 되었다. 협업을 기대했던 구조는 형식만 남았고, 팀장은 ‘모두를 끌고 가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혼자 끌고 가는 사람’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리더가 잃은 것은 단순한 시간만이 아니다. 리더는 성장 기회를 잃었다. 원래라면 팀의 사고 수준을 끌어올리고, 역할을 위임하며, 더 큰 전략을 고민해야 했지만, 현실에서는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재촉과 관리에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소극적 방관형 빌런은 이렇게 리더를 소모시키며, 조직의 리더십 파이프라인을 약화시킨다.
이 유형이 조직에 미치는 또 하나의 치명적인 영향은 협력 구조의 붕괴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팀원은 점점 지치게 된다. “왜 나만 더 생각하고, 더 움직여야 하지?”라는 감정이 쌓인다. 반면 방관자는 아무 말 없이 안전지대에 머문다. 이 불균형은 결국 팀 내 신뢰를 무너뜨린다.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값이어야 하지만, 방관이 허용되는 순간 협력은 ‘특별한 노력’이 되어버린다.
소극적 방관형 빌런을 다루기 위한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소극적 결정은 중립이 아니다. 참여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조직의 속도를 늦추는 명확한 행동이다. 이 사실을 리더와 구성원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의견을 내지 않으면 책임도 없다라는 인식이 깨지지 않는 한, 방관은 계속된다. 참여의 여부가 곧 책임의 범위라는 메시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조직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조직은 멈춘다. 소극적 방관형 빌런은 조직을 망가뜨리는 대신, 조직을 정체시키는 사람들이다. 변화는 반대보다 무관심에 의해 더 쉽게 실패한다. 그렇기에 이 빌런을 인식하고, 침묵을 행동으로 규정하는 것은 조직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조직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총합이다. 참여하지 않는 선택을 반복하는 사람에게는, 그 선택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조직은 다시 움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