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프리라이더형 빌런이 만들어 내는 무책임 현상
조직 안에서 보이지 않게 누적되는 가장 큰 비용 중 하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사람’이 만든다. 이들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전략을 구사한다. 그중에서도 조직을 가장 장기적으로 잠식하는 유형이 바로 성과 프리라이더형 빌런이다. 이들은 과거의 경험과 경력을 방패처럼 내세워 현재의 책임을 피해가며, 성과는 가져가되 기여는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조직의 생산성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는다.
성과 프리라이더형 빌런의 대표적인 문장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제가 예전에 다 해봤어요. 문제가 생기면 그때 도와주세요.”
이 한 문장은 겉으로는 노하우를 가진 믿음직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위험한 의도가 숨어 있다. 과거의 경험을 ‘면책 사유’로 삼고, 현재의 업무에서는 한 발 뒤로 물러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나는 몸을 던져 관여하지 않을 거야”라는 신호이며, 동시에 “일이 잘되면 내 경험 덕분이고, 일이 안 되면 너희가 잘못한 거야”라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결국 경험은 무기가 아니라 도피처가 되고, 과거는 현재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명분이 된다.
이 빌런의 문제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일의 영향력’은 놓지 않으려 한다는 데 있다. 과거의 성과와 경력을 근거로 결정권이나 발언권은 유지하고자 하지만, 실제 일의 난이도가 높은 부분, 조율이 필요한 부분, 책임 소재가 불명확한 부분에서는 자연스럽게 비켜 선다. 그들은 일의 핵심에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총괄’이라는 명분으로 경계 밖에 서서 조언이라는 이름의 피드백만 던지고, 실제 기획·실행·조정의 무거운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그러면서 결과만 챙긴다. 조직에서는 이를 ‘성과 무임승차’라고 부른다. 기여는 없지만 보상은 가져가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조직의 신뢰는 가장 빠르게 무너진다.
성과 프리라이더형 빌런의 가장 큰 특징은 리스크는 회피하고, 성과는 차지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는 “이건 내가 다 알아”라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듯 보이지만, 막상 일이 복잡해지고 책임이 필요한 순간이 되면 감쪽같이 자리에서 사라진다. 반대로 일이 잘되면 자신이 ‘방향을 잡아줬다’는 이유로 성과를 챙긴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현재의 일에 기여하지 않고, 과거의 명함으로 미래의 보상을 가져가려는 사람들이다. 이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조직의 자원을 편취하는 교묘한 방식이다.
이 빌런이 나타나는 순간 가장 먼저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리더이다. 리더는 이들을 직접적으로 제압하기 어렵다. 과거의 경험이 있기에 ‘선배적 위치’에 있고, 내부 정치적으로도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일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더는 이들과의 관계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회의에서 강하게 피드백을 하면 “내가 예전에 다 해본 사람인데, 왜 나를 무시하느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반대로 말을 아끼면 프리라이더는 더 과감하게 책임을 회피한다. 결국 리더는 이들을 관리하기 위한 눈치 싸움에 에너지를 소모하며, 실제로 일의 무게는 성실하게 일하는 구성원들에게 전가된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팀의 공정성은 조용히 무너진다. 늘 일하는 사람만 더 일을 하게 되고, 프리라이더는 점점 더 조직의 허점을 익숙하게 활용한다. 팀원들은 어느 순간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어차피 일은 우리가 한다”라는 체념은 조직의 가장 위험한 신호이다. 구성원들은 성과보다 생존을 우선순위로 두기 시작하고, 창의성은 사라지며, 출중한 인재일수록 더 먼저 조직을 떠난다. 결국 조직은 프리라이더를 보호하면서 가장 필요한 사람을 잃는 역설적 상황에 빠진다.
성과 프리라이더형 빌런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R&R(Role & Responsibility)의 명확한 분리이다. 역할과 책임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누가 어떤 기여를 했는지 투명하게 드러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책임이 모호할수록 프리라이더는 더 기민하게 움직인다. 반대로 책임이 선명해지면, 프리라이더는 숨을 자리가 없다. 실제로 많은 조직에서 프리라이더가 활개 치는 이유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모호한 시스템’ 때문이다. 시스템이 흐릿하면 책임은 흐르고, 흐르는 책임은 항상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닌 ‘하는 사람’에게로 향한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공헌 기반 성과평가 시스템이다. 성과는 결과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 성과창출 프로세스에 대한 정량·정성적 기여도를 함께 반영하지 않으면, 프리라이더는 언제나 가장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팀의 성공을 자기 공으로 돌리는 것은 쉽지만, 팀의 실패를 자기 책임으로 돌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성과평가는 ‘결과 중심’이 아니라 ‘공헌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조직은 성실한 사람을 보호하고, 프리라이더를 감지한 뒤 적절히 조치할 수 있다.
성과 프리라이더형 빌런은 조직의 성장 가능성을 가장 크게 갉아먹는 존재이다. 이들은 겉으로는 온화하고 협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회피하며 공동의 자원을 편취한다.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일하지 않음’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프리라이더가 만든 허무감, 불공정, 에너지 소모는 조직의 문화를 약화시키고, 결국 조직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조직은 과거의 경험보다 현재의 기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경험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경험이 책임을 면제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성과는 나눌 수 있지만, 책임은 나눌 수 없다.
조직은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합’이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공평하게 싸우는 곳이다.
성과 프리라이더형 빌런을 명확히 정의하고, 그들의 패턴을 조직 시스템으로 차단하는 일은 불편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조직이 성장하려면 성과를 가져가는 사람보다 ‘기여하는 사람’을 중심에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공정한 조직이 만들어지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