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원래 내 일이에요.” 협력을 거절하는 사람

정체성 독점형 빌런, 공동의 성과가 자신만의 독점 성과가 되는 순

by 파사리즘

조직 안에는 자신의 역할에 강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는 조직에 반드시 필요한 태도이다. 문제는 그 자부심이 어느 순간부터 책임이 아니라 영역 독점으로 변질될 때 발생한다. 자신의 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방어하기 위해 타인의 접근을 차단하는 순간, 협업은 멈추고 조직은 보이지 않는 벽에 갇힌다.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유형이 정체성 독점형 빌런이다.

이 빌런의 상징적인 문장은 명확하다.


“이건 원래 내 일이에요.”


이 한마디는 역할을 설명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협업의 문을 닫는 선언이다. 도움도, 질문도, 개선도 거절하는 방패이며, 동시에 자신의 영역에 대한 침범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경계선이다. 이들은 자신의 업무를 ‘공유 가능한 자산’으로 보지 않고, ‘지켜야 할 영토’로 인식한다. 그 결과 조직은 점점 분절되고, 지식은 개인에게 고립된다.


정체성 독점형 빌런의 핵심 특징은 경험을 자산으로 삼지 않고 권력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해 왔고, 실제로 그 경험은 조직에 큰 가치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경험이 전수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질문을 하면 “그건 해보면 안다”로 답하고, 공유를 요청하면 “내가 알아서 할게”로 선을 긋는다. 결국 지식은 문서로 남지 않고, 시스템으로 정리되지 않으며, 특정 개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게 된다. 지식이 개인에게 묶이는 순간, 조직은 그 사람에게 종속된다.


한 제조기업의 핵심 공정 담당자 A의 이야기이다. 그는 해당 공정을 10년 이상 담당해 온 베테랑이었다. 공정의 문제를 누구보다 빨리 파악했고, 실제로 여러 차례 위기를 막아낸 공로도 있었다. 문제는 조직이 성장하며 후임을 육성하고, 업무를 표준화하려는 시점에서 발생했다. 팀장이 업무 매뉴얼 정리와 후배 교육을 요청했을 때, A는 이렇게 말했다.


“이 공정은 말로 설명이 안 됩니다. 제가 직접 봐야 압니다.”


그 이후로도 비슷한 요청은 반복되었지만, 그는 늘 혼자 처리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타인이 개입하려 하면 “괜히 손대서 문제 생긴다”며 차단했다. 결과적으로 공정은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지만, 어느 날 A가 장기 휴가를 가자 문제가 발생했다. 누구도 공정의 핵심 포인트를 정확히 알지 못했고, 작은 오류가 큰 손실로 이어졌다. 조직은 그제야 깨달았다. 안정적으로 보였던 구조가 사실은 한 사람의 정체성에 과도하게 의존한 위험한 구조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A는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의 전문성을 보호하려는 태도가 결과적으로 조직의 리스크를 키웠다. 정체성 독점형 빌런은 이렇게 ‘유능함’이라는 가면을 쓰고 조직의 취약점을 만든다.


또 다른 사례는 서비스 조직의 팀장 B가 겪은 경험이다. 팀에는 특정 업무를 “원래부터 해오던” 직원이 있었다. 그는 해당 영역의 모든 의사결정에 관여했고, 다른 팀원이 참여하려 하면 은근히 선을 그었다.


“그건 제가 담당하는 파트입니다.”
“제가 제일 잘 아니까 제가 할게요.”


처음에는 효율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팀장은 권한 위임이 불가능해졌다. 그 직원에게 일을 맡기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았고, 다른 팀원들은 자연스럽게 그 영역에서 한 발 물러났다. 협업은 사라지고, 팀 내에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생겼다. 결국 팀장은 모든 리더십 판단을 그 직원의 상태와 일정에 맞춰야 했다. 팀이 아니라 개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조직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팀장이 잃은 것은 단순한 통제권이 아니다. 그는 조직을 설계할 기회를 잃었다. 역할을 나누고, 인재를 키우고, 구조를 확장해야 할 리더의 역할이 특정 개인의 정체성에 막혀 버렸다. 정체성 독점형 빌런은 이렇게 리더십을 무력화하고, 조직을 정체 상태에 머물게 만든다.

정체성 독점형 빌런이 조직에 미치는 가장 치명적인 영향은 지식의 사일로(silo)화이다. 지식이 개인에게 고립되면 협업은 불가능해지고, 조직은 확장성을 잃는다. 새로운 인재가 들어와도 배우기 어렵고, 리더는 언제나 특정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안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생존력을 크게 떨어뜨린다.

이 빌런을 다루기 위한 핵심 전략은 개인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바로 역할 교차(Co-working) 제도의 도입이다. 업무를 특정 개인의 고유 영역으로 고정시키지 않고, 두 명 이상이 함께 경험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식은 자연스럽게 공유되고, 개인의 전문성은 조직의 자산으로 전환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잘하느냐”가 아니라, “누구도 빠지면 안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정체성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독점되어서는 안 된다.
전문성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조직은 개인의 정체성이 아니라 공유된 지식 위에서 성장한다.

정체성 독점형 빌런을 인식하고, 지식의 문을 열게 만드는 구조를 설계하지 않는다면, 조직은 유능한 개인 한 명 때문에 오히려 더 약해질 수 있다. 협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그리고 그 협업의 출발점은, “이건 내 일이다”라는 말을 “이건 함께 할 일이다”로 바꾸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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