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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Oct 04. 2022

인간관계에 관한 단상

사실상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

저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무심한 편입니다. 그런 거 같아요. 제가 무언가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건 순전히 노력에 의한 거에요.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좋아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으니까요. 무심하지만 바라는 것도 많고(좀 모순적이긴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이 많습니다. 그 누구의 진심도 믿지 않지만 그건 부정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던 간에 좋아하면 신경쓰지 않는다는 의미죠. 누군가가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가 항상 구체적이지 않은 것처럼, 좋아하는 이유 또한 그렇습니다. 카페에서 나가면서 직원분에게 밝게 인사하는 모습이라던지. 울면서 말하는 혼란스러운 저의 언어에도 다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이라던지. 그런 것들이 그 사람을 좋아하게 만드는 거 같아요.


그런 저는 힘들 때면 대부분의 상황에서 혼자 묻어냅니다. 누군가에게 힘든 일을 말하면 힘든 사람이 두 사람이 되는 걸까요. 솔직히 무섭습니다. 그래서 정말 힘들 때는 말하지 않아요. 그건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는 일이고, 보통 그런 일이 있을 때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저의 태도밖에 없으니까요. 기대고 의지한다는 것이 나약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럴 대상이 있다면 참 좋겠지만, 나를 제외한 타인은 때로 남의 불행을 쉽게 평가하려고 하잖아요. 저는 평가가 무섭습니다. 능력에 대한 평가도 가끔은 벅찬데, 저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오죽할까요. 쉽게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혼자 묻어내기를 결정했나봐요.


사랑하던 사람에게 제가 처한 모든 상황과 그에 파생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의지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썩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그 사람에게는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을 들었고 아마 그 때문에 다시는 전적으로 누군가를 의지할 일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당연히 아니겠죠. 그냥 그렇게 다정하던 사람마저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슬플 뿐입니다. 제가 온전히 기댈 수 있는 건 저밖에 없어요. 저에게 제일 상처를 주는 것도 저지만, 평가하지 않는 것도 저뿐입니다. 저라는 기둥에 의지하는 것이 제가 찾은 방법입니다. 정확한 답은 아니겠죠. 항상 그랬던 것처럼 정확함이란 없고, 최선만이 있을 뿐이에요.


"날 온전히 이해해줄 사람을 언젠간 만날 수 있을거야",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항상 모든 일에는 기적을 배제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에서는 현재 저의 상황을 함축하기라도 한 것 같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아래는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진짜 추천해요


우리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대단한 일을 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일을 견딥니다. 그 대단한 일을 하기 위해, 혹은 그 일을 하기를 갈망하며 이 대단하지 않은 일을 합니다. 기대가 일을 감당하게 한다고 합니다. 죄수는 탈옥을 해서 감옥 밖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감옥을 잘 개조해서 그 안에서 살고 싶은 욕망 또한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애시당초 대단한 일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대단한 일은 바라기 때문에 비로소 존재합니다. 진짜 하게 되면 또 마음이 달라지기 마련이더라구요. 제가 해왔던 일도, 하는 일도, 하게 될 일 모두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그렇게 생각하고 싶을 수도 있구요). 삶이라는 게 어떻게 좋고 나쁨이 딱 떨어지겠어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으니. 좋은 일을 마주했을 때는 최선을 다해서 웃고, 나쁜 일을 마주했을 때는 최선을 다해서 슬퍼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작아지는 스스로를 견딜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어색해지는 스스로가 미워서 어쩔 줄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계속 생각하면서, 생각하면서 살아나가는 것이 중요한 거 같습니다. 관성은 법칙이고, 습관이 될 수 있으니까요.


모든 관계는 어렵습니다. 아마 평생에 걸쳐 경험해가며 그때그때 무언가를 새롭게 배울 거 같아요. 가끔은 이미 지나간 관계를 추억합니다. 만약이라는 단어는 저를 웃게도, 울게도 만드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사랑하던 그 사람이 나를 조금 더 이해해줬다면, 내가 그 사람을 덜 부담스럽게 했었다면. 이미 지나간 일이고, 가능성으로만 남은 일인것을. 그걸 계속 붙잡고 있는 걸 남들은 의미가 없다고 할 지라도 저는 그 시간들이 꽤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스스로 깨닫는 과정을 겪는 것이 참 중요한 거 같아요.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선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을 따른다고 가정해봅니다. 보통 넘치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따라주잖아요. 인간관계도 그런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마음)를 고려해야 해요. 내가 너무 좋다고 마음을 쏟아부으면 상대는 넘치는 양에 당황할 것입니다. 때로 진심은 칼날이, 애정이라는 이름의 사랑은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양보다는 질인 걸까요.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한 저의 사랑은 조금 깊습니다. 표현은 적당히? 무튼 나의 선을 알고, 상대의 선을 지켜주어야 오래갈 수 있는 거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를 온전히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재지 않고. 따지지 않고. 그렇게. 힘든 일이 영원히 없기를 바랄 수는 없겠죠. 아마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힘들어 질 수도 있고, 전보다는 나아질 수도 있을 거에요. 예전에는 소원을 빌어보라고 하면 막연하게 힘들지 않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참 무책임한 말이었어요. 이제는 언제고 힘든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받아들입니다. 대신에 이겨내거나, 견뎌낼 수 있는 힘을 달라고 빌어봅니다. 왜 내 인생만 이럴까 하는 생각을 가득 안고 살던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집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었어요. 아무래도 어렸으니까요. 그냥 누구의 인생도 그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 안에 지옥을 품고 사는 것만큼 힘든 것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평소에 억지로라도 자주 웃으려고 노력합니다. 혹여나 무심한 본성이 드러나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끔 더 다정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나의 다정이 혹여나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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