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 <내 집짓기>
집을 짓기로 결정을 하긴 했는데 나는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무심코 유튜브를 찾아보니 직접 본인 손으로 집을 지은 사람들이 꽤나 있는 게 아닌가? 그럼 나도 내가 직접 지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땅이 본인 땅 일 때나 할 수 있는 거다. 나는 땅을 빌린 상황이니 시간을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손해였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한 땀 한 땀 짓기에는 시간도 돈도 지낼 곳도 마땅치 않았다. 하루빨리 공사를 시작해서 곰팡이 집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그러려면 내가 원하는 집을 지어 줄 동료를 찾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해적왕 루피처럼 찾는 거다. 동료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건축가를 선정하고 건축가가 설계한 도면을 시공하는 시공사를 따로 선택할 수 있고 건축가와 시공사가 함께 있는 곳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일단은 시공사보다는 건축가를 중점으로 미팅을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발리에 빌라를 짓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만큼 선택할 수 있는 건축사는 다양했다. 경험 많은 인도네시아인 건축가, 요즘 유행하는 지중해식 별장 스타일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서양인 건축가 그리고 물론 한국인 건축가도 있었다.
여러 건축가를 만나고 내가 원하는 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좀처럼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당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누수라던가 곰팡이 문제에 대해 그 누구도 납득할 만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건축에 대해 잘 모르니, 내가 원하는 방향이 있더라도 그것이 현지 조건이나 구조적으로 맞지 않는다면 이에 대해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줄 전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면 '그것도 되고 저것도 돼. 네가 원하는 건 다 돼' 라며 단지 이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노골적인 영업을 할 뿐이었다.
내가 발리에 살면서 무언가를 할 때 가장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바로 이거다. 건축뿐만 아니라 다른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설명하면 이것이 개소리던 아니던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올바른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없다. 그냥 '알겠다, 된다'라고 말할 뿐이다.
문제는 그렇게 일을 진행했을 때, 하자가 생겼을 경우다. 그 누구도 이 일에 책임을 지는 법이 없다. '나는 네가 하고 싶다는 대로 해 줬는데 뭐가 문제지?'라고 말하면 내 속만 답답할 뿐이다. 나중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집을 지어놓고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줬잖아’라고 건축가가 말한다면 거품을 물고 쓰러질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우스개 소리로 집을 짓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나 보다.
이럴 거면 그냥 내가 짓지!
전문가는 왜 고용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