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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Oct 19. 2024

23. 너, 내 동료가 돼라!

발리에 <내 집짓기>

몇몇의 건축가와 미팅을 갖다가 고민 끝에 한국인 건축가를 만나 미팅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만난 다른 건축가들과 다르게 이 분을 만나려면 시간 약속을 잡고 그에 따른 상담 비용을 지불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이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비용을 지불하고 상담받는 만큼, 나도 조금 더 깊은 내용을 물어볼 수 있을뿐더러 이 사람도 돈을 받고 상담을 하니, 그 시간만큼은 나에게 최선을 다해 줄 것 같았다. 게다가 본인의 시간과 노력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내 시간 역시 귀하게 생각해 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외국에서 지내면서 귀가 빠지도록 들었던 말은 '외국에서 만나는 한국인 조심해'라는 말이었고 한국인에게 뒤통수 맞은 적이 있는 나는 온전히 편안한 마음으로 상담을 받을 수는 없었다.




잔뜩 경계심을 품고 상담을 시작했다. 일단 한국말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막 인도네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던 때라 일상 대화는 가능했지만 이런 류의 상담을 인니어로 하기에는 아직 실력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구사하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상대방 역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면,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외국인이 제2외국어인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을 때 당연히 서로 잘 못 이해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모국어로 차근차근 그동안 겪었던 발리의 집들에 대해 하소연했다. 그리고 내가 집을 짓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 감사하게도 이 분은 한국인이어서 느끼는 불편한 부분에 대해 많은 공감을 해 주셨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서양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방충망의 필요성 같은 세세한 부분들이었다.

이 분을 만나기 전, 땅을 찾는 내내 나는 어떤 집을 지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발리에서 살면서 이런저런 문제들을 토로하다 보면 누군가는 '원래 동남아는 그래, 발리는 다 그래' '다들 어느 정도 불편함은 감수하고 살아'라고들 했지만 나는 이왕에 이곳에 살 거라면 당연한 것들을 조금 더 당연하게 누리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그렇듯 이사를 하거나 직장을 옮길 때 더 잘 살기 위해, 더 좋은 환경을 누리기 위해 옮기지 않는가?

아마 한국인들 중에서는 지금까지 운이 좋았거나, 자금이 넉넉해 최고급 빌라에 살았거나, 좋은 호텔방을 전전했다거나 혹은 잠깐 서너 개월 정도 발리에 머물렀던 사람들이라면 내가 느꼈던 불편함을 전혀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분과 대화를 나눠보니 이미 발리에 거주하신 지 꽤 오래되셨고 나와 같은 어려움을 직접 겪어본 분이셨다. 이렇게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과의 상담 덕분에 그동안의 고생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런 고충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집을 짓는 사람이라면 내가 원하는 집을 지어 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너, 내 동료가 돼라! 아니, 되어 주세요'

(앞으로 이 건축가 분을 '조로'라고 명칭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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