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 <내 집짓기>
그 사이 땅 계약이 마무리되고 나는 이전에 미팅을 한 한국인 건축가, 조로님에게 건축을 의뢰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조로님은 설계뿐만 아니라 실제 시공을 할 수 있는 인부들이 있어 따로 시공사를 알아볼 필요도, 타 시공사와 미팅을 진행할 필요도 없었다. 사실 설계사와 시공사가 일치하면 가장 이상적이긴 하다. 건축가가 아무리 설계를 잘했어도 시공사 측에서 설계도면을 보는 능력이 떨어지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결과물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설계도면을 잘 못 볼 수 있나?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여긴 인도네시아다. 설계 도면 하나 없이 혹은 완성된 3D 조감도 만으로 지어지는 집이 대다수다. 어쨌든 한 건축가와 몇 번이나 이미 합을 맞춰 본 인부들과 집을 짓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이제는 진짜 본격적으로 설계가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내가 원하는 집을 너무 나도 명확하게 잘 알고 있었다. 인테리어도 중요하지만 내가 짓고 싶은 집은 기본에 충실한 집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겪었던 집들을 생각하며 불편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집을 상상했다.
기초가 튼튼하고 멋 부리지 않은 각진 집,
꾸밈과 과장이 없는 실용적인 집,
유지 보수가 쉽고 유지 보수에 큰돈이 들지 않는 집 그리고 편안한 집을 짓는 게 나의 목표였다.
보이는 것은 살면서 하나씩 꾸며가면 된다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예민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물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누수, 습기, 비, 모든 ‘물’은 건물을 금세 망가트린다. 이 부분만 잘해도 90%는 성공한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인 건 조로님 역시 이런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집을 지으시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보는 발리의 빌라는 이국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색다른 휴양지이지만, 거주자의 마음으로 이런 빌라들을 바라보면 특별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그저 평범하고 수수한 공간이 절실했다. 발리에 빌라들을 보면 이제는 감탄보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먼저 든다.
평지붕 집은 루프탑 사용이 가능하며 모던하고 세련돼 보인다. 하지만 천장에 물이 고이기 쉽기 때문에 옥상 방수 작업을 꼼꼼하게, 그리고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 게다가 365일 햇볕이 강한 발리에서 직사광선을 온전히 다 받는 평지붕 집은 실내 온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결국 평지붕은 보기에는 좋지만 유지보수비가 많이 들고 덤으로 에어컨을 가동하는 전기 비용 역시 많이 드는 집이다.
(아, 그리고 발리에서 평지붕은 불법이다. 불법이여도 법을 무시하고 짓거나 꼼수를 써서 짓는 경우가 많다).
통창 역시 보기에는 좋지만 하루만 살아봐도 느낄 수 있다. 통창으로부터 오는 어마어마한 햇빛은 집안을 금세 찜통으로 만든다. 저 정도 통창이면 에어컨을 가동해도 한계가 있을 거다. 그리고 나 혼자 사는 땅이 아니고서야 프라이버시 이슈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커튼으로 가릴 거라면 도대체 통창은 왜 했는데?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떠오른다.
발리는 전형적인 열대 몬순 기후를 가지고 있다. 일 년 중 11월에서 3월, 약 다섯 달이 우기이고 나머지는 햇빛이 뜨거운 건기다. 이런 환경적인 요인을 무시하고 집을 짓는 다면 발리에서의 하루하루가 악몽이 될 수 있다. 확실한 건 렌트용으로 멋 낸 빌라와 거주용 빌라는 접근부터 달라야 한다는 거다.
아 그런데 비가 오면 저 창문 청소는 누가 다 하고, 저 야외 쿠션은 누가 다 치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