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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Oct 20. 2024

26. 인테리어가 체질

발리에 <내 집짓기>

집 구조에 대한 브리핑을 끝내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아직 전체 설계도면은 나오지 않았지만 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평면도가 나왔다. 나는 평면도를 확인하고 구조적으로 수정할 부분이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더불어 평면도를 바탕으로 인테리어 콘셉트를 생각하고 다시 한번 조로님과 미팅을 했다.

이번 프로젝트 예산에는 건축뿐만 아니라 가구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 인테리어는 내가 직접 하는 셈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따로 고용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페인트 색, 타일, 바닥재, 조명, 창문 프레임 등 이 모든 디테일을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잘 알고 있었다. 인테리어 적인 부분도 이미 다 생각해 둔 바가 있어 다시 한번 자료를 꾸려 조로님께 브리핑해 드렸다.  

1층과 2층의 분위기를 상반되게 하고 싶었다.

내가 인테리어 콘셉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일층과 이층의 구분이었다. 분위기의 차별을 두기 위해 일층은 밝고 깨끗하게, 카페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고 이층은 반대로  거칠고 투박하게, 벽은 어두운 색으로 칠하고 거친 무늬의 타일을 사용해 질감이 느껴지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층의 아이디어는 뉴욕의 아파트를 참고했는데 이런 분위기가 나와 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국룰처럼 여겨지는 하얀 벽 대신 개성이 담긴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나중에 다양한 무드등을 켜 놓으면 더 멋스러워질 것 같았다.

나무로 된 창문틀을 하고 싶었는데 나무는 뒤틀림 이슈가 있고 방충망을 할 수 있는 창틀은 스타일은 이곳에 하나밖에 없다고 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방충망을 포기할 수 없어서 깔끔한 화이트 창문틀을 하기로 했다.

부엌장은 해보고 싶은 게 참 많았는데 내가 원하는 색, 스타일이 그대로 나와준다는 보장이 없어 가장 안전한 쪽을 택했다. (발리에서는 무조건 좋은 퀄리티가 보장된 쪽으로 고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계단 밑 장은 부엌 장과 동일한 자제를 사용해 통일성을 주기로 했다.

부엌에는 레일 조명, 아일랜드 식탁에는 팬던트 조명, 원목 테이블 위로는 매립등을 달기로했다.

계단벽 중간에는 매립식 레일 조명, 천장에는 큰 라탄 등을 달기로 했다.

야외 데크 위로 투명 차양을 설치하고 그 위에 나무 덩굴들을 놓고 싶었는데 청소 이슈가 있을 것 같아 깔끔한 일반 차양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데크에 들어갈 나무는 조금 비싸도 물과 습기에 강한  '울린'이라는 나무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층 벽은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하고 싶었는데 예산이 맞지 않아 회색 페인트로 대신하기로 했다.

이층 중간에 가벽을 세울까 고민했는데 안 하기로 했다.

집의 모든 조명과 화장실 거울은 내가 직접 주문하기로 했다.

타일은 공사 중간쯤에 조로 님과 함께 직접 보고 고르기로 했다.

미리 보는 공사 과정 - 그 어떤 공간도 생각과 고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은 없었다.

조로님은 추가적으로,

계단에는 자연광이 내려올 수 있도록 계단 위쪽으로 큰 창을 냈다.

집이 넓어 보이고 개방감이 들 수 있도록 일반 집 보다 천장을 높게 만들었다.

자연광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유리블록을 이용해 전등을 켜지 않아도 밝은 집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이층 침대 헤드, 계단 보이드 쪽 벽을 노출 벽돌로 마감해 보는 것은 어떤지 아이디어를 주셨다.

드레스룸이 될 벽 위쪽도 통풍이 잘 될 수 있도록 통풍구를 만들었다.

공간이 협소하더라고 공기가 잘 순환할 수 있도록 최소 좌, 우 모두에 창문을 냄

창문은 프라이버시가 간섭받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크기로 적당하게 배치

내 자료를 보시면서 조로님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 혹은 이렇게 하면 더 좋을 수 있는 것들을 바로바로 짚어 주셨다. 안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이유를 함께 설명해 주셔서 연신 고개를 끄덕, 끄덕였다. 미팅을 끝내고 나니 앞으로 나의 의견들이 반영되어 나올 설계 도면이 기대되었다.


미팅을 하면 할수록 마치 집이 한층, 한층 쌓이고 있는 것 같았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의견조율이 좋았고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을 조로님께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셔서 참 좋았다.


내가 "계단 밑 공간에 수납을 할 수 있도록 문을 달아주세요."라고 말하면,

"그러면 그 안에 선반을 설치에 물건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보관할 수 있게 해 드릴게요."


그리고 내가 말하지 않아도,

"콘센트는 그 어떤 집보다 넉넉하게 해 드릴게요. 그리고 일하시는 원목 테이블 밑에 카페처럼 바닥에 콘센트 매립해 드릴게요."


한국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런 부분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계단 밑 공간에 수납을 할 수 있도록 문을 달아주세요."라고 하면 "Ok, Boss"가 전부고 그나마 문이라도 멀쩡하게 잘 달아 주면 다행인 거다.


휴, 다 됐다.

이제는 최종 도면이 나오기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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