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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한범 Jan 15. 2020

 황천항해, 거친 파도가 훌륭한 항해사를 만드...나?

그린피스 항해사 썰#18

 최종 준비를 마친 후, 프랑스까지의 항해계획도 대부분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이 프랑스까지의 항해가 끝나면 나는 다시 휴가를 받고 집으로 갈 시간이 다가왔다.

 대략 1400마일 (2600킬로미터) 정도 되는 긴 여정을 준비하였고, 가는 길목에는 날씨가 안 좋기로 유명한 '비스케이 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라스팔마스 -> 라로셸까지의 여정

 일기예보를 확인하는데, 역시나 소문대로 비스케이 만에서 날씨가 좋지 않다고 예보가 되었다.

 거친 파도가 강인항 뱃사람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과 같은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리고 위험이 있으면 맞닥뜨리지 않고 피해 가는 편이라, 출항을 좀 늦추면 어떨까, 혹은 속도를 좀 줄여서 가면 어떨까 라는 의견을 내 보았지만, 더 이상 스케줄을 미룰 수 없기에 선장님은 출항을 강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우리는 황천항해(날씨가 안 좋은 곳으로 항해)에 대비하여 배가 흔들려도 굴러다니는 물건이 없도록 모든 물건들을 싸매고 묶고 고정하였다. 그렇게 배 구석구석 소금통, 후추통 하나까지 굴러다니지 않게 고정시킨 다음, 출항을 시작하였다.

 오랜 수리기간 동안 우리 배를 도와준 라스팔마스의 자원 봉사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배에 붙어있던 마지막 줄을 때어내어 '항해'상태에 돌입하게 되었다.

배의 모든 줄이 떨어지는 순간

 그렇게 출항 후 항해를 시작했는데, 날씨가 썩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화창하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폭풍 전야였다. '비스케이 만'으로 들어설 무렵부터 파도와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하였다.

 믿거나 말거나, 배가 비스킷처럼 부서진다고 해서 '비스케이 만'으로 불린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날씨를 겪어 본 사람은 이 우스갯소리가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황천 항해의 사진-1
황천 항해의 사진- 2

 거친 파도가 강한 뱃사람을 만들기는커녕, 우리 선원들은 약 사흘간 지속되는 거친 날씨에 모두들 넉다운이 되었다. 대부분의 작업들은 올 스톱 상태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저 침대에 누워있다가 화장실에 구토를 하는 생활을 반복하였다. 나도 물론 좀비처럼 하루 8시간의 당직만을 겨우겨우 수행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서 보냈다. '죽지 못해 산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약간 와 닿기도 하였다.

 도무지 이 흔들림이란 것은 달팽이관을 때어내기 전까진 적응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종류의 약, 귀미테, 민간요법을 동원해 봤지만, 나는 '멀미'에 맞서 싸워 이기지 못했다.

 그저 멀미를 인정하고 같이 지내는 방법밖엔 없었다.


 겨우겨우 프랑스 라로셀 연안에 근접하였을 때, 끝날 것 같지 않던 흔들림도 비로소 끝이 났다. 날씨도 맑아지고, 바람도 줄어들며 파도 약해졌다. 그렇게 죽어라 흔들어 대던 배도 점차 그 흔들림이 멈추기 시작하였다.

 날씨가 좋아지자, 방에서 뻗어있던 선원들도 점차 기력을 되찾고, 하나 둘 방 밖으로 나와서 밥을 먹기 시작하였고, 여기저기서 대화의 소리도 들려왔다.

 그리고 비로소 황천항해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잘못 올려져 있던 컵과 접시들은 깨져있었고, 몇몇 줄들은 바람에 날려 갔고, 휴대폰 액정이 깨진 사람, 노트북을 떨어트려 고장 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한 채, 우리는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우선 기뻤고, 기쁨의 식사를 하였다.

다시 평온을 되찾은 날씨

  인생의 가장 긴 4일을 '한배를 타서' 같이 보낸 우리들은 드디어 프랑스 연안에 도착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거친 파도가 훌륭한 항해사를 만든다.'에 관해선 회의적이다. 그 파도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본다.


*본 글의 내용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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